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반박문을 붙인지 500년이 지났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분기점, 평신도에게 말씀을 돌려준 전환점, 개신교의 출발점이다. 개신교회에서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킨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반박문을 붙이면서 가톨릭이 개혁되기 원했지만 가톨릭을 떠난 다른 걸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통용되던 방식으로 의견을 제시한 뒤에, 하나님께 등 떠밀려 깃발을 들었다고나 할까!
루터가 깃발 들고 앞서자 사람들이 줄 맞춰 함께 행진해서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종교개혁은 교황권과 황제권의 대립, 유럽 각 나라의 상황, 지방 영주(제후) 권한, 인쇄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확장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교황과 지지세력이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맞서는데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은 초기에 뿌리 뽑혔을 것이다. 영주들의 권한이 교황의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강해지지 않았다면 선제후(황제 선거권을 가진 제후)는 루터를 보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흐름과 이야기가 종교개혁을 떠받치고 있다.
누구를 기억하는가?
종교개혁 하면 루터와 칼뱅을 생각한다. 둘은 종교개혁의 영웅이다. 사람이 기억하는 영웅은 멋지고 장엄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할 일을 해낸다. 대단한 능력, 탁월한 언변과 지도력, 굳센 의지와 끈기로 세상을 바꾼 사람을 기억한다.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기억에 남지만 조용히 뒷정리하는 사람은 잊혀진다. 멜란히톤이 그런 사람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다. 칼뱅은 극단적인 모습까지 보이며 개혁을 이끌었다. 멜란히톤은 중도노선을 걸었다. 당시에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중도주의자가 있었다. 천주교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에라스무스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 에라스무스는 온건하게 개혁하기 원한 인격자이다. 온건한 개혁은 과연 가능할까? 교황이 협력하면 가능하겠지만 개혁 대상인 기득권층은 온건한 요구를 듣지 않는다. 점잖게 말할 때 듣는 사람이라면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교황권 아래에서 권력을 누리며 재물을 긁어모으던 사람들을 이기려면 과격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격한 방법은 자체 내에 모순을 갖고 있다. 폭발력이 있으나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 잘못을 일으킨 가능성도 많다. 루터에게 멜란히톤이 없었다면 너무 멀리 가버려 개혁되지 못하거나 방향이 바뀌었을 것이다.
화해주의자 멜란히톤
이 책은 멜란히톤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시기에 일어난 일을 말한다. 40개의 짧은 글을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처음 글은 ‘멜란히톤? 그게 뭐죠?’이고 마지막 글은 ‘멜란히톤 깊이 읽기’다. 멜란히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읽을 가치가 있다고 전한다.
멜란히톤은 일곱 살 때 고향이 적군에게 포위 당한 일을 겪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투병하다가 죽었다. 이런 경험이 멜란히톤을 화해주의자로 만들었다. 인문주의자들과의 만남도 영향을 주었다. 다투는 무리들 사이에서 중재와 화해를 전했다. 멜란히톤을 만난 수녀는 ‘모든 개신교인들이 멜란히톤 같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멜란히톤은 협상 상대, 조언자, 교사와 교수로 뛰어나서 개신교도뿐만 아니라 가톨릭 측으로부터 전향 제의를 여러 번 받았다. 가톨릭 안에서의 개혁을 원하는 구교 진영 개혁가들은 멜란히톤이 자신들 편이 되면 급진적 종교개혁을 저지하여 교회 내부의 개혁이 지지를 받으리라 기대했다.(100쪽) 루터 곁에는 화해주의자 멜란히톤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루터는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만나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멜란히톤은 자신이 루터에게 ‘모욕을 당한 노예 신분(25쪽)’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버텨냈다. 그에겐 개혁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언어학자, 신학자, 교사 ……
멜란히톤은 루터에게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라고 요청했다. 루터보다 그리스어 실력이 좋아서 번역할 때도 참여했다. 루터 성경은 사실 루터-멜란히톤성경이다.(31쪽) 루터보다 먼저 교리문답서를 만들었고 개신교 격언집과 개신교 신학 교과서도 최초로 저술했다.(32쪽) 루터보다 저술을 많이 했으며 교수이자 문헌학자인 친구 카메라리우스에게 보낸 편지는 900통 이상이나 남아있다, 교육에 영향을 미쳐 ‘독일의 스승’으로 불린다. 독일을 넘어 유럽 대부분 지역의 교회사와 교육사에 관여했다. 저자는 멜란히톤이 16세기에 이미 미래 교회를 구현한 사람이라고 한다.
멜란히톤은 언어에 능했다. 또한 신학과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개신교 최초의 교과서인 <신학총론>을 펴냈는데 ‘오직 은혜로 죄인을 의롭게 한다’는 말씀이 핵심내용이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루터가 말한 내용을 멜란히톤은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가톨릭과 루터파, 칼뱅파가 결론 없는 싸움을 계속한 뒤에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555년에 이들은 아우구스부르크 종교 평화회의에서 하나의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었는데 ~ <2천년 동안의 정신, 폴 존슨, 살림, 393쪽>”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톨릭이 주장하는 전통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공표한 문서이다. 멜란히톤이 부드럽게 적었지만 가톨릭의 반대를 받았고,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작성하여 공표한다. 신성로마제국에서 개신교를 인정하는 문서로 불린다. 이 문서 역시 멜란히톤이 정리했다. 그러나 1530년 6월 25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황제와 제국 의원들 앞에서 낭독될 때 멜란히톤은 너무나 지쳐 숙소에 앉아 울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 외에도 다양한 주장이 넘쳐났다.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 내부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자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개신교 내에서도 가톨릭을 대하는 태도, 말씀, 성찬, 세례, 자유의지, 성자 숭배, 예배 의식 등에 대한 반응이 저마다 달랐다. 루터 교회와 개혁 교회 사이의 성찬 논쟁은 1973년이 되어서야 ‘로이엔베르크 합의’로 중재가 되었다. 이 중재는 멜란히톤이 ‘빵과 함께’라는 표현으로 제시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멜란히톤이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기독교 통합 운동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멜란히톤은 교사를 칭찬했고 자신도 훌륭한 교사였다. 교육이란 당대 사회에서 떠난 상아탑을 이루면 안 된다고 했으며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였다. 대학을 개혁했으며 사급 인문학 학교(고등학교)를 만들었다. 신학 교과서 <신학총론>을 쓰고 계속 개정했다. 루터는 불을 붙였고 멜란히톤은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심지를 조절하고 연료를 채웠다.
평신도 멜란히톤
멜란히톤은 사제도 목사도 아니다. 그리스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 능통해서 성경을 번역하였지만 평신도이다. 1521년 9월 29일, 멜란히톤은 소모임에서 몇몇 대학생과 함께 빵과 포도주로 성찬식을 치렀다. 평신도 제사장직을 수행한 셈이다. 종교개혁가의 후예로 살아가는 한국 개신교회 평신도가 성찬식을 행한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멜란히톤은 그보다 더한 반대를 받았겠지만 만인제사장직을 직접 수행했다. 비텐베르크성교회 제단 왼쪽에 멜란히톤이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을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려놓았다. 사제도 목사도 아닌 멜란히톤이 세례를 주는 모습은 평신도 종교개혁 신학자인 멜란히톤을 잘 나타내고 있다.
멜란히톤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다. 유대인에 대해서는 옹호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지만 투르크인은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라고 했다. 헤센 방백 필리프의 중혼을 허락했고, 곤경에 처하자 개신교에 정치적․도덕적으로 손실을 끼쳤다고 생각하고는 감당할 수 없어 병에 걸리고 말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정도였다. 잘못 결정하기도 하고, 지치고 낙망하여 울었다. 그러나 줄곧 강력한 다툼의 자리에서 화해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멜란히톤은 정이 가는 평신도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서 안타깝다. 앞장서서 이끌어간 지도자가 아니라서 외면하지만 멜란히톤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더 거칠고 답답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책은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를 말한다. 종교개혁 시대를 모르는 평신도가 읽기에는 조금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막아선 세력에 맞서 분투한 평신도 멜란히톤을 만나면 우리가 대항해야(프로테스트) 하는 장벽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막힌 담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