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공주처럼, 이금이

꼴뚜기, 진형민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서감상문을 쓰는 방법이 나온다. 책을 읽은 동기, 책 내용, 책을 읽고 든 생각이나 느낌을 표로 정리해서 쓰게 한다. 독서록에도 동기, 줄거리, 생각과 느낌을 쓰도록 표로 나눠 놓았다. 교사도, 학부모도 이렇게 쓰라고 가르친다. 독서감상문에 동기, 줄거리, 생각과 느낌을 써야 하니 세 가지를 하나씩 찾아 합치는 방식이다. 독서감상문을 쉽고 빠르게 쓰는 방법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렸다.

난 다르게 가르친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도- 책을 읽은 동기를 가진 아이가 적었다. 책을 읽고 표현할 만한 생각과 느낌이 있는 아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기준은 단순하다. 재미가 있으면 읽고, 재미가 없으면 안 읽는다. 어디에 재미를 두는지는 아이마다 다르지만 책 읽는 기준이 재미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 무얼 느꼈니?”는 소용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책 읽은 아이에게 어땠니? 책이 괜찮았니? 무얼 느꼈니?” 묻는다. 아이가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그걸 말해주기 원한다. 아이가 무얼 배웠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부분 아이는 재미있어요.” 또는 재미없어요.”라고 대답한다. 교사와 부모 모두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또 묻는다.

어디가 재미있었어?” “왜 재미없었어,”

전국 어디서나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그냥~!>이 솔직한 반응이다. 알맞은 반응이기도 하다. 가끔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아이가 있지만 소수다. ‘책을 읽었는데 그냥 재미있더라!’는 말은 아이들 수준에 딱 맞는 표현이다. 실망하거나, 따져 물어도 소용없다. 아이들이 책 읽는 기준이 재미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 독서 수업을 하러 가서 무얼 느꼈는지 물으면 99% ‘재미를 말한다. 책 내용을 알아보는 게임을 하면 책이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책에 나온 문장으로 토론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질문하고 대답하며,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지 찾으면 책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는 하지 않았던 생각이 떠오른다. 헤어질 때는 이렇게 쓴다.

 

책을 처음 읽을 때 글밥도 적고, 글씨 크기도 커서 저학년이나 보는 책을 왜 대화 주제로 선택했을까?’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도 무슨 이야기를 책에서 하고 싶은지 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번 시간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와 토론하면서 책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여러 가지인 것을 알며 이해하고 말하니 책의 내용이 이해가 잘 되었다. ~ 이 책이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날 수 있을 만한 책이라는 걸 선생님이 알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글을 적으라고 하신 것 같다.”

대구에서 5-6학년 10명과 망나니 공주처럼으로 독서 수업을 하고 6학년 아이가 쓴 후기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책을 좋아하는 교사가 아니라면 책을 읽어도 가치를 모를 때가 많다. 책벌레들의 책 없는 방학독서캠프에 참가한 교사의 후기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초등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별로 가치 없는 소설책인 줄 알았다. ~ 독서퀴즈, 독서 토론을 시작으로 내가 찾지 못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 조별 모임에서 네 자매의 미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봤는데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여백이 많은 책, 여백이 적은 책

선생님들이 독서 수업하기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 한다. 그러나 독서 수업에 좋은 책목록을 만들기 어렵다. 사람마다 책을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또한 독서 수업을 처음 하는 분, 몇 번 한 분, 자주 한 분에게 맞는 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경험이 적으면 여백이 적은 책을 골라야 한다.

꼴뚜기는 여섯 개의 단편이 실린 동화책이다. <꼴뚜기>는 왕따 문제를 다루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6학년 아이들이 사귀는 이야기다. <축구공을 지켜라>는 고학년이 저학년 공을 빼앗아 차는 이야기다. 일정한 주제를 다루는 내용이라 명확하다. 한마디로 여백이 적다. 망나니 공주처럼은 여백이 많다. 꼴뚜기보다 짧지만 이런 이야기다라고 정리하기 어렵다. 사랑 이야기지만 자아를 찾는 이야기다. 품위를 다루지만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옛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을 토론하고, 공부에 지친 현실을 토론할 수도 있다.

여백이 적은 책은 토론하기 쉽다. 주제가 명확하다. 글을 쓰기도 쉽다. 무얼 써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꼴뚜기>를 읽으면 왕따를 토론하고 왕따에 대해 글을 쓰는 아이가 많다. 어떤 아이는 왕따 생각하라고 선생님이 꼴뚜기읽으라 하셨네!’ 한다. 이런 책은 독서감상문을 쓰기 쉽다. 다만 아이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쓴다. 대부분 왕따를 주제로 읽고 왕따를 주제로 글을 쓴다. 그래서 독서 수업 경험이 적은 분에게 추천한다.

여백이 많은 책은 주제를 잡기 어렵다. 토론하기 어렵다. 글을 쓰기도 어렵다. 도대체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도 있다. 앞에서 후기를 쓴 아이처럼 저학년이나 보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백이 많은 책을 더 좋아한다. 토론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이 자기 색깔을 드러내어 글을 쓰는데 좋기 때문이다. 여백이 많을수록 자기 생각과 경험을 채워 넣어야 한다.

 

책을 느끼는 과정을 겪어야한다.

아이들은 분석하며 읽지 않는다. 공감하며 읽는 아이도 적다.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읽는 아이도 적다. 삶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실제와 연결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정답 찾는 활동, 과정 없이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이렇게 배우면 교과서 지문 읽듯 책을 읽는다. 평소 태도가 책 읽을 때도 영향을 준다. 부모나 교사에게 읽어라!”, “읽었니?”만 들은 아이는 그냥~! 재미로~! 읽는다. 느끼는 게 별로 없으니 독서감상문에 쓸 게 없다고 한다.

독서 수업은 아이가 내용을 아는지 확인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것도 힘들다. 아이가 느끼도록 이것저것 하는 거라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활동하면서 느낀다. 새벽에 일어나 축구경기를 보는 아이는 축구를 하면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생활 습관을 바꾼다. 그러므로 아이가 책을 읽고 느낌을 표현하게 하려면 과정을 겪게 해주어야 한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그리거나 쓰기 전에, 무언가를 느끼도록 활동해야 한다.

여백이 적은 책은 무얼 느끼고 알아야 하는지 정해진 책이다. 주제 파악이 쉽고, 내용을 쉽게 이해한다. 그래서 독서감상문 쓰기도 쉽다. 여백이 많은 책은 느끼고 이야기할 내용이 많다.

2020년 새 학기를 시작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해야 한다. 독서 관련 내용이 교육과정 곳곳에 들어있다. 학생들에게 의견을 말해라” “느낀 점을 써라하기 전에 과정을 겪게 해주시라 권한다. 과정을 겪는 독서 수업을 몇 번 하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 읽은 느낌과 생각을 말할 것이다. 독서 감상문도 달라질 거라 기대한다.

 

 

검정 연필 선생님, 김리리

우리 사부님이 되어주세요., 김리리

뻥이오, , 김리리

 

인터넷 서점 두 곳에서 어린이책 베스트셀러를 검색했다. 50위 중에 만화가 30권이 넘는다. 동화는 세 권뿐이다. 푸른 사자 와니니, 스무고개 탐정, 그리고 만복이네 떡집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소재에 좋은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김리리 작가가 쓴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렸지만 작가는 이 책을 몇 시간 만에 썼다고 한다. 나의 달타냥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다르며, 어떤 책이 사랑을 받는 건 운명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생각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기도 하다.

김리리 작가를 초청하기 한 달 전부터 아이들과 작가의 책을 읽었다. 세 권을 소개한다.

 

검정 연필 선생님(143)

단편 세 편이 실렸다. <이불 속에서 크르륵>은 무거운 짐을 진 느낌으로 살아가는 첫째 딸의 고민을 담았다. <검정 연필 선생님>은 공부를 짐으로 짊어진 아이가 주인공이다. <할머니를 훔쳐 간 고양이>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지친 아이의 고민을 다루었다. 도깨비가 첫째 딸의 고민을, 검정 연필이 공부에 힘들어하는 아이의 걱정을, 고양이가 할머니의 잔소리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한 가지가 이루어지면, 문제만 바라볼 때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양이가 할머니의 기억을 가져가서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지만 할머니의 다른 기억도 사라진다. ‘치매에 걸려 소중한 기억까지 잃어버린 셈이다. 치매를 이렇게 묘사하다니 대단하다! 검정 연필을 쓰면 성적이 좋아지지만 그럴수록 걱정이 함께 커진다. 주인공 이름이 바름이다. 바름이가 정직하게 바른 길로 갈 것인가? 토론 거리가 많다. 구박받는 첫째 딸 수민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가족이지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니 더 힘들다. 도깨비는 수민이 소원만 들어줄까, 수민이가 가족과 화해하게 도와줄까?

읽으면 알겠지요!!

 

우리 사부님이 되어 주세요(92)

고재미, 오재강, 마주왕은 축구를 잘한다. 자기들보다 축구를 못하던 친구들이 축구 클럽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선수 출신 코치에게 축구를 배우는 세 친구가 하이에나 팀을 만들어 도전한다. 위기를 느낀 아이들이 코치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찾아낸 사부가 마주왕의 형이고, 아빠다. 형과 아빠는 과연 훌륭한 사부일까?

축구 시합날이 다가오는데 사부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합에 지긴 싫고, 코치를 구하지도 못한다. 할 수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부가 되기로 한다. 각자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면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다니, 참 좋은 생각이다. 결말이 따뜻하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겠다. , 축구 시합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읽어보시라.

 

뻥이오, (91)

순덕이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말귀를 알아먹는 구멍이 조그마하게 뚫려서이다. 말이 제대로 드나들지 않아서 뜻을 엉뚱하게 받아들인다. 장갑을 가져오라 하면 장화를 가져오고, 텃밭에서 가지를 따오라 하면 나뭇가지를 꺾어 온다. 순덕이는 친구들에게 바보, 멍텅구리라는 말을 듣는다. 말이 드나드는 구멍을 뻥 크게 뚫으면 어떻게 될까? 너무 잘 알아듣는다면, 상대가 말하기 전에 이미 안다면? 그러면 순덕이는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을까?

이번에는 순덕이 귓구멍이 뻥 뚫린다. 어찌나 잘 들리는지 사람이 듣지 못하는 말까지 다 들린다. 동물들 소리가 막 들린다. 청개구리가 물가에 무덤을 만든 까닭, 토끼가 달리기 시합에서 진 사연, 고양이와 비교해서 차별하지 말라는 강아지의 부탁을 듣는다. 동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친구들이 바보, 멍텅구리라는 별명을 바꿔줄까? 바꿔준다. 순덕이가 듣기 싫어하는 다른 것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쉬운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가, 동물들 말까지 잘 듣는 아이가 되더니 이야기꾼으로 바뀐다. 김리리 작가는 어릴 적 자신의 경험을 썼다고 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공부를 못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멋진 이야기꾼을 만들어냈다는 말인데, 고맙고 기쁘다. 특히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내용이 마음에 든다. 좋은 책이다.

 

저작권 문제

김리리 작가는 글을 쉽고 재미나게 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편하게 읽는다. 그렇다고 작가가 편하게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글은 작가가 마음으로 낳은 자식과 같다. 저작권은 자녀를 지키는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6학년 아이가 김리리 작가에게 질문했다. MBC 드라마 <반지의 여왕>(2017년 방영)이 김리리 작가가 쓴 감정종합선물세트(2014년 출간)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작품의 플롯은 물론 반전, 소재, 마법 설정까지 똑같아서 MBC에 항의를 했고 다툼이 오갔다는 대답을 해주셨다. 순간 빨강 연필이 생각났다. 검정 연필이 오답을 찾아준다면 빨강 연필은 글을 써준다. 우연히 연필을 갖게 된 아이가 연필을 사용하고, 고민하고, 연필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벗어난다는 구성이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검정 연필이 혼자만의 고민이라면 빨강 연필은 글 잘 쓰는 친구와의 갈등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빨강 연필은 검정 연필과 달리 장편이라 더 복잡하고 묘사도 많다. 김리리 작가와 둘이 있을 때 빨강 연필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신수현 작가와 빨강 연필에 대해 조심스럽게 대답해주셨다. (참고 : 검정 연필 선생님2006, 빨강 연필2011년 출간)

 

책에 대한 저작권을 말하면 구름빵이 빠지지 않는다. 굉장히 많이 팔렸지만 저자인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사람들이 출판사 사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림책 병관이 시리즈를 쓴 고대영 작가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영 작가가 출판사 직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쪽만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에 유은실 작가가 우리 학교에 왔다. 유은실 작가가 아이들에게 글을 잘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라고 물었다. 권정생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권정생 선생님 말씀으로 대답했다. “글을 잘 쓰려면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리리 작가도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했다. 유은실 작가와 똑같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두 분이 권정생 선생님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저작권을 침해할까? 그분들처럼 쓰고 싶어 하니 그대로 따라 할까?

 

빨강 연필을 쓴 신수현 작가와 몇 달 전에 메일을 주고받았다. 신수현 작가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행동하는 분 같았다. MBC가 김리리 작가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모른다. 다만 신수현 작가처럼 신중하게, 김리리 작가와 유은실 작가처럼 존경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마주한다면 침해라는 낱말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저작권 침해 문제로, 작가들이 고민하는 시간을 빼앗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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