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을 읽고
-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까닭 -
플래너리 오코너는 어린 시절을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의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는 온몸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아이는 들썩인다. 뛴다. 재잘댄다. 웃는다. 운다. 아침마다 달려와서 물어보고,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말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알려준다.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고, 아이는 글도 잘 쓴다. 그래야 맞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글쓰기를 싫어한다. 힘들어한다. 손이 아파서 못 쓰겠다는 아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 쓸 게 없다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와 떠들고 뛰며 재미난 일, 놀랐던 순간, 화가 났다가 괜찮아지고 빠져들었다가 느긋해지는 순간을 끊임없이 겪고도 쓸 게 없다고 한다. 내내 말하고 움직이며 표현하는 아이들이 글로 표현할 게 없다니…… 글을 쓰려고 하면 경험이 멸종되기라도 하는 것 같다.

『경험의 멸종』 앞표지에 엘리엇이 <네 개의 사중주>에 쓴 글을 인용했다. “경험을 했으되 의미는 놓쳤다.” 내가 살았던 시대가 중요하게 여긴 문장이다. 과거 역사가 어떤 의미인지, 과거에 겪은 일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이 무얼 뜻하는지 생각하며 살았다. 담을 넘는 담쟁이 잎을 보고 연대,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시로 표현했다. 우린 <담쟁이>에 감탄했고, <대추 한 알>에 빠져들었고, <연탄재 함부로 밟지 말라>에 공감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경험의 가치, 의미의 무게가 줄어든다. AI가 대답해주고, 로봇과 드론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에 노인의 경험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시대가 변하지 않을 때는 ‘그럴 땐 이렇게 해.’가 조언이었지만, 새로운 것들이 빠르게 나타나는 시대에 과거의 경험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한다. 적응력이 빠른 젊은이가 주인공이 되었고, 과거의 경험을 말하면 꼰대로 불린다.
의미의 자리를 유행과 인기, 돈이 대신한다. 의미의 ‘의미’가 줄어들고 경험의 가치도 줄어든다. 경험의 가치도 결과로 판단한다. 간접 경험이 직접 경험을 대신한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느끼는 간접 경험이 아니다. 화면을 빠져들어 눈과 손만 움직이는 경험이다. 뇌가 중독에 빠져드는 상태로 멈춰버려 다른 경험을 하려는 의지를 빼앗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목소리를 듣는 것도 부담스러워 문자와 톡을 보낸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기능을 톡(TALK)으로 부른다.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손이 화면을 두드리는 역할로 바뀌었다. 아래위로 빨리 화면을 넘기는 데 익숙해져서 좌우로 천천히 넘기는 책 읽기가 지루해졌다. 지루하면 핸드폰을 꺼낸다. 감정도 화면을 향한다. 쾌락도 화면에서 찾는다. “그거 봤어?”
저자는 『경험의 멸종』 마지막 장 <소멸하는 장소, 개인화된 공간>에서 진보가 아니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은 90세가 50세의 몸으로 살아가게 하겠지만, 장소가 뿌리 뽑히고 사람들의 연결이 끊어져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인간은 고향이 있어야 하고,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로 둘러싸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학교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학교에 오면 친구가 생긴다. 모래를 쌓고, 벌을 봤다고 호들갑 떨고, 구름사다리에 매달리면 친구가 된다. 투탁거리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 경험을 공유하면서 추억이 쌓인다. 아이스크림 사이트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것을 보고 배우도록 강요하지만,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새로운 경험에 빠져든다. (사이트 자료로 수업하는 거 제발 그만하자.)
1학년 아이들과 3월부터 글을 썼다. 4월이 되자 몇몇이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6월에는 대부분 아이가 공부 대신 글 쓰자고 했다. 쓸 게 너무 많아 공책에 제목부터 쫘악 써놓는 아이도 셋이나 생겼다. 14명 중에서 무얼 쓸까 고민하는 아이는 한 명뿐이다. 13명은 ‘아, 이거!’ 하며 곧바로 제목을 쓴다.
“매운 날, 열이 펄펄, 동생 관찰기, 청소의 달인, 태국 사람들 하루, 장화, ?!멍!, 내가 분리 수면을 못 하게 된 이유, 과자 봉다리, 엄마의 추억 화장실, 가뭄, 소고기는 할머니 냄새, 쫄깃한 포도, 또 부러졌다. 민물 게, 숲, 비 오는 하루, 눈꽃 음악 학원, 아빠의 옛날 이야기, 선생님, 송충이의 하루, 엄마의 옛날 공부, 세상은 이렇게 넓다. 교감 샘의 마지막 학교, 여름, 자전거, 기분 나쁜 000, 잔소리 동생, 친구들 공부하는 모습, 마음이 두근두근, 밥 먹는 친구들, 시끄러운 우리 반, 비구름아 강릉으로 가줘. 지우개의 하루……”
2학기 시작하고 한 달 동안 아이들이 쓴 글 제목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실재를 글로 인식한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겪은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된다. ‘소고기는 할머니 냄새’, ‘할아버지한테 달걀 냄새가 난다.’를 제목으로 글을 쓴다. 경험이 어찌나 풍부한지 하고 싶은 말도, 쓸 것도 많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경험의 멸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평생 쓰고도 남을 추억을 만든다.
아이들에게 핸드폰은 필요하지 않다. 거미를 보고, 산수유 열매를 따고, 자전거로 마을길을 돌고, 모래를 쌓아라!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고, 길이 없는 숲을 헤매면 즐거움이 솟구치고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들이 글을 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증인이다.
엄마의 잔소리
최(1학년)
나는 씻기 귀찮다. 그냥 자고 싶다.
양치, 세수만 하고 자고 싶다.
엄마는 샤워하라 한다. 계속 하기 싫다.
엄마는 화낸다.
나는 화가 났다.
화장실에 갔다. 물을 틀었다. 물이 따뜻하다.
화가 나서 덥다.
나는 차갑게 하는데 더 뜨겁다.
화나서 그런 것 같다.
내 몸이 팔팔 끓는 것 같다.
잔소리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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