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9일
 
목요일 아침마다 아이들(6학년 우리 반)이 글을 쓴다.
어제 공부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글쓰기 주제를 <우리 가족>으로 했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아빠 곁에 남은 아이가 쓴 글이다.
(참고로 난 아이들 글에 내 손을 대지 않는다.)
---------------- 술
★★★
우리 아빠는 인격체가 두 개다.
아침에는 정상적이지만
저녁에 마법의 주스를 먹고 오면 도깨비가 된다.
얼굴이 시뻘개져선 나를 꾸짖는다.
이상해진 점이 있다.
아침에는 멸치같이 날씬하고 재빠른데
저녁이 되면 퉁퉁이처럼 배가 볼록해져선 비틀거리며 다닌다.
내가 학습지를 다 하고 노는데
그땐 귀신같이 공부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 마법의 주스는 나쁜 것 같다.
‘그 주스를 왜 먹는 거지?’
아빤 참 바보 같다.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죽어서도 못 먹을 만큼 맛있는 게 너무 많은데
왜 꼭 마법의 주스만 먹는 거지?
우리 아빠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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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를 두고 고향 베트남으로 가버렸다.
술이 이별의 원인인지, 술이 이별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보고 싶을 텐데 아이가 아직 엄마 이야기는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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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다.
지난해 학교 옮겼을 때 가장 눈에 띈 아이다. 사랑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쳐대는 아이였다.
아이가 왜 이상하게 행동하는지 짐작만 했는데 오늘 글을 받고 알았다.
 
---------------- 우리 엄마
***
제일 사악한 우리 엄마를 소개한다.
우리 엄마는 능력을 가졌다. 천사가 됐다가 악마가 된다. 도깨비도 됐다가 못된 악령도 된다. 신신당부할 때 잘 들으면 천사, 안 들으면 악마가 된다. 우리 엄마를 도깨비가 되게 하려면 말을 안 들으면 된다. 엄마가 싫어하는 걸 해야 한다.
엄마는 도깨비, 악령이 되면 몽둥이로 때리거나 싸다구, 머리채 잡고 끌어당기거나, 나에게 고아들이 있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린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예전엔 진짜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가 있었는데. 그땐 너무 어렸을 때라서 안 잡혀갔나 보다. 그때 경찰서에 가면서 울었다. 아빠는 옆에서 엄마 보고
"애가 잘못했다고 하잖아! 좀 봐줘~"
라고 했는데 엄마는 한 마디도 안 했다. 그때 갔던 경찰서가 금강프라자 쪽 큰 경찰서였다. 난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때의 내 모습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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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이 이혼의 원인인 것 같다.
아이 엄마는 주기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와서 아이를 닦달한다.
그게 아이를 가르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다.
아빠가 술 먹으면 개가 된다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아이,
동생 욕을 잔뜩 쓴 아이,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힘들다고 쓴 모범생도 있다.
나를 떠나기 전에 글 쓰면서 속이 시원하게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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