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2층 교실, 나는 1층 교실에서 지냈다.
오전에 한두 번 아이를 봤다. 그때마다 글 달라 하면 부담스러워할 테니 씩 웃기만 했다.
가끔 한 번씩 아이에게 졸랐다.

"할아버지 3탄~"   "할아버지 3탄은 언제 줘?"

5학년 초여름,
<할아버지의 눈>을 쓰고 6개월쯤 뒤, <할아버지가 아프니까>를 쓸 즈음에 아이가 글을 써왔다.

------------------------------------ 냉이꽃과 할아버지
***(5학년 1학기)

  1월에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씨앗을 심었다. 고추 씨앗은 황금색에다 반짝반짝했다. 그런 씨앗은 처음 봤는데 아빠가 농약이 묻어 있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모종판마다 칸은 각각 200칸이다. 고추 씨앗을 칸 하나하나마다 넣었다. 넣을 때마다 내 손가락에 농약이 묻어 반짝반짝거렸다. 흙을 덮고 물을 주었는데 내가 심은 거 물 주고 싶어서 내가 주었다. 씨앗 몇 개가 물에 밀려서 실종됐다.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이해가 된다. 고추 씨앗이 비싸서 한 알에 110원 정도 한다. 비싸다. 몇 시간 동안 3-4판 정도 넣었는데 씨앗이 떠내려가서 걱정되었다.

(몇 달 뒤에 일어난 일인데 아이가 시간 표시를 하지 않았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셨다. 다른 때보다 표정이 어두웠다. 나는 비닐하우스에 있는 고추 모종이 바람에 날아가서 죽었나?’ 라고 생각했다. 아빠한테 물어보니 할아버지 병원 갔다 왔는데 고추 모종 3000개가 썩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난 상상도 못 했다. 몇 개만 썩은 줄 알았는데 다~ ~ 죽었다니……

  나랑 아빠랑 방학 때부터 지금 3월 달까지 모종판에 2000개 들어있는 15만 원짜리 고추 씨앗을 조심스레 한 알씩 한 알씩 3000개 정도 넘은 것도, 조심스레 물을 살살 뿌려주던 것도, 큰 모종판으로 살살 뽑아 옮겨주던 것도, 세 달 고생한 것을 헛고생으로 만들어버렸다. 가장 안타깝고 마음 아팠던 것은 다른 칸과 색이 다른 노란색 모종판에 심은, 희망이 없는 고추 모종이다. 뿌리가 없거나 병이 든 모종을 따로 심었는데 그런 것들도 다 죽어버렸다. 애초에 모든 모종판이 희망이 없던 것들은 아닌가, 아예 죽어버릴 운명이 아닌가, 그래도…… 죽어도…… 한 판이라도 살아주지……

(여기까지 써왔다. 아이와 고추 모종 심은 이야기를 한 뒤에
 "글을 이렇게 끝내면 아쉽다." 했는데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 더 하다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냉이 이야기를 했다.
아이 담임일 때 "글을 잘 쓰려면 평소에 잘 보지 않던 걸 살펴봐라. 콘크리트 사이에 핀 풀 같은 걸 봐야 해!" 했었다.
그때 해준 말을 기억했는지 얼마 지난 뒤에 냉이 이야기를 써왔다.

  이틀 뒤 노인회관에 편하게 올라가라고 있는 경사 있는 곳에서 냉이를 보았다
. 주변에 딱딱한 아스팔트는 냉이가 올라와서 금이 가 있었고 냉이가 올라온 자리에는 아스팔트도 부서져 있고 파여 있었다. 그 냉이는 꽃이 세 개는 피어서, 먹지도 못하는 늙은 냉이였다. 그래도 꿋꿋하게 잘 서 있다. 꽃 하나는 비실비실거렸다. 먹지도 못할 늙은 냉이, 꼭 우리 할아버지 같았다. 할아버지는 요즘 앉아있는 것도 조금 힘들어하고 잠도 많이 주무신다. 우리 할아버지는 냉이에 핀 세 개의 꽃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늙은 냉이라도 냉이꽃처럼 고추 모종처럼 쓰러지지 않는 그런 따뜻한 할아버지다.

("냉이 보면서 할아버지 생각이 났구나! 잘 썼어. 그런데 이젠 궁금해진다. <냉이꽃과 할아버지>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다." 했더니 다시 글을 써왔다.)

  냉이꽃과 할아버지 이후, 그곳에 피어있던 냉이가 그 자리에 없었다. 하늘나라에 간 모양이다. 하지만 냉이꽃이 남긴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냉이꽃이 도로를 뚫고 나온 자국이다. 그 자국에 이름 모를 풀때기가 그 자리 그대로 났다. 냉이꽃은 자신의 힘으로 힘들게 올라왔는데 풀때기는 힘을 하나도 안 쓰고 편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냉이꽃은 풀때기가 하나도 밉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이 구멍을 뚫어준 덕에 포기할 또 하나의 생명을 구해서가 아닐까? 냉이꽃이 젊을 때, 꽃이 피지 않았을 때 미리 먹어줄 걸 그랬나 보다. 그냥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보다 나았을까?

그 냉이꽃은 말했다. 괜찮다고, 그 구멍에 여러 생명이 자라면 좋겠다고……

  아이가 처음에 쓴 세 문단은 연결이 잘 된다. 애지중지 가꾸던 고추가 다 죽은 걸 보고 '한 판이라도 살아주지' 한 마음을 나도 여러 번 느꼈다. 냉이로 이어진 이야기는 자연스럽진 않다. 그래도 냉이를 보며 할아버지 생각해서 좋았다. <냉이꽃과 할아버지 이후> 글은 참 좋았다. 그걸 살펴본 눈이 귀하고,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보다 나았는지 질문하는 마음도 참 귀하다.

아이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시를 썼을 것이다.
냉이를 살펴보고, 냉이가 진 자리에 피어난 풀을 살펴본 눈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 이름 모를 꽃
*** (5학년 가을)

밭에서나 길에서나
아무데나 피어 있는 꽃
오늘도 꽃은 살기 위해 이 풀, 저 풀 밀어낸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결국엔 사람들이 잡초라고 뽑아버린다.

꽃들이 밭에 피해 주지 않기를 바랐다.
밭에 피어봤자 사람들도, 너도 힘들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데나 피어도 사람들에게 쓰레기 취급이나 받을 걸.

그런데 네가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나오니,
정말 고마웠다.
외롭고 쓸쓸한데 혼자 잘 버텨주어서
사랑받지 못했는데도 사랑을 나누며 살아줘서
네가 이런 곳에 나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네가 잘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는 5학년을 마쳐가던 12월 10일에 <할머니의 호박죽>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왔다.
글을 읽다가 울었다.
<책뜰안애>에 찾아온 분들에게 세 번인가 읽어드렸다.
함께 울었다.
학교에서 이금이 작가님과의  만남을 가진 뒤에 작가님께 읽어드렸다.
그 뒤로 작가님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할머니의 호박죽>을 전국대회에 보냈는데 장려상(상금 10만원)을 받았다.
상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이듬해에 다른 대회에 내보냈는데 상을 받지 못했다.

내가 아이를 알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쓴 글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게만 보물 같은 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개를 할까 말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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