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교회에서 일어난 가스폭발사고

머니투데이  2012 년  7 월  21 일 기사

시골 작은 교회에서 가스가 폭발했다. 목사님 부부가 아이들을 위해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며 간식을 준비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교회에서, 아이를 위해 헌신하다가, 가스가 폭발해서 사모님이 돌아가셨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께서 내 등을 떠밀며 소달초에 가라 하셨다. 이미 다른 학교에 발령이 나서 안 가도 되는 학교였다. 아픈 아이들을 돌볼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소달초에 가기로 결정했다. 소달초는 교감 없이 교사 두 명이 아이 일곱 명을 가르쳤다. 나와 함께 근무하는 교사는 지난해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았다. 아이 일곱을 내가 맡은 셈이다.

전교생 일곱 명 중 셋이 화상 환자였다. 화상 입지 않은 아이들도 아팠다. 한 아이는 삼 년 동안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다가 4학년 때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는 아빠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어른, 특히 남자에게 말을 하지 않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 일곱 명 중 다섯은 부모가 이혼해서 엄마가 아이를 떠났다. 여섯 아이 아빠는 광부였다. 아이들 삶이 석탄 갱도 마지막 구간처럼 어두워 보였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사가 무얼 해야 할까?

부는 소달초에 가게 된 과정, 가스폭발 사고로 화상을 입은 아이들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소개한다.

 

1. 교회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나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할까?

1주일 동안 두 학교로 발령을 받다.

2013년에 동해시에서 삼척시로 근무지를 옮기며 교사로 첫걸음을 시작한 곳에 가겠다고 신청했다. 그런데 이곳에 자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2013210일에 인사 담당 장학사가 신동초등학교로 가달라 했다. 15km 더 멀고 두 학년을 같이 가르쳐야 하지만 괜찮았다. 2013215, 삼척 신동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그때 예능 프로그램 <12>이 인기가 높았다. 217일에 <12> 출연자들이 신동초등학교 아이들과 운동회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뛰어놀았다. 연예인보다 아이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저 아이들과 지내겠구나!’ 생각하며 이름을 외웠다. 아이들 얼굴을 기억하며 새로운 학교를 기대했다.

월요일,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12일 이야기를 했다. 어떤 분은 나를 보면서 “1!”이라고 인사했고, 나는 “2!”이라고 대답했다. 인사하면서 즐거웠다. 누군 귀엽더라, 누군 달리기 잘하더라 하며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유난히 힘들게 지낸 학교에서 떠나게 되어 기뻤고, 화면으로라도 아이들을 먼저 만나서 참 좋았다.

나흘 뒤 금요일, 교무실에서 일하는데 전화가 왔다. 삼척교육청 인사 담당 장학사였다. 신동초등학교 대신 소달초등학교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황했다. 난 이미 신동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는데 무슨 일일까? 신동초등학교에 인사하러 가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왜 갑자기 다른 학교로 가라 할까? 정말 이상했다. 동시에 번쩍하며 가스 폭발사고가 생각났다.

 

가스 폭발사고

소달초등학교는 탄광 마을에 있다. 탄광이 번창하던 1980년대에는 학생이 많아 3층 건물을 올렸다. 운동장 옆에 2층 건물이 하나 더 있어서 전체 교실이 20칸이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2012년에는 교사 4명이 아이 14명을 가르쳤다. 한 학년이 2~3명뿐이어서 교사 한 명이 두 학년을 한 교실에서 가르쳤다. 세 명은 담임을 맡았고, 한 명은 교무 업무를 하며 두 과목을 전담으로 가르쳤다. 11교실을 써도 될 만큼 넓은 곳에 아이가 14명뿐이었다.

소달 마을 위쪽에 경동탄광 사원아파트가 있다. 경동아파트에 아이들이 십여 명 있는데, 일부는 7km 떨어진 도계초등학교에 다녔다. 친구 많이 사귀라고 가까운 학교 놔두고 큰 학교에 자녀를 보냈다. 마을에 있는 은총교회에서 방과 후에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무료로 공부방을 운영하며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셨다. 경동아파트에 사는 아이 몇 명은 도계초등학교에 갔다가 방과 후에는 교회에 왔다.

교회 바로 뒤편에 빈집이 있었다. 교회에서 집을 사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쓰게 했다. 그 가정이 가스 온수기를 설치해서 쓰다가 4년 뒤에 이사 갔는데 교회에서는 이 사실을 몰랐다.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사모님이 간식을 준비했다. 이날 마침 성도들이 점심을 준비하느라 가스레인지를 다 사용했다. 빈집에 가스레인지가 있는 게 생각나서 사모님이 찐빵을 들고 빈집에 가서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가스 온수기에서 가스가 누출되었는데 사모님은 가스 온수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가스가 폭발하면서 밖에 둔 가스통까지 모두 터지고 말았다.

이 일로 열 명이 화상을 입었다. 사모님과 도계초 5학년 남자아이가 전신 50% 3도 화상을 입었다. 소달초 6학년 남자아이 두 명이 중증 화상을 입었고 다른 여섯 명도 화상을 입었다. 며칠 뒤에 사모님이 돌아가셨다.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큰 사고인데다가 아이가 아홉 명이나 다쳐 학교와 지역 단체에서 오랫동안 모금 운동을 했다.

도계초 교장 선생님이 이외수 작가에게 부탁해서 사고가 알려졌고, 여러 사람이 치료비를 후원했다. 치료비는 채워졌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견디는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몰랐다. 소달초등학교는 전교생 14명 중 5명이 아팠으니 학교에서 아무 행사도 못 했을 것이다. 현장학습과 수학여행도 못 가고, 운동회도 못 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겠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날려버리지는 못했을 것 같다.

왜 갑자기 소달초로 가라 하는지 장학사에게 물었다. 2012년에 소달초 전교생이 14명이었다. 침울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2012년을 마쳤는데 7명이 졸업했다. 졸업생은 많고 입학생이 없었다. 학부모들은 가스 폭발사고, 화상 환자 이미지가 강한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으려 했다. 2013년에도 입학대상이 있지만, 학교에 오는 아이가 없었다. 모두 인근 학교로 가버렸다.

3학년 2, 4학년 1, 5학년 2, 6학년 2명이 남았다. 학생이 줄어 교사도 줄었다. 교사 두 명이 다른 학교로 갔고, 교무 선생님과 신규교사만 남았다. 교무 선생님은 존경하는 형이다. 어느 학교에 가든지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아이 찾아다니며 도와주었다. 집을 고쳐주고 화장실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소달초에서는 이상한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자, 온갖 쌍욕을 들으면서도 집에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 3년 만에 아이를 학교로 데려왔다.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난 뒤에 형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보살폈다. 후원금을 모으고, 언론을 상대하고, 병원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병원에서 아이 곁을 지키다가 며칠 지나서 학교에 일하러 오기를 반복했다. 화상은 금방 낫지 않는다. 학교에 나와도 특별하게 돌봐야 했다. 형이 아이를 돌보며 점점 지쳐갔다.

입학생이 있는데도 입학하지 않는 학교는 내리막을 달리는 눈덩이와 같다. 1년 지나면 4~6학년 5명만 남는다. 이때도 입학생이 없으면 ‘3년 뒤에 학교가 문을 닫는구나!’ 생각해야 한다. 친구가 없고, 1학년 다음에 4학년 2명만 있다면 누가 아이를 보내겠나! 더구나 화상을 입은 아이가 셋이나 있다. 소달초 동문회 임원들도 아이를 모교에 보내지 않았다. 학교 분위기가 어두웠다.

 

아이를 돌보다 지친 선생님이 수술을 받는다.

신규교사일 때 교사 공부 모임에서 형(교무 선생님)을 만났다. 재미있는 수업 아이디어를 많이 가르쳐주셨다. 형은 간이 약하게 타고나서 자주 아팠다. 피곤하면 몸이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 다친 아이들을 돌보며 학교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지나치게 일했다. 간이 약하기 때문에 아프면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화상 입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형은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결국 간 이식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몸은 이식한 간을 자기 신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가 아니라 세균이라 판단해서 면역 체계가 이식한 간을 공격한다. 이식한 간이 몸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데 면역 체계가 공격하니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면역 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면역 억제제는 세균과 싸우지 않게 만드는 약이다. 이식한 간뿐만 아니라 몸에 들어오는 모든 세균과 싸우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면역력이 약해져서 감기에 걸려도 잘 낫지 않는다. 이처럼 위험하기 때문에 건강이 최대한 악화할 때까지 간 이식을 늦춘다고 한다. 약해져서 아파도 자기 간으로 버티는 게 낫기 때문이다.

형은 간 이식 외에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약해졌다. 기증자를 찾기 위해 가족을 검사했다. 자녀가 적합하지 않았는데 조카가 기증하겠다고 했다. 소달초에는 가스폭발 사고가 나고 학생이 줄어 교사 둘만 남았다. 정규발령이 끝난 뒤에 수술이 결정되어 형이 휴직을 신청했다. 이식수술하고 회복하려면 1년은 쉬어야 했다. 그럼 소달초에 교사 한 명만 남는다. 남는 교사는 지난해에 처음 교사가 된 신규였다.

소달초등학교는 소규모 학교라서 교감이 없다. 20학급, 30학급에서 20~30명 교사가 하는 일을 둘이 모두 해야 했다. 교무 선생님은 교감 업무까지 해야 한다. 보건교사가 없어서 보건 업무도 해야 하고, 전담 교사가 없어서 모든 수업을 담임교사가 해야 했다. 그것도 두 학년을 동시에 가르치는 복식수업을 하면서 해야 한다. 교무부장 곁에는 이제 2년차 교사뿐이다. 교무부장이 2년차 교사 데리고 교감, 교무, 연구, 과학, 생활, 정보, 체육, 환경, 보건, 독서, 학부모…… 끝없이 이어지는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운동회도, 현장학습도, 출장도 모두 두 사람 몫이다. 게다가 화상 치료를 하는 아이가 셋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때에 이식이 결정되었다. 한 달 일찍 이식이 결정되었으면 형은 큰 학교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그럼 큰 학교 소속이 되어 휴직했을 테고, 큰 학교에는 신규교사나 기간제교사가 오면 된다. 교사 한 명이 빠져도 다른 교사가 많으므로 감당이 된다. 소달초에는 새로운 교사를 보내면 된다. 소달초에 가려는 교사가 없다 해도, 정규 발령인지라 순위가 낮은 사람을 보내면 된다. 그러나 정규 발령이 끝난 뒤에 갑자기 이식이 결정되는 바람에 교무부장 자리가 비었다. 교원 인사 규정에 따르면 신규교사가 소달초에 와야 했다.

규정대로 소달초에 신규교사를 발령내면 1년차 교사와 2년차 교사 둘이 학교를 책임져야 한다. 2년차 교사가 교감, 교무, 연구, 생활, 체육, 독서 업무를 하면서 3학년과 4학년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 처음 근무하는 1년차 교사가 정보, 과학, 환경, 학부모 업무와 기타 업무를 하면서 5학년과 6학년을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 보건교사가 없으니 아이가 다치면 선생님이 치료해주어야 한다. 경험이 없는 교사 둘이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가스폭발 사고 후유증으로 아픈 아이들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삼척교육지원청에서 경력이 있는 선생님을 소달초에 보내려 했다. 소달초에서 근무할 교사를 찾는 공문을 추가로 삼척 관내 학교에 보냈다. 정규 인사발령이 난 뒤에 한 사람을 찾는 공문을 보내는 경우도 없거니와, 고생이 뻔한 곳에 스스로 올 사람도 없었다. 규모가 있는 학교 교무를 구했다면 누군가 신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규 2년차 교사와 단둘이 화상 환자를 돌보는 자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삼척과 동해는 작은 중소도시이다. 특히 교직 사회는 좁아서 서로를 잘 안다. 신동초로 발령 났을 때 여러 사람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신동초등학교 선생님과도 전화로 인사하고 학교에 찾아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다들 거절한 자리에 가야 할까? 전화를 받자마자 왜 나일까?’ 같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조건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에 소달 마을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다는 마음이 훅 들어왔다.

장학사가 소달초등학교로 갈 수 있느냐며 전화했을 때 가스 폭발사고와 함께 소달초 교무 선생님이 생각났다. 형은 아이들과 교회를 위해 젊은 날을 바쳤다.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며 사랑했다. 형이 다니는 교회에 아이들이 찾아왔고, 형은 아이들에게 부모가 돼주었다. 형을 아빠처럼 따르던 아이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 그러나 형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형이 예수님을 생각하며 헌신할수록 교회가 형을 부려 먹었다. 형은 목사에게 실망해서 교회를 떠났다.

형에게 가끔 형이 교회를 떠났지만 예수님은 마음에 있겠지?” 하고 물었다. 그럼 형은

교회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버렸는데, 너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 교회 가란 말을 자주 하면 반발할 것 같아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물었다. 그럼 형은 애매하게 웃기만 했다. 목사에게 상처받아 교회를 떠난 형이, 가스폭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하다가 간을 이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형을 대신할 사람을 찾다가 아무도 없어서 나에게 가달라고 한다.

내가 소달초에 가야 할까?’

 

2021년 <곁에.서>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얼마나 공개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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