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일반독자

분노 뒤에 감춰진 것들

책뜰안애 2020. 9. 21. 19:05

산둥수용소, 랭던 길키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 제니 롭슨

194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뒤에 중국에 있는 백인들을 산둥지방 위현수용소에 보냈다. 일본의 포로가 되었지만 백인들은 우리 선조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죽거나 고문당하거나 위안부로 보내지지 않았다. 수용소 안에 갇혀 살았지만 생명의 위협은 당하지 않았다. 물론 불편하게 지냈다. 기상시간, 취침시간이 있고 개인공간은 사라졌다. 좁은 방에 여럿이 함께 지내야 했다. 평소에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던 물건 대부분을 쓰지 못했다. 좌변기는 당연히 없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술집 주인과 회장, 선교사와 천주교 신부, 백인과 결혼한 타국 여성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했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이 점호를 받고, 똑같이 지저분한 화장실을 썼다. 대기업 회장이 결코 겪지 않을 문제를 마약중독자, 노동자와 함께 해결해야 했다. 화를 돋우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저마다 달랐다. 누구를 화나게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자라온 환경, 개인의 성품과 기질, 사회적 지위, 지금까지 누리던 것에 따라 화를 내는 순간이 달랐다.

화장실 청소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사람들의 개인 영역을 정해주는 숙소업무는 충돌하는 이기심을 조정하는 일이어서 힘들었다. 개인 공간을 더 차지하려는 마음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았다. 음식, 난방도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남성과 여성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일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이었다. 남자 화장실 청소는 미국인 선교사와 영국인 은행가가 맡았다. 그들은 화장실에 들어오는 손님과 웃고 떠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남자들에겐 화장실 청소가 다른 일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은 달랐다. 화장실 청소를 계속 하려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며칠씩 돌아가며 청소했다. 그런데도 자기 차례가 되면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티를 냈다. “이번 주에 제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 아세요?” 라는 식으로 크게 희생한다는 표시를 했다. 특히 영국 사업가 아내들과 두 명의 러시아 여성이 보여주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영국 사업가 부인들은 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했다. 화장실 청소가 귀부인으로 살아온 자신들에게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화장실 청소를 공공 봉사로 생각했다. 화장실 청소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러시아 여성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화장실 청소를 피했다. 러시아 여성들에게 화장실 청소는 과거 자신들의 삶을 나타내는 일이었다. 부자와 결혼해서 영국 사업가 부인들보다 지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었다. 화장실 청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자신들을 돌려보냈다. 자신들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가 났다. 러시아 여성에게는 귀부인으로 살아온 영국 여성들처럼 공공 봉사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백인 남성의 아내가 되기 전에 했던 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영국 여성과 러시아 여성은 화장실 청소를 다르게 판단했다. 같은 일이지만 영국 여성은 봉사의 기회로, 러시아 여성은 아랫사람이나 하는 지저분한 일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부를 하찮게 여기고 판사는 괜찮게 여긴다. 청소부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직업이 아니라 못 배운 사람이 하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고귀한(noble)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사람의 가치와 동일하게 여기는 태도는 차별을 불러온다. 한 사람의 진짜 가치를 올바로 보기 전에 선입견을 갖고 회피하게 만든다. 차이를 차별로 보는 태도가 쌓이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화를 내는 까닭

강원도 영월에 있는 초등학교에 독서캠프를 하러 갔다. 첫 날 3시간 동안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의 내용을 알아보았다. 토미는 전학 오던 날부터 방한모를 쓰고 얼굴을 가렸다. 눈만 내놓고, 밥 먹을 때도 코 위로는 보여주지 않았다. 화상이나 흉터가 있을 거라는 추측부터 외계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그래도 토미는 방한모를 벗지 않았다. 일곱 번이나 전학을 다닌 토미는 결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그럴수록 반 친구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토미가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방한모를 뒤집어쓰고 다닌다. 다음 4가지 중에서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까?”
1) 방한모를 왜 쓰고 다니는지 묻는다.
2)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다.
3) 얼굴을 보려고 시도한다. , 강제로 벗기지는 않는다.
4) 강제로 방한모를 벗기고 얼굴을 본다.

<주장-왜냐하면-예를 들어-다시 말해>로 한 문장씩 써서 발표하라고 했다. “(주장)방한모를 왜 쓰고 다니는지 묻는 건 괜찮다. (왜냐하면) 비밀이나 약점을 찾아내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모자를 쓰고 올 때 왜 모자를 썼는지 묻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방한모를 벗기려는 게 아니라 그저 물어보는 것이므로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 모둠이 의견을 발표할 때마다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다섯 모둠의 발표와 반대 질문이 비슷했다. 방한모를 쓰는 까닭과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토미가 대답한다면, 토미가 질문에 상처를 받지 않은 셈이다. 비록 싫다고 거절하는 대답일지라도 자신을 감추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상처 받은 표시일 수 있다.

사람들이 상처 받았을 때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발표하라고 했다. 아이들 의견을 정리하면 두 가지이다. 조용히 혼자 지낸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거나 슬픈 표정을 한다, 화장실이나 자기 방에 가서 운다 등의 소극적인 표현을 보인다. 또한 욕한다, 다른 곳에 화풀이한다, 뒷담화를 한다, 대놓고 말한다 등의 적극적인 표현도 말한다. 상처를 받으면 침울해지며 혼자 조용히 지내기도 하지만 소리를 지르고 욕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억울할 때,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공격당할 때, 공평하지 않을 때…… 인간은 분노한다. 그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서 분노를 표출한다.

알아보는 눈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알아본 뒤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상도서에서 가장 상처 받은 인물은 누구일까?”

아이들이 토미, 응포, 체리스, 벤터 선생님을 꼽는다. 토미는 얼굴을 가리고, 응포는 말을 하지 않으니 상처 받은 게 맞다. 그러나 아이들이 체리스를 상처 받은 아이로 생각해서 놀랐다. 체리스는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는데 나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벤터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거라 한다.

러시아 여성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러시아 여성들을 비난하면 태도를 바꿀까? 러시아 여성은 부유하다. 체리스는 공부를 잘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기와 달리 상처가 있다. 자신들의 아픔과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바꾸라고 강요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강제하는 건 오히려 분노만 일으킬 뿐이다. 의무, 윤리, 법규, 도덕으로 러시아 여성이 화장실을 청소하게 만들지 못한다. 토미의 방한모를 강제로 벗기면 친구가 되지 못한다.

친구들이 토미의 얼굴을 보려고 토미를 힘들게 했지만 토미가 5학년들에게 공격당할 때 지켜준다. 그때 배웠는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토미가 자연스럽게 방한모를 벗어버리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고 창문 밖만 바라보기 때문에 우주 미아라는 별명이 생긴 응포가 말을 한다.

우리나라를 분노 사회라 한다.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이 떳떳하게 얼굴 내놓고 다니지 못하는 사회 인식이 분노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태도가 계속되는 한 여전히 분노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분노사회에서 벗어나는지 모르겠다.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자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