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송인수 / 우리학교
강원도 시골에서 교사로 지내면서 답답했다. 생각을 나눌만한 사람이 너무 적었다. 학교를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로 생각하는 사람은커녕 교회 다니는 교사도 드물었다. 교회에서 집사, 장로인 교사도 학교에서는 그냥 교사였다. 일반 교사 중에 좋은 사람 많았지만 자꾸만 나쁜 교사가 눈에 들어왔다. 초보로 허덕이며 “존경할만한 선배를 보내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학교를 사역지로 생각하며 아이에게 삶을 쏟는 교사를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했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내 곁에도 좋은 교사가 있었지만 ‘존경’이라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내 기도제목은 기독교사대회에 참가하면서 응답 받았다.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람
기독교사단체 연합모임인 <(사) 좋은교사운동>에서 2년마다 한 번씩 기독교사대회를 한다. 처음 참가한 기독교사대회에서 송인수 선생님을 만났다.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기던 선생님은 기독교사대회 마지막 날 우리에게 후원금 증액을 요청했다. 지금도 좋은교사운동은 교사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앉아있는 1800여 교사들은 돈을 내는 위치였고 선생님은 후원을 요청하는 위치다. 뭐라 해야 할까? 귀한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후원해 달라고 부탁해야겠지.
고통당하는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거나 효과가 많은 사역이라고 홍보하면 후원금이 늘어난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득해도 늘어난다. 헌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득한다. 예배당 짓는 걸 ‘성전 건축’이라고 해야 헌금이 늘어난다. 헌금 많이 하면 복이 올 거라고 말하면 역시 헌금이 늘어난다. 하나님 나라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늘어나겠지만 다른 방법보다 후원금이 많아지진 않을 것이다.
선생님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는 일인데 후원금 조금 내고 만족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돈 내놓으라는 소리 듣고 찔렸다.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에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선생님도 안다. 그러나 우린 교사다. 아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이를 위한 일에 후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미안해하며 증액했다. 후원 더 해달라는 소리를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는 분은 처음 봤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후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요청한 자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게 요구하려 한다. 만일 내가 타인에게 운동에 초대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에게 더더욱 미안한 일이다. 그런 일은 당장 중지해야 한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일에 자신을 밀어 넣을 만큼 가치를 확신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돈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102-103쪽)”
교회에서 동정심, 성전 건축,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가치, 예수 그리스도가 원한 일이라는 가치를 외치며 헌금하자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모한 운동가
송인수 선생님은 구로고등학교에서 13년 동안 교사로 생활하다 2003년 사직했다. 기독교사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을 섬기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포기했다. ‘안정’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 곁을 떠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강의 중에 선생님은 자살한 고등학생의 시를 읽으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져 헌신하라’고 울부짖었다. 함께 울었다. 더 높은 가치, 고귀한 목표를 위해 교사인 우리가 더 낮아지고 고생하자고 외쳤다. 돈 많이 벌지 말고 고생하자는 말에 박수를 쳤다.
5년 동안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긴 뒤에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했다. 무모하다. 사교육 걱정을 없애겠다니 가당키나 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치 아픈 곳이 교육부장관 자리다. 무얼 해도 욕먹는다. 아이를 생각하면 이익집단에 욕먹고 학부모 생각하면 관료가 욕한다. 교사를 생각하면 학부모가 욕한다. 사교육 문제는 논란의 핵심에 있다. 모두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으면 저마다 말이 다르다. 국민 전체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사교육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꿈을 꾸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교육이라는 철옹성에 온몸을 부딪칩니다. 사교육업체에 고발당하고 위협도 받지만 ‘가치’에 투자한 이상 맞서 싸웁니다. 무모한 출발에 놀랐는데 치밀한 정책, 꼼꼼한 추진력, 성실한 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학생을 향한 사랑에 감격한다.
선생님은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당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편지 보냈다가 고생도 했다. 문제집 팔아주고 받은 돈으로 회식하는 문화에 반대해서 왕따를 당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런 삶이 있어서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책의 부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겠지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는 선생님이 틈날 때마다 쓴 생각 모음(일기, 에세이)입니다.
빚진 자로 사는 삶
선생님은 ‘기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립니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여러 번 요청해서 나온 책입니다. 틈날 때마다 올린 글이라 한 가지 주제로 정리하지 못한다. 책을 내려고 글을 쓴 글이 아니라 주제로 내용을 구분하기 어렵다. 가족(아들, 아내, 어머니), 소소한 일상(날씨, 전철에서 만난 제자), 묵직한 운동(시민운동을 하는 이유, 운동의 품격, 운동을 하는 자세와 방향), 미래에 대한 소망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깝다’, ‘멋지다’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빚진 자로 분투하며 가족에게 빚을 지는 마음을 안타깝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위해 가정일을 나누고, 아들과 단둘이 텐트 꾸려 여행을 다니며, 환경을 위해 여전히 선풍기로만 버티는 모습이 멋졌다. 한 발 물러서기가 얼마나 쉬운 줄 알기 때문에 이 악물고 서서 버티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힘든 길을 선택한 남편과 아버지를 존중하며 함께 가는 가족이 멋집니다.
책에서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내용은 ‘운동’입니다. 운동가로서의 기질과 성품을 갖지 못한 저로선 시민단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운동을 왜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이렇게나 고민해야 하는지 몰랐다. 언젠가 조선소 회장이 수십 억의 후원금을 제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절박하게 필요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도할 때 들어온 돈이 아니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절박하게 운동하다가 적절할 때 들어오는 거액은 거액이 아니다. ‘사명의 규모’가 ‘후원금’보다 큰 조직이 되어야지, 후원금의 규모가 사명보다 큰 조직은 위태하다.(124쪽)” 저는 이런 생각 못한다. 운동의 효과만 생각하고 감사하게 썼을 겁니다.
“길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다. 모순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길입니다. 그렇게 던지면 없던 길이 생깁니다.(39쪽)” 모순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라 피해가라는 뜻 아닌가요? 모순이기 때문에 자신을 던져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모순에 구멍을 뚫고 돌을 깨며 조금씩 길을 만드는 걸 보면 정말 길이 생기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
선생님께는 삶이 곧 글입니다. 지금 겪어내는 일상과 앞으로 만들어갈 일상의 바탕에는 ‘빚진 자’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되, 미래를 바라보며, 깊은 절망과 아픔을 딛고 서는 모습을 써낸 글이라서 귀한다.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뜻’이 있어야만 직면할 수 있는 강물과 계곡이 우리 각자에겐 얼마나 많은가. 한 번 건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삶의 숙제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뜻’을 구하며, 얻어진 답에 우리 생을 실어야 한다. 그것만이 가장 안정된 선택이다. 진정으로 용감한 선택이다.(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