<<아빠 냄새 책 냄새>>로 펀딩을 시작했다.
(제가 한 달에 두 번 보내드리는 글을 받고, 3~12월까지 월 1만원씩 후원하는 펀딩입니다.)
두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책으로 놀면서 기른 이야기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일 때도 날마다 8시간씩 잤고, 아빠와 책 이야기하며 지냈다.
고등학교 모의고사 성적이 좋았다. 수능 성적도 좋아서 원하는 대학에 갔다.

후원 참여하신 125명에게 지금까지 글 두 편을 보내드렸다.
첫 번째 글 : 아빠 냄새를 풍겨요. (3월 12일에 보내드림)
두 번째 글 : 아빠가 책을 읽어줘요. (3월 26일, 아래에 소개하는 글)
세 번째 글 : 배움터를 넓혀요. - 저장 공간 넓히기 (4월에 보내드릴 글)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어요. 무얼 해야 할까요? 누군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사다 날랐다 하고, 누군 태교 음악 들었다고 해요. 예쁘고 잘생긴 아이를 기대하며 연예인 사진을 붙이기도 한대요. 제 아내는 음식을 사달라 하지 않았어요. 우린 연예인 사진도 안 붙였죠. 바흐와 모차르트를 들었지만, 특별한 일도 아니었고 열심히 듣지도 않았어요. 아빠로서 제가 할 일이 많지 않았어요. ‘그럼 무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줘야지! 아빠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다고 하던데……

저녁에 아내 곁에서 책을 읽어주었어요.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내가 싫어하는 책을 읽어줄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서, 아내도 좋아하는 책을 소리 내어 읽었어요. 아이 눈높이에 맞는 책을 읽어주어야 할지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책이건 태아가 이해하지는 못할 거예요. 제가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엄마 기분이 좋으면 아이도 기분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 성서를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처음으로 아빠 노릇을 했어요.

책을 읽으면서도 실감이 나지는 않았어요. 생명이 자라는 놀라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데 전 그런 느낌 없이 그저 의지로 읽었어요. 태교하는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꾸준히 읽어주려 했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독서여서 읽어주었어요. 어차피 날마다 성서를 읽으니까 아내 곁에서 소리 내어 한 장씩 읽으려 노력했어요. 즐겁게 읽었고, 지쳐서 읽었고, 때론 졸면서 읽었어요.

태아에게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책을 읽어주면 태아가 듣고 반응한다는 실험이 있대요. 그래서 막연히 책을 읽으면 아이가 들을 거로 생각했죠. 물론 읽어주는 책 내용을 태아가 이해하진 못할 거예요. 세상에 나온 아이가 한 낱말을 수백 번 들어야 그 낱말을 이해할 텐데, 처음 듣는 말을 이해하지는 못할 거예요. 사랑이 느껴지는 목소리나 분위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어주면 머리가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어요. 그러나 책을 읽어주어서 얼마나 똑똑해졌는지는 확인하진 못했어요. 태아의 두뇌 성능을 잴 수도 없으니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몰라요. 측정하지 못하는 능력이에요. 그저 아이에게 좋을 거라는 기대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사실 책을 읽어주면서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어요. 책을 읽어줄수록 ! 내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커졌죠.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하면서 진짜 내 아이로 느껴졌어요. 아내는 아이를 낳았으니 저절로 아이를 느끼겠지만 저는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가 느껴졌어요.

엄마는 아이를 무조건 사랑해요. 엄마는 아이를 안고 웃어요. 자신이 힘들어도 참아요. 참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엄마도 많아요. 엄마는 위대해요. 아빠는 달라요. 엄마가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지만, 아빠는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사랑이 생겨요. 아이를 안고, 먹이고, 놀아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더 사랑이 생겼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표현하면서 사랑이 생기는 사람도 있어요. 전 후자예요.

옛날에 어떤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배를 타고 멀리 여행하다가 폭풍우를 만났단 말이야!”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미움을 받았어.”

하며 읽은 내용이 나한테는 꼭
, 내 아이야. 내 아이라고!”
내가 네 아빠야. 내가 아빠가 된다고.”
아빠가 기다리고 있어. 건장하게 만나자!”
하는 말로 느껴졌어요. 제가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게 좋았어요.

아이는 들으면서 배운다.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으로 자녀를 기르는 집이 많아요. 아빠는 가끔 한마디하고, 엄마가 자녀교육에 관심을 쏟죠. 실패 사례가 많은데도 소수의 성공사례를 내세우며 진리라고 믿어요. 당신의 자녀가 성공사례를 잘 따를 거라고 기대해요. 아이가 보이는 약간의 변화를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실패의 신호를 무시하죠. 제 아이들은 정보를 분석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아빠와 아이를 아끼고 돌보는 엄마의 사랑으로 자랐어요.

전 다수가 선택한 방법이라도 분석하고 결정해요.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에 가려진 모순이 보였어요. 아내에게 아이에게 알맞게 가르칠게. 즐겁게 놀면서 공부 잘하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 하며 큰소리쳤어요. 그리고 저녁마다 책을 읽어주었어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해준 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었어요.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줬어요. 아이들은 저녁마다 제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아빠 편이 되었어요. 궁금하면 아빠를 찾아요. 책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식도 쌓았겠지만, 아빠를 믿는 마음이 훨씬 소중해요.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았고, 아이가 크면서 제가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어요. 아이들은 아플 때 엄마를 찾았고, 배가 고프면 엄마를 찾았어요. 그러다가 궁금해질 때, 숙제할 때, 책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아빠를 찾았어요. 다른 집 아빠들보다 육아에 힘을 더 보태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제 몫이라 생각했어요.

저는 아이가 몇 살에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느날 아이를 보며 놀라고, 계속 변하는 모습 보며 웃었어요.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며 함께 무언갈 하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아이를 평가하지 않았어요. 옆집 아이가 글씨를 더 빨리 읽고, 유치원 아이가 구구단 외운다 해도 그러려니 했어요. 1학년 때 받아쓰기를 40점 받았어요.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지요. 나중에 괜찮다는 말이 40점을 나쁘게 생각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점수로 아이를 평가하지 않으려고 신경 썼어요.

많은 부모가 안심하지 못해서 일찍부터 자녀에게 매달려요. “네가 공부만 잘하면~” 하며 매달리면 아이는 부모의 소망을 짊어지고 끙끙대요. 공부 잘하는 아이도 부모를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려워해요. 부모의 기대에 떠밀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부모가 말할 때 나를 믿지 못해서 저런다.’ 생각해요. 부모의 요구에 짓눌려 얼마나 힘든지 아이들이 이상 증상을 보이죠. 미래를 꿈꾸지 않고, 공격 성향을 보이며, 자극이 강한 말이나 영상에 빠져요. 나중에는 부모도 감당하지 못해 끙끙댑니다.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왜 저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자녀는 매달려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스런 작품이지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잘 놀았어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서 듣는 능력만 기르면 됩니다. 공부의 기본으로 IQ를 들지만, 사실 공부하는 기본 능력은 듣기예요. IQ20~30점 더 높은 것보다 잘 듣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지요. 새 학기 첫날,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물어요.

얘들아, 공부 잘하는 비법이 있어. 뭘까? 어떻게 해야 공부 잘하지?”

아이들 대답에 듣기가 없어요. 아이들은 듣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잘 듣지 않고도 공부 잘하는 아이는 없어요.

사람들이 따르는 자녀교육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쉽고 좋은 방법 놔두고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죠. 공부할 능력을 길러주면 저절로 공부를 잘할 텐데 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도 당장 결과를 요구했어요. 채 자라지 않았는데 열매를 찾네요. 공부하는 능력을 길러야 할 때, 그저 결과만 기대하며 요구하는 게 어리석어 보였어요. 그런 닦달은 아이에게 부담만 지웁니다. 미래를 담보로 현실을 어둡고 무겁게 만드는 행동이죠. 전 배움터를 넓혀주었어요.

듣는 능력은 배움터를 넓힙니다. 잘 듣는 아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워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배워요. 같은 책을 읽어도 작가가 하는 말을 더 많이 들어요. 아이들은 듣기 좋아합니다. 아이가 들을 만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누구나 잘 들어요. 아이들이 듣지 않는다면 말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해요. ‘아이가 싫어하는 말투나 태도로 말하지 않나? 내 말이 잔소리로 들려서 귀를 막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세요.

부모는 자녀가 안심하게 자라도록, 올바른 가치를 따라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편하게 공부하도록 돌보는 사람이죠. 자녀가 눈앞만 보고 안달할 때 멀리 바라보며 아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죠. 지금 가져온 시험점수 40, 60점에 흔들리지 말고, 나중에 자기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물론 점수를 더 잘 받게 도와주는 방법도 있어요.

 

자녀 귀를 막는 부모는 아닌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은 아빠를 조건 없이 좋아해요. 키가 작아서 고민인 아빠도 아이 눈에는 커 보여요. 재산, 지위, 외모는 상관없어요. 어린아이에게 아빠는 곁에 있으면 좋은 사람이에요. 꼭 안아주세요에서 아이들이 교도소에 간 부모를 기다려요. 아이들은 부모를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아빠’. ‘엄마를 만나려고 교도소에 찾아가지요. 면회장에서 아빠를 만나고 기뻐해요. 아이들은 그래요.

어릴 때 아이들은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습니다. 이때가 아빠들의 황금기예요. 초등 저학년에도 아빠의 인기가 유지되죠. 아빠가 화내지 않는다면, 술에 취해 들어가도 재잘재잘 떠들며 아빠에게 다가와요. 그러나 황금기는 지나가기 마련이죠. 고학년이 되면 자녀가 아빠를 조금씩 멀리해요. 중학생이 되면 벽이 생기고, 고등학생이 되면 서로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로 바뀝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독서 강의를 해달래요. 강의 장소에 가서 강의안을 열었는데 파일을 잘못 가져왔어요.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라 전화해서 첨부파일을 이메일로 받았어요. 곁에 있던 선생님이 물으셨어요. “딸이 몇 살이에요?”
2입니다.”
아니, 2가 그런 부탁을 들어줘요?”

깜짝 놀랐어요. 그럼 아빠 부탁을 아이가 안 들어주면 누가? 독서, 글쓰기, 토론, 수업, 성경 등 강의 주제가 다양해서 강의안을 잘못 가져갈 때가 몇 번 있었어요. 그때마다 아이가 강의안을 메일로 보내줬어요.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일 때도 부탁했어요. 아이들은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주었어요. 우리가 서로에게 늘 귀를 기울여서 듣지는 못하지만, 들어야 할 때는 잘 듣습니다.

엄마들이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낸대요. 어릴 때부터 기초를 잡아주어야 한다며 아이에게 하는 걸 보며 엄마가 아이 말을 들을까?’ 생각했죠. ‘아이 말을 듣지 않는 게 습관이 돼서, 언젠가 아이가 중요한 신호를 보내는데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크면 엄마 말을 들을까?’ 생각했어요. 유치원 다니는 아이는 잘 놀며 건강하게 지내면 돼요. 책을 좋아하면 공부는 저절로 잘할 거로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되면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할 테고, 책 읽은 아빠랑 자주 대화하면 공부 잘하겠죠. 사춘기도 대화를 이기지 못할 거예요.

학원에 보내고,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스마트폰 주면 편해요.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스마트폰도 주지 않으면 아이가 시간을 보낼 만 한 걸 부모가 준비해야 해요. 놀아주어야 할 때도 많아요. 힘들죠. 저는 한 살 터울로 태어난 딸이 둘이어서 좀 쉬웠어요. 둘이 놀 때가 많았죠. 딸은 이야기도 좋아했어요. 아들만 몇을 둔 아빠는 주말마다 공을 갖고 운동장으로 나가더라구요.

등불 기억

첫째 딸 민하가 <등불 기억>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에요.

책과 관련된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일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그림책을 보던 기억인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어주었던 기억 같기도 하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주 보고 앉거나 엎드리고, 아빠가 읽고 있는 책을 같이 보겠다고 고개를 들이밀 때도 있었다. 이불 속에서 뒹굴고 동생이랑 조용히 놀기도 했다. 책 내용에 대해 생각을 말하고 질문하는 건 기본이었다.

아빠 옆에서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면 그 시간에 뭘 하든 괜찮았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있든, 가만히 있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든 상관없었다. 책장을 뒤적거리고, 의자를 흔들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별로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아빠는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엄청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마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루는 졸려서 이불을 덮고 눈 감고 있었다. 아빠는 열심히 책을 읽어주시는데 그러고 있는 내가 치사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빠도 나보고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모르셨던 건가?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책을 읽어주는 게 아빠이다 보니 책 읽어주기 시간의 주도권은 아빠에게 있었다. 아빠가 책을 읽자고 하면 우리는 모였다. 하루는 세 명이 함께 큰 베개를 벴다. 다른 날은 각각 베개를 하나씩 안고 모여 앉았다. 모이는 장소도 계속 달라졌다. 서재, 안방, 거실, 우리(나랑 동생) 방……. 장소와 시간 선정은 아빠 마음대로였다. 아빠는 늘 한 장씩만 읽어주셨는데, 가끔은 “한 장 더 읽을까?” 하고 물어보셨다. 대답은 무조건 “네!”였다. 아빠는 목이 아프다고 힘들어하셨지만 나는 이야기가 짧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니아 연대기』를 전부 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가 읽고 나와 동생은 들은 거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 아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여주셨다. 『말과 소년』에서 브레가 나니아에 가고 싶어 하면서도 칼로르멘의 방식에 길들여 있다는 것, 『캐스피언 왕자』에서 일행이 왜 루시의 말을 듣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갔을지, 디고리는 사과를 훔쳐 가라는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빠는 많은 질문과 설명으로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니아 연대기』는 잠자리에 들기 전 읽어주기 딱 좋은 책이다.

어쩌면 내 사고 깊은 곳에는 『나니아 연대기』를 기반으로 하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판단을 내려야 할 때, 내가 루시의 말을 무시하고 편한 길로 가고 싶어 했던 수잔과 같은지 생각한다. 자려고 누우면 그림자에 불과한 지금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을 상상한다. 나니아는 학교에 대한 내 생각도 잘 표현한다. 디고리 교수가 말했다.

“요즘 학교에선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건지!”

어휴,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캐스피언 왕자』에서처럼 아슬란이 와서 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해방시켜 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나니아 연대기』는 악인을 동정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요즘 미디어는 악인에게 분노하는 법만 알려주지, 악인을 동정하는 법은 도무지 가르쳐 주질 않는다. 학교에서 사형제도에 관한 토론을 했는데, 나는 당연히 반대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찬성하는 사람이 많아서 충격받았던 게 기억난다. 사실 지금까지도 범죄자는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말을 들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가끔은 사회가 예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문을 모욕했다고 칼을 뽑고 달려들던 그 시대로 말이다.

나는 나니아 하면 등불 황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집 앞에는 산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가로등 등불이 나니아를 떠올리게 해서 거기를 등불 황야라고 부른다. 눈이 왔을 때 몇 번 가 봤는데, 진짜로 등불 황야 같아 보였다. 등불 황야는 루시가 나니아에 와서 처음 본 장소이고, 지구로 돌아가기 전에 남매는 등불 황야에서 가로등을 본다. 등불은 옷장과 마찬가지로 나니아와 지구를 잇는 상징이다.

아빠가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주셨던 기억을 나는 <등불 기억>이라고 하겠다. 나와 책 사이를 연결하는 기억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나니아 연대기를 다 읽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쌓인 기억이야말로 독서를 위한 원동력이었다.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읽어준 책이 꽤 많았는데 일부만 기억합니다. 그림책은 사과가 쿵, 강아지똥만 생각나네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같은 이야기나 헨젤과 그레텔, 이솝 우화, 안데르센 동화를 읽어주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로알드 달 동화(멋진 여우씨), 백석 동화시,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하하호호 공생, 티격태격 천적도 읽어준 것 같아요. 아이들은 8~9살 이전에 읽어준 책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해요.

고학년 때는 나니아 연대기(7),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샬롯의 거미줄, 삐삐 롱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 미오 나의 미오, 황금 열쇠를 읽어줬어요. 제가 책을 읽어주며 질문한 내용을 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한 살 터울인 두 딸이 4~5학년쯤일 거라 하는 말을 듣고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10년 전에 들은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는 게 놀랍네요.

제가 사는 영동 지방은 눈이 많이 옵니다. 집 앞에 작은 산이 있는데 눈이 오면 저녁에 아이들을 꼬드겼어요.
눈 온다. 눈 와! 등불 황야에서 툼누스 씨가 기다릴 거야. 찾으러 가자!”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주인공 루시가 파우누스(신화에 나오는 존재,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염소)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눈 덮인 숲에서 툼누스 씨가 루시를 동굴로 데려가지요. 초등학생일 때 아이들은 즐겁게 저를 따라나섰어요. 중학생 때도 같이 눈을 밟으며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툼누스 씨를 이야기했고, 고등학생일 때도 저녁에 산에 올랐어요. 첫째가 대학생이고 둘째고 고3일 때 마지막으로 갔네요. ! 마지막은 아닐 거예요. 또 갈 테니까!

책을 읽어주세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귀한 일이에요. 읽어주세요. 아빠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잔소리를 내던지고 읽어주기를 즐기세요. 아이가 잘 듣지 않는다고 잔소리할 만큼 하찮은 일이 아니에요. 책 읽어주는 자체가 보석 같아서 아이가 의자를 삐걱거리며 듣건, 꼼지락거리건, 동생과 놀면서 듣건 상관없어요. 아이가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들어도. 아이들은 놀면서도 듣지요.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귀한 일이거든요.

우리의 삶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수백 권의 이야기책을 실제로 살아냅니다. 우리가 사는 장소가 이야기예요. 만나는 사람도 이야기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이야기에 이야기가 쌓여요. 새로운 이야기가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오늘은 지금 들리는 인생 이야기이고, ‘내일은 새롭게 펼쳐질 이야기입니다. ‘어제는 아름답게 남은 이야기고요. 어떤 이야기인지는 그때그때 달라요. 슬픈, 기쁜, 다시 떠올리고 싶은, 기억하기 싫은, 멋진, 부끄러운, 뿌듯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모여 나 자신이 됩니다. 책을 읽으며, 책을 들으며 이야기에 빠지는 건 아이들이 살아갈 삶에 표준을 세우는 일이에요. 읽어주세요.

눈이 오면 등불 황야가 되는 앞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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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냄새. 책 냄새. 신청 안내

안녕하세요. 저는 책을 아홉 권 쓴 아빠,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책을 읽고, 책으로 수업하고, 책으로 강의하는 책벌레입니다. <곁에.서>라는 이름으로 펀딩해서 한림화상재단(1000만원)과 세움(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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