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형식의 원작으로 쓴 책이라면 어떤 책이건 괜찮다.

일요일마다 중학생 7, 고등학생 1명과 독서토론을 했다. 책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깊이 토론해야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책 한 권을 90분씩 4주 동안 토론하고 5주에 글을 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고 한 주씩 토론했다. 학생들이 셰익스피어 이름은 들었지만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기대하며 시작했다. 학생들이 <햄릿>은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 학생만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아 좋다고 했다. <오셀로>는 좋다는 학생이 많아졌다. 희극 문체에 익숙해진데다가 망령이 나오는 햄릿보다 오셀로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가?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고 책 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무어인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슬람의 스페인 진출과 레콩키스타(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과정)를 알려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오셀로가 장군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오셀로는 피부색이 다른 민족인 무어인이지만 이슬람 세력과 싸우면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 임진왜란 때 항복하고 조선을 위해 싸운 일본인 김충선(일본 이름 사야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오셀로가 공적을 많이 세웠지만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으로, 친구 하나 없이 전쟁터에서만 지내왔다는 배경을 알았다.

- 3 여학생 : 말보다 행동이 앞서면 안 된다.
- 3 남학생 : 인간에 대한 신뢰가 부질없음을 보여준다.
- 2 남학생 : 질투와 의심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파멸로 이끈다.

이어서 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줄거리 요약이 아니라 내 눈에는 이 책이 이런 글로 읽혔다를 간단하게 쓰라고 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되도록 한 문장으로 쓰지 않으면 모두 비슷한 줄거리를 만들어낸다. 독서반 학생들은 책을 나만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장을 써냈다.

학생들이 쓴 문장을 들으면서 셰익스피어가 왜 비극을 썼는지번쩍 생각났다. 학생들 말을 듣기 전에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어떤 가치를 담고 있어서 이렇게 유명해졌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햄릿과 관련된 정보[: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닛(Hamnet)12살에 죽었다. 이 사실이 햄릿(Hamlet)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는 알았지만 왜 4대 비극을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하는지 잘 몰랐다. 학생들 줄거리를 들으면서 무엇이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가?” 라는 질문이 생각났다. 셰익스피어가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난데없는 질문에 학생들이 머뭇거린다. “현대인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일까?” 했더니 돈이라고 대답한다. “그럼 햄릿, 오셀로, 맥베드, 리어왕에서는 무엇이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까?” 물었다.

햄릿은 복수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갔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삼촌 클로디어스를 비롯해서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 거트루드, 재상 폴로니어스, 햄릿이 사랑한 여인 오필리어, 당대 최고의 검객인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 햄릿의 어린 시절 친구인 로즌크랜츠와 길든스틴이 죽는다. 햄릿 자신을 포함해서 등장인물의 절반가량이 복수 때문에 죽는다.

오셀로는 질투와 의심으로 파멸된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는 딸이 무어인 오셀로와 결혼하자 충격을 받아 죽고, 데스데모나는 오셀로가 의심해서 직접 죽인다. 악당인 이아고가 로데리고와 이멜리아를 죽이고 끌려간 뒤에 오셀로는 자살한다. 오셀로를 꼬드기는 이아고의 말솜씨를 보고 학생들이 셰익스피어가 천재라고 한다. 400년 전에 인간의 심리를 이 정도로 묘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혼자 다니지 마라

이아고는 나쁜 놈이다. 오셀로에게 의심을 심어놓고 질투에 눈이 멀게 만든다. 오셀로는 단 한 사람의 말에 넘어가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늘 일어난다. 사기꾼에게 속는 일이야 수없이 일어나며, 대통령이 한 사람에게 매달려 나라를 망가뜨릴 지경이다. 학생들도 이아고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나라 현실을 떠올리며 웃는다.

오셀로는 이아고를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다. 오셀로는 왜 이야고에게 계속 속았을까?”를 묻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술수를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 물었다. 학생들이 오셀로가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이아고의 말만 듣고 판단했다고 지적한다. “비극의 책임은 오셀로에게 있다라는 찬반토론에서도 한 학생만 빼고 모두 찬성했다. 한 사람의 말만 믿어서 잘못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결과를 보아도 잘못이라 했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면 이아고의 술수를 알아챘을 텐데 오셀로는 묻지 않았다. 오셀로는 업적을 인정받았지만 친구가 없었다. 당시 귀족들은 오셀로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은 자기들끼리 교류하며 권력을 나눠가졌다. 아무리 나라에 도움이 된다 해도 자기들의 이익을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보라 하니 조광조를 든다. 셰익스피어는 질투와 의심의 껍질 안에 우정과 믿음을 감춰두었다. 오셸로는 우정과 믿음이 없어 의심을 이겨내지 못했다.

오셀로는 혼자였다. 딸이 오셀로와 결혼하자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죽을 정도이니 아무도 오셀로의 친구가 되지 않았다. 오직 전쟁터에서 함께 싸운 군인들뿐이었다. 장군인 오셀로가 아내를 의심하는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부하를 찾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함께 풀어야 하는데 오셀로는 그러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지금은 부모님 보호 아래 정해진 과정을 따라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오셀로처럼 심각한 결정을 내릴 일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 자기만의 문제에 빠져 허덕일 때가 온다. 지금 너희들 눈에 우둔해 보이는 오셀로처럼 판단하고도 잘못인 줄 모를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너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물어보아라. 오셀로의 길을 걷지 마라.”고 말했다.

세익스피어는 비극을 왜 썼을까?

1. 맥베스의 죽음은 마녀 때문이다. (반대: 맥베스 자신 때문이다.)
2. 맥베스에서 인간은 존귀하다. (반대: 아니다.) 햄릿과 오셀로에서는 어떤가?
3. 맥베스는 가해자이다. (반대: 피해자이다.)

셋째 주(124)에 맥베스를 토론하면서 세 가지 찬반토론을 했다.

마녀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더 많다. 맥베스가 자기 의지로 왕을 죽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맥베스를 죽이지 못한다는 말이 이루어진 사실로 보아 맥베스의 의지보다는 마녀의 예언이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맥베스는 마녀가 한 예언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마녀 이야기를 하면서 귀신, , 영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귀신을 보았다는 학생도 있는데 반박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1, 3번 토론은 크게 이견이 없었는데 2번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서로 달랐다. 맥베스가 권력에 욕심을 내고 왕을 죽인 행위는 인간이 존귀하다는 사실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학생이 다른 의견을 냈다. 맥베스와 부인이 왕을 죽였지만 후회하며 양심의 가책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한다. 어쩌면 세익스피어가 비극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반대로 드러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베스는 몰락했지만 맥베스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서로를 믿고, 자신을 희생하며 인간의 존엄을 드높였다.

처음 질문을 바꿔 물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가? 세익스피어가 비극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한 학생이 오셀로가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죽인 것은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한다. 순수하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거라고. 햄릿에서도 인간이 복수심에 불타면 존엄을 잃어버리는 존재라는 점을 내세워 그만큼 인간이 자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독서반 학생들이 나눈 이야기가 세익스피어 비극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참고로 삼고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라고 권한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읽고 싶다면 수요일의 전쟁을 권한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책이다.

리어왕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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