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때 학과 친구들 모두 지능검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 몇이 모이면 IQ가 높아서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 하나쯤은 나온다. 우리가 IQ 검사에 대한 추억을 내놓으며 설레발을 치자 교수님이
“이 검사는 평균이 100 나온다. 너희도 평균 100 나올 거야. 검사 끝난 뒤에 보자.”
하셨다. ‘교육대학 학생이면 IQ가 꽤 높은데 평균 100이라니~’ 생각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20명 평균이 거의 100이었다. 가장 높은 친구가 118이었고, 가장 낮은 친구가 82였다. IQ가 가장 높은 친구와 가장 낮은 친구가 고등학교 동창이고, 같은 하숙집에 살아서 더 재미있었다. 둘이 같이 다녀야 IQ 100이라며 놀려댔다. 졸업할 때 학점은 IQ 82인 친구가 더 높았다. IQ 118인 친구는 지금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 IQ 82인 친구는 교감으로 성실하게 교사들을 도와주고 있다. IQ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중간만 하면 될까?
IQ는 ‘학습준비도 검사’이다. 고정된 학습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지능 이론의 대표 학자는 비네와 웩슬러이다. 두 사람은 지능을 다르게 정의했다. 사실 지능검사가 일반화된 건 미국이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에 참여할 정도의 인식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검사하면서부터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인식 능력이 있는지, 창의적인지, 합리적으로 선택하는지 등을 재는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능검사가 한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어갔다.
일단 검사를 실시하면 평균을 계산한다. 우리나라는 상대평가의 기반이 견고해서 평균을 따질 일이 많다. 평균보다 낮으면 무언가 해서 평균에 이르려 한다. 평균보다 높으면 평균으로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 평균은 되어야 하고, 기왕이면 평균보다 높아야 하고, 결국 평균 수준의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정도가 되고 싶어 한다. 평균에 만족하는 사람이 적다. 지능의 획일성, 단순성을 깨뜨린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조차 ‘학원 광고’에 이용할 정도로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크다. 이런 사회에서 평균은 중간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 그럼 평균 이하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얕보는 분위기가 커진다.
평균은 이용하기 편하다. 평균에 맞추면 일을 빠르고 편하게 한다. 평균 치수의 물건을 준비하면 조금 크거나 작아도 적당히 맞춰 쓴다. 각 개인에게 맞추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은 동의하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군대 가면 중간만 해라.”는 말이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평균(중간)만 하면 될까? 중간만 하면 된다는 말이 옳을까?
평균은 기준이 아니다.
『평균의 종말』은 평균이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재미난 사례가 나온다. 미국 라이트공군기지에서 4063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140개 항목의 치수를 측정해서 평균 치수를 산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종석을 설계했다. 평균 치수로 조종석을 만들면 대부분(적어도 다수)의 조종사가 정상분포 내에 포함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니얼스 중위가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조종석 설계상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10개 항목의 평균값을 냈다. 평균값과의 편차를 30%로 넓게 잡은 뒤 평균과 조종사 개인 수치를 대조했다. 10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 범위에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0명이었다. 10개 항목 가운데 임의로 3개를 골라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를 찾아봐도 3.5%밖에 안 됐다. 평균에 맞는 조종석은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조종석이었다. 지금 비행기 조종석은 조종사 각자에게 맞추어 제작된다고 한다.
평균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평균의 종말』은 3부로 쓰였다. 1부에서 평균이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케틀레가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착안했고, 테일러가 표준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업이 공장식으로 바뀌었고 학교도 평균 수준의 산업 일꾼을 길러내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표준화 시스템은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소비자들은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 결과 평균을 바탕으로 한 표준화 시스템은 절대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평균의 시대는 두 가지 가정 위에 세워졌다. 첫째, 평균이 이상적이라면 개개인은 오류이다.(케틀레의 신념) 둘째,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골턴의 신념) 평균주의 과학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업적을 쌓은 몰레나도 두 가정을 믿었다. 그러나 갑자기 떠맡은 강의 <지능검사의 이론과 방법을 주제로 한 토론식 수업>에서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순간이자 사회학의 토대를 흔들어놓게 될 순간을 체험한다. 이 체험은 평균주의가 실용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수용되었지, 옳기 때문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몰레나는 개개인을,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살피는 평가 도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장은 교육 혁명을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을 설명한다. 평균주의는 개인을 평균에 맞추어 개개인성을 평균으로 가둔다. 이는 다차원적인 인간의 재능을 단순하게 판단하고 측정한다. 저자는 들쭉날쭉의 원리,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을 들어 이를 비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구글의 인재채용법을 증거로 제시하는데 재미있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3부는 <평균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개개인성을 바탕에 둔 기업을 소개한다. 월마트는 직원이 200만 명이 넘는 거대기업이지만 이직률이 50%에 달한다. 테일러주의식 효율성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해마다 100만 명의 직원이 바뀌어도 신입 직원이 빈자리를 채운다. 코스트코는 2014년 ‘일하기 좋은 최고 기업’에 4년 연속으로 뽑혔고 구글에 이어 ‘급여 및 직원 혜택 부문 최고 기업’ 2위에 올랐다. 직원의 88%는 회사가 지원해주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급여는 월마트보다 75% 정도 더 높다. 그런데도 회사가 이익을 남긴다.
코스트코는 월마트와 반대로 개개인성에 관심을 갖고 회사를 운영한다. 직원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대우하고 공정하게 경력을 쌓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러면 뛰어난 성과가 따른다고 한다. 이는 시대가 변한다는 증거이다.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외국 정원사들에게 팔려나가는 것만 봐도 증명된다. 이제는 테일러주의식 효율성을 앞세운 대량생산이 아니라 한 분야에 능통한 ‘장인’이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교육은 바뀔까?
평균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핵심 위치에 있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등급 매기기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에게 평균, 즉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야 한다고 강요한다. 평균으로 보여줄 수 있는 획일적인 영역에서 다른 학생보다 뛰어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지만 정작 개인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위 시스템 혁신, 성적 시스템 혁신, 자율 결정형 교육, 새 시대의 교육모델을 제시한다. 『평균의 종말』은 이 부분에서 아쉽다. 간단하게 슬쩍 이야기하다가 끝난다. 개개인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사회에서 꽃을 피우게 해주는 후속작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