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동무는 정후겸이 주인공이다. 정후겸은 정조의 동생 화완옹주에게 양자로 들어간 사람이다. 화완옹주는 남편(부마)과 무남독녀를 잃고 정후겸을 양자로 삼아 아들처럼 키운다. 세손(정조)과 창경궁에서 동무처럼 함께 뛰어놀던 사이였지만 정조 즉위 15일 만에 정조의 외할아버지 홍인한과 함께 사약을 받는다. <초정리 편지>에서 역사에 숨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솜씨를 보여준 배유안 작가가 이 내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책을 읽은 느낌을 나눴다. 독서반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간단하게만 말한다. 깊이 생각하진 못해도 자세하게 말하면 될 텐데 힘들어한다. 그럼 새로운 방법을 써야지. “앞사람이 말한 낱말은 다시 쓰지 못한다. 누군가 슬프다고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슬프다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 발표할수록 힘들겠지?” 했더니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든다. 평소에 발표하지 않던 아이도 나중에 하면 말할 게 없다며 손을 번쩍 든다. 표현이 부족한 아이부터 시켰다.

낱말이 어려웠다. 책 앞부분 내용에서 갑자기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 힘들었다. 슬펐다.”에 이어 다른 위인전과 다르게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말한다고 한다. 정조가 아니라 정후겸이 주인공으로 나와 색다르다는 말이다. “슬프고 어둡다고 한다. <창경궁 동무>는 무겁고 슬프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이야기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세손(정조), 세손을 질투하는 정후겸의 모습이 읽는 이의 마음을 짓누른다.

미리 준비한 질문 10개를 나눠주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같이 답을 찾게 했다. 잘하는 한 사람만 찾지 않게 하려고 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이끼리 짝을 지어주었다. 20분 뒤에 물어보니 정답을 간단하게 말한다. “그게 어떤 이야기에 나와? 그때 등장인물은 어떻게 행동해?” 하면서 관련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나는 정답만 맞추지 않고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책 내용을 이해하게 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정후겸이 세손을 질투할 만한 내용을 찾아보았다. “정후겸은 세손빈과 같은 아내를 맞지 못한다. 활을 아무리 잘 쏴도 세손빈과 세자는 세손이 쏜 화살에만 관심을 둔다. 세손에겐 따르는 사람(내관)과 부하(호위무사)가 있다. 활쏘기와 글을 가르치는 특별한 스승이 있다. 숲에서 놀다가 정후겸은 피가 나고 세손은 살짝 까졌는데도 어의를 부르라느니 하며 세손에게만 신경 쓴다. 영조 앞에서 학문을 논할 때도 세손이 주인공이다. 세손에게 일이 생기면 내관이 정후겸을 나무란다.”

짝과 함께 답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하니 전체 내용을 이해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연결할 줄 모르지만 질문하면 핵심을 찾는다. 왕실과 친인척 관계가 복잡해서 왕실 가계도를 그렸다. 여자애들이 좋아한다. 왕실은 역시 여자의 로망인가 보다. 왕실 가계도를 나누다가 외척, 파벌, 붕당, 세도정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모르는 걸 물어보고 찾아가는 독서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첫 시간을 끝내며 책 내용을 토론으로 알아보니 어떤지 발표해보자. 앞 사람이 말한 낱말 쓰지 않고 발표하기다!” 하니 또 손을 번쩍 든다. ‘잘 몰랐는데 문제를 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내용을 잘 모르면 토론을 제대로 못한다. 책을 한 번 읽고 줄거리 대충 알면 늘 똑같은 글을 쓴다. 내 것으로 만들 때까지 곱씹어야 한다. 정말 좋은 답이라도 듣기만 하면 금방 잊는다. 스스로 찾고 생각하면 오래 기억한다. 책을 이렇게 읽어라. 다음 주에 토론하는데 한 번 더 읽고 와라. 글 쓰는 주에도 또 읽고 공부할 때마다 읽으면 내 책이 된다. 그래야 한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둘째 주에는 주제중심 독서토론을 했다. “신분제도를 주제로 책 내용과 현대사회를 연결하는 토론이다. 신분제도가 외척, 파벌, 붕당과 세도정치를 낳은 과정을 나누려 했다. 책에서 신분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을 찾았다. 주로 세손과 정후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찾는다. 옹주가 비록 왕의 딸이지만 빈궁 옆에 앉았다고 꾸중 듣는 장면도 있다. 신분사회를 깨보자. “만약 정후겸과 세손이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누가 실력이 좋을까?” 정후겸은 세손보다 나이가 많아 힘이 세고 말도 더 잘한다. 머리가 좋고 야심도 있어서 상황 파악을 잘한다. 세손은 어리지만 왕이 될 수업을 받고 있어서 권위와 능력을 갖추었다. 어느 쪽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정후겸이 유리할 거라 한다. 그러나 정말 누가 더 뛰어난지 알 수가 없다. 세손과 정후겸은 공정한 경쟁자가 아니라 왕자와 평민으로 다른 관점에서 서술되어왔다. 둘을 공정하게 비교하기 어렵다. 토론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평행선을 그린다. 새로운 논리나 증거를 말할 만큼 지식과 통찰력이 뛰어난 아이가 없으니 당연하다. 토론하다 보면 어느 수준까지는 증거를 찾고 논리에 맞게 말하지만 찬반이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하면 말싸움으로 변해간다. 이때는 토론을 그만두거나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후겸 지지자와 세손 지지자로 나눠 유세분위기로 몰아갔다. 지지율 비슷한 후보가 선거하는 것 같다. 좀 듣다가 정후겸 지지자로 돌변해서 무조건 정후겸을 외쳤다. 한 아이가 책에서 정후겸은 세손을 질투하는 모습이 많은데 왕이 된 뒤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을 질투해서 죽이면 어떡하냐?”고 묻는다. “정후겸은 너무 훌륭해서 질투할 만한 대상이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자 애들이 단체로 덤빈다. 내가 이상한 논리로 말하는데도 꺾지 못해서 답답해한다. 일부러 극단으로 반응한 뒤에 지도자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 같으면 어떻게 될까?” 물었다. ~ 한다.

우리나라는 투표로 대표와 지도자를 뽑는다. 공정할까?” 물으니 공정하다고 한다. “축구선수를 투표로 뽑으면 공정한가?” 하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축구선수는 실력으로 뽑아야 하지. 그럼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투표로 뽑는 게 공정한 거냐구?” 하니 어리둥절해 한다. 한 아이가 투표로 뽑으면 인맥이나 인기만으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맞다. 투표는 공정하게 보인다. 그러나 투표할 때 실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으면 내가 정후겸을 지지한 것처럼 뽑을 수 있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제대로 판단해라."고 말했다. ~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시작한 게 아닌데 이상하다.

세 번째 시간에 신분사회로는 글을 쓰기 어려울 것 같아 정후겸의 욕심과 질투에 초점을 맞춰 우리가 만나는 욕심과 질투를 살펴봤다. 문장쓰기를 했더니 욕심이란, ‘하나가 있는데 두 개 갖고 싶은 것,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바닷물이라고 한다. 가장 공감을 얻은 답은 배가 채워졌는데 더 먹고 싶은 것이다. 그럼 질투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네 배가 더 부르면 기분 나쁜 것이다. 문장쓰기를 나누며 많이 웃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는 걸로 이야기하니 귀에 쏙쏙 들어오나 보다.

주제를 자유롭게 정해서 글을 썼다. 아이들이 신분제도누가 왕이 되어야 할까?’를 쓰기 바랐지만 10명이 욕심, 질투를 주제로 쓰고 두 명만 신분제도에 대해 썼다. 글로 쓸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기엔 어려운 주제였나 보다. 글을 쓰기 전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글을 쓰면 다른 사람 말을 늘어놓다가 끝난다. 쉬운 주제를 정하더라도 여러분이 잘 아는 내용,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내용을 써라했고 아이들은 내 말을 따랐다. 글을 쓰고 네 번째 시간에 글을 고쳤다. 아이들과 토론하면 새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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