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 기니스를 소개합니다.
오스 기니스, 《오스 기니스의 저항》, 난이도 ★★★★
오스 기니스, 《소명》, 난이도 ★★★
오스 기니스, 《오스 기니스, 고통 앞에 서다》, 난이도 ★★
전 백만장자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페이지가 백만 쪽이 넘거든요. 역사, 정치, 사회, 문화, 환경 가리지 않고 읽습니다. 성경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소설과 동화책도 꽤 읽습니다. 사람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습니다. 고민이 생기면 제 안에 있는 글과 생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20대에 해결하고 싶었던 고민은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부르셨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교사로의 부르심을 확인한 뒤에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소명》
30대에는 ‘고통’을 끌어안고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고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만났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홀로코스트, 순교자, 질병과 역경을 끌어안고 끙끙대는 사람들 이야기를 끊임없이 읽었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끝내지 못할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고통받는 사람들이 제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앞에 서 본 사람의 말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고통 앞에 서다》
40대가 되어서는 불의로 자기 배를 채우는 기득권층, 그들을 뒷받침하는 사회 구조, 자기들이 왜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엉뚱한 해결책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는 게 힘듭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생각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방송매체가 심어 주는 기준을 왜 그대로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이 광고하는 물건이 잘 팔리는 까닭을 모르겠네요. 그 제품을 써서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가진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받는 광고비 때문에 제품 가격만 오르는데도 사람들은 연예인들이 광고한 제품을 찾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세상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가정생활, 자녀교육, 직장생활, 이웃관계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 하다가 예배당에서만 하나님 말씀 내세우면 되는 건가요? 세상 문화에 저항하지 않으면서, 그래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종교 행위에만 몰두하는 게 불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영적 상황에 대해 갖는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세상에 만연한 시대정신을 깨닫는데 기울인다면,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갖는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항》
오스 기니스가 세 가지 고민에 대해 대답합니다. 1998년에 《소명》을, 2005년에 《고통 앞에 서다》를, 2016년에 《저항》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
오스 기니스는 소명을 궁극적인 존재 이유(1장 제목)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소명은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사제와 수도사, 수녀들에게 한정된 말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소명이 평범한 일상에 정통한 사람들의 것으로 돌아왔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소명이 점점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일상적이고 비천한 일에 평범함의 광채를 주는 것(304쪽)이라는 뜻이 희미해지고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방에서 돈 얘기다. 시급, 월급, 전세, 월세, 여행비, 학원비, 통신비……. 돈이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평범한 일에서 특별해야 하고 더러운 거리, 비천한 사람들 중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314쪽).”는 말은 의미를 잃고 희미해진다. 더구나 이런 태도는 5분 내에 배울 수 없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멀어진다. 그래서 좁은 길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생각하기 어려운 길.
《소명》에는 소명으로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가 많다.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했던 본회퍼, 국가 재정 수익의 3분의 1을 충당했던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윌리엄 윌버포스, 고든 장군, 아브라함 카이퍼, 아더 번즈……. 이들을 사례로 들어 감정을 자극하는 가벼운 책은 아니다. 생각보다 읽기 어렵다. 그렇지만 지금이야말로 부르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고통에 대한 민감성
《고통 앞에 서다》에서 오스 기니스가 인용한 책은 대부분 히틀러가 만든 포로수용소에서 겨우 살아난 유대인들이 썼다. 30대에 그 책들에 빠져 살았다. 유한하고 연약한 인생(2장 제목), 재난과 인생(3장), 우리의 가장 큰 원수(4장)인 인간의 존재를 고민하며 살았다. 왜 내게 이런 일이(5장),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6장),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7장)는 지금도 나를 짓누르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고통을 다룬 책에서 빠지지 않는다. 고통당하는 사람이라면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니까.
“악과 고통의 이유를 묻는 시도가 그릇된 비판으로 발전하는 순간, 우리는 마녀사냥과 비슷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때 즉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이유를 탐구할 때, 우리는 그릇된 설명의 방법을 찾다가 결국에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 또는 하나님을 비난하는 데로 귀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366쪽).” 고통의 원인을 사람이나 하나님께 돌리고 비난으로 화를 푸는 게 자연스럽다.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이다. 그런다고 고통이 해결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한다.
오스 기니스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의화단 사건 때 귀신이 붙었다고 알려진 다락방에 숨었다. 바퀴벌레와 쥐가 득실대고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 곳에서 6일을 숨어 지냈다. 횃불을 든 폭도들이 지붕에 올라가 불을 지르려 했고 다락문을 칼로 쑤셔댔다. 칼날이 조금만 기울어도 할아버지는 죽었을 것이다. 오스 기니스의 부모는 강도 떼를 피해 달리고, 공산주의 폭도에게 친구들이 죽는 걸 보고, 일본군의 포탄 공격을 피하고, 난징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기억을 함께 나누었다. 사람들이 고통의 원인이 된 사건들. 그러나 오스 기니스의 부모가 겪은 가장 잔인한 고통은 허난성의 기근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으킨 것 같은 고난.
오스 기니스는 고통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으로 책을 썼다. 다섯 번째 질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문제(13장), 용서의 문제(14장), 저항의 용기(15장)로 질문에 대답한다. 여섯 번째 질문에서 인간의 한계를 논한 뒤에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악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신이 존재하지 않을까?”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분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한다. 더불어 《고통 앞에 서다》에서 언급된 책이 고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
《저항》이라 하면 보통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 잘못된 권위나 사회 구조에 맞서는 행동을 생각한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서거나 1인 시위를 하는 행위를 생각한다. 오스 기니스는 그리스도인이 먼저 사상의 저항, 사고 체계의 저항, 시대정신에 대한 저항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스 기니스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신앙의 변절을 요구한다고 진단한다. 현대 사회에 잘 적응해서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자체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현대 사회가 내세우는 소리가 불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을 얕보며 손쉽게 승리를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단순하지만 유일한 논리를 내세운다면 모를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승리를 선포한다. 세상이 듣고 비웃을 논리로 자기들끼리 만족하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는 세상이 주입하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런 건 승리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끼리 모인 곳에서, 우리끼리 하는 활동에 제한되지 않는다. 날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세속주의, 현대주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먹고 입고 자고 생각하는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시대 정신에 맞서야 한다.
《저항》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이것이다. “유대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을 때, 사람들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고수했다. 하지만 유대인으로 사는 게 쉬워지자 사람들은 유대인이기를 포기했다. 전 지구적으로 이 시대 유대인의 중대한 문제가 이것이다(25쪽).”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살아갔다. 그러나 물질이 풍부해지고 누릴 것이 많아지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점점 희미해진다. 주일에 어디에 있느냐만 다를 뿐 그 외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점점 많아진다. 이렇게 살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에서 싸워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오스 기니스는 신앙의 박해보다 현대성의 유혹이 더 위협적이라 말한다. 지금 세상은 세속주의, 과학주의, 자연주의 세계관, 기술 발달, 정보화 시대, 상대주의에 끌려가고 있다. 권위는 고리타분한 것이 되었고 선택은 그저 선호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홀로 떨어진 개인이 되어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 또한 초자연적 영역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온통 세속적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선택하는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면 하나님을 전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온통 이 땅에서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사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면 하나님 나라가 귀에 들릴 리가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영역은 다름 아니라 현대성에 대한 저항이어야 한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뿔 달린 악마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는 시대정신으로 다가온다. 21세기의 우상은 금은동철로 만든 형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는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우리 생각과 몸이 현대주의에 푹 젖어 있으면서 어렴풋하게 사단과 우상을 생각한다면 싸움이 안 된다. 이 책은 읽기 어렵다. 시대 정신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글로벌 세상의 하늘에 몇 개의 태양이 있는지(3장 소제목)’ 소개하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끙끙대야 한다. 특히 2~4장, 교회를 공격하는 악의 정체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낯선 내용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사로잡는 사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종교 언어가 통하는 곳에서 종교 언어로 말하며 우리끼리 감상에 젖는 한순간의 활동이 아니다. 날마다, 우리가 걷는 모든 곳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시대정신에 맞서며 살아야 한다.
신인류의 출현
신규 교사일 때 예수님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마음이 앞섰지만 복음을 제대로 몰랐던 때라 내가 전한 복음은 이원론으로 치우쳤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요. 나를 싫어하는 아이도 복음에는 진지하게 반응했죠.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복음을 더 쉽게 설명합니다. 학급을 잘 이끌어 나를 싫어하는 아이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복음에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마치 대형마트에서 물건 담듯 하나님을 자기 가방에 담아 필요할 때 꺼내는 분으로 인식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신인류입니다. 제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체계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려면 하나님 앞에서의 명확한 부르심,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하나님 뜻으로 이해하고 견뎌내는 마음,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소명》으로 《고통 앞에 서》서 《저항》하며 살아야겠죠.
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