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내가 만난 아이 글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

책뜰안애 2020. 8. 1. 19:56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들 중에서 골랐습니다.

1. 2009~2010년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들과 헤어질 때, 아이가 교육청에 보낸 편지

2. 2009~2010년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가 이듬해 스승의 날 보낸 편지

3. 2009년에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가 고3 졸업하며 2019년에 보낸 편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일요일마다 독서반에서 만난 여학생)

4. 2010년에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가 고3 졸업하며 2020년에 쓴 후기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일요일마다 독서반에서 만난 남학생)

독서반을 돌아보며

***

독서 논술을 하기 전, 내가 논리적이며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트럼펫을 부는 백조 루이'를 읽고 글을 쓰려고 펜을 잡았을 때, 무엇을 써야 할지 난감해졌다. 지금까지 내 생각을 표현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걸 글로 써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백지를 보며 난 당황했고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는 과정은 힘겨웠다. 그렇게 여하튼 글 하나를 써냈지만 쓰면서도 조잡하고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셨으나 나에 대한 실망은 가시지 않았다.

그 후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난 예전의 내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논리적이고 깊다고 믿은 생각은 사실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난 그저 책과 텔레비전에서 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를 내 생각이라 믿고 이에 대한 굳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반복재생에 불과한 일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똑같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정 성향의 뉴스, 인물의 발언이나 특정주의의 이론, 주장을 듣고 이를 마치 자신이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인 듯 말하는 사람들. 실은 이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는 하나도 없이 욕심과 분노에 따라 결론을 냈음에도 말이다.

내가 독서 논술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남이 아닌 '나의 생각'을 시작한 것. 내 입맛에 맞는 남의 생각을 골라 듣고 이를 타당한 생각이라고 결정하는 데에서 적어도 한번은 비판적으로 고민하려고 하는 것. 이제야 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고민하며 나의 생각을 더 키워나갈 수 있었다.

책이란 그런 것 같다

, 소설, 수필 같은 여러 가지의 책들은 모두 작가의 생각을 넌지시 포함하고 있고 독자는 이를 책을 읽으며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이다. 작가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다. 이 단계에서 독자는 작가의 생각과는 다른, 혹은 이를 뛰어넘는 자신의 생각을 만들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특별한 생각을 말이다.

처음 글자가 생겨났을 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되었을 때, 또 정보화 혁명이 일어나고 누구나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인류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닐까.

책이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