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 (창 3장 6절)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 4장 1~11절)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 1서 2장 16절)
뱀의 말을 듣기 전에는 그냥 나무였던 선악과가, 뱀의 말을 듣고 난 뒤에는 달라졌다. 맛있을 것 같고, 보기 좋아, 갖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너무 맛있어서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킬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보기 좋아 안목의 정욕을 채워줄 것 같고, 탐스러워 자랑으로 삼을 만하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다. 뱀이 알려준 지식에 아담과 하와가 무너졌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수단이다. 지식과 정보는 돈을 벌게 해준다. 지식을 많이 알면 학벌이 높아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맛집 정보만 많이 알아도 유익하다. 맛있는 음식, 보기 좋은 물건, 탐스러운 대상은 지금 우리도 사랑하는 것들이다. 먹방과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한 탐욕이 방송과 매체를 가득 채운다.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린 것들이 지금은 인기의 척도가 되었다.
요한은 세상에 있는 것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정리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받은 세 가지 시험도 돌을 빵으로 바꾸는 것(먹음직, 육신의 정욕), 눈에 보이는 천하만국의 영광을 갖는 것(보암직, 안목의 정욕), 성전에서 뛰어도 괜찮은 것(탐스러움, 이생의 자랑)이었다.
먹고 싶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이상을 먹였던 예수님이 굶주린다. 이스라엘의 돌은 모양과 색깔까지 빵과 비슷하다. 누가 아비에게 빵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마 7:9)라고 말한 이유다. 일하지 않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인류의 소망이다. 내일 양식을 위해 염려하는 사람은 정말 힘들다. 오천 명을 먹였을 때 사람들이 ‘하늘에서 오는 양식’을 구하며 예수님을 쫓아다닌 것도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는 소망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도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와 양념을 그리워했으며,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귀에게 절하는 일도 아니고 십계명과 율법을 어기는 일도 아니다. 스스로 육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라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개인적인 필요를 채워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맛도 나지 않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했다. 자신을 위해 한 번 능력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전에 내 필요를 먼저 챙기고 육신의 정욕에 매이게 된다. ‘한 번은 괜찮겠지’는 생각은 두 번, 세 번을 이끈다. 아담과 하와는 보암직한 선악과에 손을 내밀었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다.
갖고 싶다.
한 번만 고개 숙이면 원하는 걸 얻는다? 힘든 과정을 겪지 않고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준다면?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고 죄를 짊어지고 고통스럽게 죽는 과정을 겪게 한다. 누가 이걸 하려 하겠나! 편하게 잘 살면 최고인 세상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고통을 겪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을 바꾸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도 같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이라 유혹도 단번에 넘기고 늘 확신과 믿음 안에 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흔들렸고 위험에 직면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갖고 싶은 것 앞에서 넘어진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겠다고 찬양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한다. 이건 속임수다. 마귀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이 마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전히 온 만물의 주인이시다. 자기(마귀)가 넘겨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대항할 기초를 잃는다. 그래서 스스로 속이고 ‘내가 주인이다’ 외치며 하나님과 대적한다. 같은 마음으로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라 생각하면 속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한다. 편하게 결과를 얻으려는 유혹을 이겨내려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쁨에 젖어야 한다.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과정이 너무 좋아서 유혹과 싸워 이기는 능력이 생겨야 한다. 세게 기도 한 번 한다고 기도의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의지를 갖고 성경 한 번 읽는다고 변하지도 않는다. 날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섬기는 과정이 믿음의 사람을 이끈다.
유명해지고 싶다.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에 데려간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에 마귀가 예수님을 데려간다. 마귀는 예수님께 뛰어내려도 괜찮을 거라고 한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시험한다. 성경의 일부를 자기 뜻대로 인용해서 성도를 무너뜨리려 한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모르고 한 구절에 매이면 뛰어내릴 수도 있겠지. 모험해도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좋겠다는 소망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며 뛰어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믿음이 아니다. 어리석은 자기 확신일 뿐이다. 우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놓았는데 축복만 붙들고 잘 될 거라고 믿는다면 말씀을 왜곡시킨 자기 확신이다.
마귀가 인용한 시편 91편은 9~13절이 조건절이다. ‘만약 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여호와를 피난처라 말하면(9절)’ 보호하시겠다는 말이다. 지존하신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굳이 성전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연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보호한다는 뜻이 아님을 안다. 시편 기자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찬양하며 쓴 고백을 실제로 ‘뛰어내리라’고 말하면 안 된다. 교회에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행해도 믿음대로 살지 않는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말씀을 골라 듣고는 하나님 뜻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필요가 너무 커서 하나님이라도 끌어서 내 편 만드는 셈이다.
먹고, 갖고, 유명해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에 약하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쉽게 넘어진다. 마귀가 하와에게 찾아갔을 때도, 우리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우리는 먹는 거에 넘어지고, 갖고 싶어서 넘어진다. 유명해지려고 예수님도 이용한다. 사단은 약점과 강점을 가리지 않는다. 흔들 수만 있다면 말씀이라도 사용한다.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뜻과 상관없이 말할 때가 너무 많다. 사실 무엇이 하나님 뜻인지 아는 것부터 힘들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결정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어 보일 때도 많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에 대해 민감하다. 죄를 안 짓는 게 아니다. 죄를 짓지만, 예수님 이름을 부른다. 죄를 거부하고 또 맞선다. 먹는 것이 우리를 유혹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린 기도해서 빵 트럭을 받는 게 아니라 형제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형제가 형제를 먹인다. 굳이 성전에서 뛰어내려 주목받지 않아도 된다. 외롭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 절망하고 지친 형제 곁에 그리스도인이 있다. 형제를 먹이고, 형제에게 주고, 형제를 높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마귀에게 절하는 게 더 빠르다. 하나님은 거짓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지만,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서 성공하기 위한 확실한 길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성공은 무너지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를 사랑하고 모든 죄를 피하고 모든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힘은 우리가 죄를 짓는다 해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시다. 우리 죄를 씻어주기 위해 아들을 주신 분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어주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기까지 하셨다. 우리 모두 넘어진다. 그러나 기억하자. 하나님 사랑은 돌아서는 자에게 항상 풍성하시다. 먹고, 갖고, 이름을 높이는 것에 앞서 하나님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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