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18. 수요일의 전쟁
수요일의 전쟁, 좀 길지만 기가 막힌 책입니다. 저는 수요일의 전쟁을 읽으며 열 번 정도 낄낄거리고 다섯 번 정도 눈물을 글썽입니다. 책 좋아하는 자녀 둘도 몇 번씩 울고 웃습니다. 누구나 이렇지는 않습니다. 책과 친하지 않은 선생님 몇 분께 추천했더니 한두 번 웃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수요일의 전쟁은 ‘책벌레’를 위한 책입니다. 책벌레들을 웃기고 울립니다. 2년 반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만난 독서반 아이들이 뽑은 최고의 책 5위에 듭니다.
저는 토론할 때 발문지를 만듭니다. 발문이 토론에 주는 영향을 압니다. 수요일의 전쟁을 나눌 때는 “작가가 책을 쓴 까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주인공 홀링 후드후드는 수요일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선생님과 단둘이서 세익스피어 작품을 읽습니다. 세익스피어라니! 처음에는 끔찍한 고문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세익스피어에 빠져듭니다. 작품에 나오는 욕을 배워 써먹고 세익스피어 작품으로 연극을 합니다. 저자는 홀링이 겪는 상황 곳곳에 세익스피어 작품을 녹여냅니다.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게리 슈미트는 영어과 교수입니다. 대학생들과 세익스피어 작품을 나누겠죠! 학생들이 세익스피어를 읽을까요? 깊이가 얼마나 될까요? 언젠가 <완득이>를 읽고 웃지 않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완득이를 교과서와 문제집처럼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웃지 않지요. 우리나라 고전 50선이나 ○○대학 선정 도서 100권을 다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게리 슈미트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요? 영어과에 입학한 대학생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스스로 읽지 않은 건 아닐까요? 그래서 세익스피어 작품이 곳곳에 녹아든 책을 쓴 건 아닐까요? 독서반 아이들은 게리 슈미트가 책 안 읽는 입학생을 위해 세익스피어 작품이 얼마나 재미난지 보여주려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재미로 읽고, 자기가 관심 두는 내용만 찾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토론을 해도 늘 아는 이야기만 하고, 말꼬투리 잡고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발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책을 읽어도 발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들 말을 들으면서 토론거리를 찾습니다. 수요일의 전쟁도 첫 시간에 게리 슈미트가 책을 쓴 의도를 찾는 도중에 ‘아, 책 내용을 이야기하며 독서감상문 쓰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종류 질문을 만들어 두 번째 시간 내내 나누었습니다.
홀링이 겪은 일은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쓴다면 어떤 경험을 포함시키고 싶을까?” 가족과, 친구와, 혼자 겪은 일을 말합니다. 유치원 때, 몇 년 전에, 올해 겪은 일도 말합니다. 홀링이 겪은 일을 보면서 작가에게 소중한 기억을 생각하고 내게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독서감상문에 쓰면 어떨까? 홀링이 겪은 일과 저자를 연결하고 내 기억을 글로 표현하면 좋은 독서감상문일까?” 하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빠와 누나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누구 편을 들고 싶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선생님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겪은 선생님과 견주어 보자.” 내용을 이야기한 뒤에 “우리는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걸 쓰면 된다. 독서감상문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물어보니 여러 아이들이 “베이커 선생님은 나를 보았다. 나는 알았다. 선생님이 혼자 있으려고 나를 교장실로 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함께 촛불을 켠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없는 법이다.(350쪽)”를 뽑았습니다. “독서감상문에 좋은 문장, 감동을 주는 부분을 써도 될까?” 하니 좋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홀링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써오라고 합니다. 그때 홀링은 여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라 이렇게 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세익스피어가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다. ~ 만약 줄리엣을 만나지 않았다면 로미오는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주 받은 운명 때문에 로미오는 줄리엣을 만났으며, 줄리엣이 온갖 계획을 서슴없이 털어놓는 바람에 로미오는 결국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229쪽)”
며칠 뒤에 배신이 오해였음을 알고 홀링은 독서감상문을 다시 씁니다.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동시에 두 가지를 좋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몬태규 가문도 좋아하고 줄리엣도 좋아하기는 힘들다. ~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예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두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 세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231-232쪽)”
“홀링은 독서감상문 내용을 왜 이렇게 바꾸었나? 이 질문을 통해 볼 때 좋은 독서감상문은 어떻게 쓰는 걸까?” 물었습니다. 홀링이 겪은 일이 독서감상문 내용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같은 내용을 써내는 정답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쏟아낸 글입니다. 아이들에게 독서감상문은 줄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써야’ 한다고 계속 말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 독서감상문을 배운 뒤에는 글이 바뀝니다. 독서감상문을 쓰는 것도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가르침으로 생각합니다. 잘 가르치는 좋은 선생을 찾아다닙니다. 좋은 문제집 찾으면, 좋은 강사 만나면, 좋은 방법을 알면 아이가 잘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교육은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다릅니다. 엉터리로 가르쳐도 배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지점에서도 아이들은 배웁니다. 잘 가르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우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시를 잘 쓰는 아이를 여럿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나눈 방법을 선생님들께 알려드렸습니다. 한분이 제가 알려준 방법 그대로 시 수업을 하고는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영상에서 선생님은 제가 보여준 시를 보여주고, 제가 한 활동을 그대로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이 선생님 기대와 다릅니다. 아이들 반응에 따라 질문을 바꾸고 대응해야 하는데 계속 제 방법을 따라갔습니다.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다가 아이들 반응을 놓쳤다’고 합니다. 제가 만든 발문지 그대로 가져다가 다른 아이들과 토론하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시를 가르치건, 독서토론을 하건, 무엇을 가르치던지 좋은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법만을 매뉴얼로 내세우다가 아이를 놓치면 안 됩니다. 아이 수준에 따라, 반응에 따라, 준비도에 따라, 관심에 따라 방향이 달라집니다. 2년 동안 독서모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독서모임을 하려면 좋은 책을 골라야 합니다. 발문을 잘 해야 합니다. 글쓰기 지도도 해야 하고 쓴 글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입니다. 아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 눈을 바라보세요. 눈을 보고 말하세요. 아이 눈을 반짝이게 하는 걸 찾으세요. ‘이건 중요하다. 네가 꼭 알아야 한다’고 선생님 눈빛을 반짝여도 아이가 ‘그게 뭐가 중요해요?’하면 방향을 바꾸세요. 아이에게 맞추세요. 제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아이들과 책을 나누며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기 바랍니다.
글 쓰다 보니 수요일의 전쟁, 또 읽고 싶어집니다. 캬~ 이 맛을 알면 여러분도 책벌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