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왜 쓸까요? ‘반성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명심보감 읽고 날마다 자기를 다듬었던 선비들도 저녁마다 반성하는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열하일기’에는 반성이 없습니다. ‘난중일기’는 공무수첩처럼 대부분 한 일을 적었습니다. ‘안네의 일기’에는 반성은커녕 소녀의 잡다한 생각만 가득합니다. 초등학생들이 평범하게 지낸 하루 일과와 생각을 쓴 일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을까요?
「빼앗긴 내일」을 엮은이는 “일기는 기억을 왜곡시키지 않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일기는 글을 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세상에 발표할 작정을 하고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솔직하고 진실합니다. 처음부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지만, 결국 개인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5쪽)”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일기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그때그때 다른 수준과 낱말로 쓰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라고 하기 때문에 쓴다’고 대답합니다. 시키지 않으면 거의 안 씁니다. 아이들은 일기 쓰는 까닭을 모릅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게 얼마나 귀한지도 모릅니다. 부모님 중에서도 일기를 왜 쓰는지 직접 느낀 분이 적습니다. 오래도록 일기를 꾸준히 쓴 분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억지로 쓰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었을 겁니다. 어른이 되도록 남겨둔 일기를 보며 유치하면서도 순진한 시절을 돌아보는 분도 적습니다. 그래서 일기의 가치를 ‘반성’이나 ‘글쓰기 연습’ 정도로 낮춰버리고 강요합니다. 아이들은 억지로 쓰긴 하지만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해방되는 날만 기다립니다. 열심히 쓴 아이들도 중학교에 가는 순간 일기를 끝냅니다.
「빼앗긴 내일」은 일기 모음집입니다. 1차대전, 2차대전, 홀로코스트, 베트남전쟁, 보스니아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전쟁을 겪은 아이들이 쓴 일기를 모아놓았습니다. 즐라타 필라보빅이 11살, 피테 쿠르가 12살로 가장 어립니다. 전쟁의 한가운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아이들은 죽음의 위기와 불안을 일기에 적으면서 견딥니다. 전투에 참가하면서 일기를 쓴 아이들도,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곳에서 살았던 아이들도 모두 힘들고 어려운 때를 보냅니다. 그리고 일기를 씁니다. 기록으로 남긴 일기를 보며 우리 아이들도 그들이 겪은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서 지금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물었습니다. “미래에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좋을까? 3가지를 말해보자.”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안하게 살고 싶답니다. 전쟁을 말하는 아이는 없지만 불안을 내비칩니다. 지금은 평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질까? 나빠질까?” 물었더니 2/3는 좋아질 거라 하고 1/3은 환경파괴 때문에 나빠질 거라고 합니다. 대답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미래는 막연합니다. 확실하게 꿈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소중하다는 건 압니다. 토요일마다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희미한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기록으로 남길만한 걸 찾으라고 합니다. 토론하는 이유도 기록할만한 걸 찾기 위해서라고 가르칩니다. 계속 이걸 강조해서 아이들도 ‘기록’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빼앗긴 내일」주인공들도 죽음의 불안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에 그때를 기억하며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을 읽는 아이가 별로 없습니다. 「빼앗긴 내일」도 처음에는 즐라타 필라보빅 혼자 쓴 일기모음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저격병의 총탄을 피해 숨어 지내며 쓴 기록을 읽는 사람이 적어 절판되었습니다. 「빼앗긴 내일」도 언제 절판될지 모릅니다. 일기를 반성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남기는 중요한 기록으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읽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일기는 기록입니다. 기록 자체로 중요합니다. 난중일기, 열하일기, 안네의 일기 모두 기록에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토론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주인공이 ‘시란 젤리코비치’와 ‘메리 해즈보운’입니다. 시란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가장 싫어하는 낱말은 폭탄테러입니다. 시란은 폭탄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하고 폭탄을 터트리는 아랍인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메리 해즈보운은 팔레스타인 사람입니다. 메리는 탱크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면 시란이 보인 반응을 그대로 보입니다. 탱크는 메리의 마을에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메리가 사는 마을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교회에 집중포격을 가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아본 뒤에 “시란 젤리코비치와 메리 해즈보운이 서로의 일기를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물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모릅니다. 자기가 겪은 일로만 판단합니다. 시란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폭탄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메리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탱크를 몰고와서 정든 곳을 밀어버리고 황폐하게 만드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둘이 서로의 일기를 읽는다면~ ‘껴안고 울며 서로를 위로할 것이다’는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슬퍼하는 아이는 슬픔을 담은 기록을 보며 회복됩니다. 소망을 잃은 사람은 자기보다 더 소망 없는 곳에서 일어선 사람을 보며 회복됩니다. 기록으로 남길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형편에서 남긴 기록은 지금도 사람들을 회복시키며 일으켜 세웁니다.
호다 타미르 제하드는 이라크에 삽니다. “호다 제하드(이라크)는 미군이 아줌마를 죽인 걸 일기에 썼다. 아줌마는 아침 6시에 왜 밖으로 나갔을까? 미군은 왜 아줌마에게 총을 쏘았을까?” 아줌마는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이들이 다칠까봐 도움을 요청하려고 나왔습니다. 미군은 여자로 변장한 스파이라 여겨 죽였습니다. “이럴 때 옳고 그름을 어떤 기준에서 판단해야 하는가?” 물었더니 둘 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전쟁‘이 가져온 고통이지 누구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시란과 메리가 서로의 일기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물었던 것처럼 “호다 타미르 제하드의 일기를 미국 사람들이 읽고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말할까?”도 나누었습니다.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대답합니다. 영상으로 미사일 쏘는 걸 보는 것과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아이가 쓴 일기를 읽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계속 기록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빼앗긴 내일’과 소개한 일기글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대답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답을 ‘기록’으로 만들어 놓고 ‘이래도 기록하지 않을 거냐?’를 말하려고 작정하고 한 질문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클라라 슈왈츠는 유대인입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죽어야 하지만 독일인 벡씨가 숨겨주어서 살아남습니다. 전쟁 뒤에 벡씨 가족은 나치에 협력한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클라라의 일기를 증거로 목숨을 구합니다. 대단한 내용을 적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일기가 한 가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일기는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었습니다. 전쟁을 게임 속 이야기로만 아는 아이들에게 내일을 빼앗긴 아이들 일기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기록’입니다. ‘쟤네는 힘들고 어려운 형편인데도 저렇게 잘 살았다. 너도 공부 좀 해라!’가 아니라 ‘기록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독서반에서 아무리 책을 읽고 토론해도 글을 쓰지 않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기록하고 또 기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