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연필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이야기 부록 내용)
독서감상문은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흔적을 쓴 글입니다. 책이 남긴 인상이 깊고 강할수록 글을 잘 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부분 내용을 요약하거나 판에 박힌 정답을 씁니다. 책을 줄거리 위주로 이해했기 때문이고, 경험을 책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은 내용을 잘 파악합니다. 인물의 특징, 일이 일어난 순서를 물으면 대답합니다. ‘빨강 연필’(신수현 지음, 비룡소)을 읽고 재규와 민호, 수아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잘 찾습니다. 독서골든벨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맞힙니다. 그러나 책과 자신을 연결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빨강 연필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저는 책과 아이들을 연결시켜 주려고 독서토론을 합니다. 어떤 질문을 해야 아이들이 책을 자기 이야기로 연결시킬까 고민하며 발문합니다. 아이들 삶에서 빨강 연필이 무엇인지 찾게 하려고 배경지식, 대상도서 내용, 아이들 삶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합니다. 첫 시간에는 주로 대상도서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알아봅니다. 책을 이해하지 못하면 경험이나 고민과 연결하지 못하겠지요.
※ 대상도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한 발문 ※
1. 민호는 어느날 수아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긴다. 어떤 비밀일까?
2. 빨강 연필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찾아보자.
3. 민호네 집 형편이 어떤지 설명해 보자.
4.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민호는 일기를 쓸 때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을 내용만 썼다. 정 쓸거리가 없으면 예전에 썼던 일기를 보며 내용을 조금 바꿔서 다시 써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 일기장을 만들었다.(33쪽)” 민호가 이렇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5. 빨강 연필이 민호 대신 써준 글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6. 책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핵심 인물 5명을 정하고 특징을 간단하게 적어보자.
7. 민호가 쓴 글 ‘우리 집’은 무엇이 문제인가?
8. 민호는 수아를 만나 시금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내용일까?
9. 엄마는 왜 갑자기 쿠키를 굽게 되었을까?
10. 동그라미 백일장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보자. 백일장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20분 정도 각자 답을 찾게 합니다. 잘 찾지 못한다면 책을 안 읽어서 못 찾는지, 다 읽었지만 제대로 읽지 않아서 못 찾는지 확인합니다. 확인한 뒤에 모르는 내용을 책에서 찾아보라고 합니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책을 보고도 못 찾습니다. 문제를 다 푼 뒤에는 답만 맞추지 않고 관련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꾸 물어서 연결된 책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합니다. 책 내용을 이해한 뒤에 “빨강 연필을 무엇을 뜻할까? 여러분에게 빨강 연필이 무엇일까?” 묻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책 내용을 깊이 나눕니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하고 대답에 맞춰 관련 질문을 더합니다. 예를 들어 “민호는 어느날 수아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긴다. 어떤 비밀일까?” 물은 뒤에 “민호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모두 찾아보자.” 묻습니다. 민호는 수아의 유리 천사를 깨고도 시치미 뗍니다. 저절로 글을 써주는 빨강 연필만 믿고 친구, 선생님, 엄마를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아이들이 민호의 비밀을 열심히 찾아 말할 때 대뜸 묻습니다. “비밀이 많아야 좋을까? 적어야 좋을까?” 그리고는 “여러분이 가졌던 비밀이나 지금도 갖고 있는 비밀 중에 고백할 수 있는 비밀을 이야기해 보자.”고 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1. 수아의 유리천사가 없어지고 나서 아이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갈까? 1-1) 작가가 민호의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책에서 찾아보자. 1-2) 유리천사를 찾기 위해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3) 이 사건 때문에 민호는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이런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게 말이 될까? 대상도서 내용을 점점 깊이 알아본 뒤에 경험과 연결합니다. 1-4) 여러분은 언제 학교에 가기 싫어졌나? 민호 같은 경우가 있었나?
대상도서에 따라 문장을 나누기도 합니다.
문장 1)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았더니 이제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쓸 게 생각나지 않아.(76쪽)” 정말 그럴까? (일기를 한 번 안 쓰면 계속 쓰기 싫어진다. 오랜만에 쓰면 무얼 쓸지 모른다. 글은 계속 써야 한다. 그러면 쓸 게 계속 생각난다. 쓰지 않으면 쓸 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게 된다.)
문장 2) “우리 집. 우리 집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쓸 게 없었다. 아빠가 집에 없다는 것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회사에 다녀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혼자 있다는 것도 쓰기 싫었다. 물론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집’을 다 채워 쓸 수는 없었다. 전에는 어디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거 먹는 일에 대해 쓰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걸로는 부족했다. ‘우리 집’을 쓰려면 뭔가 더 있어야 했다.(79쪽)”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자. 감추어둔 비밀을 확 쓰는 게 속 시원하고 좋지 않을까? 아니면 자기만의 비밀로 감추고 뭔가 더 필요한 걸 찾아 속여서 써야 할까? (찬반토론 – 어느 편이 토론에서 이기느냐 따지지 말고 토론한 뒤에 ‘속 시원하게 쓰자’를 말합니다.)
문장 3)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민호는 심장이 떨려서 빨강 연필이 쓴 글을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81쪽)” 4-1) 민호는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4-2) 여러분도 민호처럼 느낀 때가 있나?
둘째 시간을 마무리하며 재규와 민호, 재규 글과 민호 글의 차이점을 찾아보았습니다. “작가가 민호를 좋게 평가해서 우리는 재규에게 편견을 갖기 쉽다. 공정하게 평가할 때 재규와 민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재규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쓰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씁니다. 친구는 안중에도 없고 최고가 되기 원합니다. 민호는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하며 알아가는 반면에 빨강 연필로 거짓말을 썼습니다. 대상 도서는 민호가 빨강 연필을 버리고 자기만의 글을 쓰는 걸로 끝나지만 현실에서는 빨강 연필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셋째 시간에는 책의 주제, 작가가 책을 쓴 까닭을 찾고 글을 씁니다.
1. “빨강 연필은 민호가 글을 잘 쓰도록 도와준다. 민호를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 주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물었습니다. 빨강 연필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만 민호 실력이 좋아지는 게 아닌데다가 거짓 글이어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대답합니다. 상장과 친구들의 칭찬, 엄마의 기대는 축복이 아니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벼랑 끝에 세우는 거라고 합니다.
2. 빨강 연필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토론하고, 빨강 연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도구들을 책이나 영화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 평범한 사람을 뛰어나게 만들거나 모험으로 이끄는 것들이 이야기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3. “여러분에게 빨강 연필이 주어진다면 어떤 곳에 쓰고 싶은가?” 물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고치고 싶다’, ‘연예인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소망을 이루게 해준다면 빨강 연필을 사용하겠다고 글을 쓰는 아이도 있습니다.
4. 둘째 시간에 나눈 재규와 민호의 차이점을 글쓰기로 발전시켰습니다. “재규는 형식을 잘 갖춘 모습, 민호는 내용을 잘 갖추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형식은 겉모습을, 내용은 속에 담은 모습을 의미한다. 형식과 내용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모두 내용이 중요하다고 대답합니다. 재규는 글을 잘 쓰지만 글을 쓰는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반면에 민호는 형식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아 쓰기 때문에 형식을 차차 배우면 진짜 좋은 글을 쓸 거라고 합니다.
“민호가 쓴 글이나 다른 내용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 민호가 마음에서 솟구치는 생각을 쓴 글이 책에 나옵니다. 아이들 마음에 들 겁니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가면서 민호가 생각하는 내용도 좋습니다. “뾰록? 쀼위익? 저 새소리는 뭐라 적어야 할까. 새소리는 책에서 배운 낱말과는 달리 소리마디가 분명하지 않았다. 민호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적고 싶었다.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쓰뷱, 쑵? 속이 간질간질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글자로 옮길 수 없는 오묘한 소리였다. 새로운 힘이 자신의 내부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츠와아아아. 도로를 달리는 타이어 마찰음. 소리에 촉촉한 물기가 있었다. 간밤에 이슬이라도 내렸나 보다. 먼 곳에서 버스가 정차하는 소리도 들렸다. 취위이이이쉿. 또 웃음이 나왔다. 낮이라면 다른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 소리다. (133-134쪽)”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을 골라 읽게 하고 말합니다. “관심을 가지면 들린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걸 보고 듣지 못한 걸 듣고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하는 거다. 뻔히 눈에 보이고 들리는 데도 표현하지 못한 걸 쓰려고 귀를 기울이는 거다.” “달리고 싶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울음을 토해 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뭐라도 쓰지 않으면 온몸이 다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178쪽)” 이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빨강 연필을 쓸 때 민호가 느낀 불안감, 재규의 경쟁심, ‘나만의 비밀’, ‘빨강 연필의 의미’, ‘형식과 내용’, ‘소망’ 중에서 하나를 골라 글을 썼습니다. 넷째 시간에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눈 뒤에 고쳐 썼습니다. 전예진(정라초등학교 6학년)이 쓴 글입니다.
나는 가끔 불안하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나를 뭐든지 잘하는 아이로 본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지도 않다. 친구들은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나는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사람인데,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데 친구 엄마들은 나를 뭐든 잘하는 아이로 본다. 가끔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다. 어려운 것은 나를 시킨다. 엄마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나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 내가 시험을 못 보면 친구들은 “예진이가 시험 못 봤대!” 이런 식으로 말하고 엄마와 선생님도 “예진이가 잘하다가 왜 이럴까? 무슨 일 있냐?”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 나는 공부를 항상 잘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불안하다. 불안을 친구들과 부모님에 대한 짜증으로 표출한다. 짜증을 낼 때는 모르겠는데 짜증내고 돌아보면 ‘내가 왜 그랬지? 정말 미안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몰랐는데 크면서 거의 다 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외향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더 잘할 수밖에, 잘하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 보통 학생들처럼 눈길을 받지 않고 못해도, 잘해도 그냥 못 본 척, 모르는 척, 그냥 그런 척 지나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된 이상 계속 나에 대한 지적을 할 것이고 수군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고는 받아들이고 수군댐과 헛소문은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민호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빨강 연필을 썼습니다. 예진이는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 글을 썼습니다. 예진이는 재규와 민호를 ‘지나친 기대에 힘들어하는 아이’로 읽었습니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마음에서 제가 모르는 고민을 보게 해주어서 좋은 글입니다. 책을 읽으며 자기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저는 책 한 권을 90분씩 4주 동안 나눕니다. 책 한 권을 이해하고 글을 쓰기 위해 정한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한 권으로 1년 내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책 한 권으로 한 학년 국어수업을 다 해내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한 권을 백 번 읽는 것이 백 권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좋습니다. 되풀이해서 읽으면 책을 깊이 이해합니다. 책 끝부분에서 송지아 작가가 민호를 ‘날아라 학교’에 초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용기가 있어.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하며 글을 쓸 용기” 오래도록 책을 읽는 이유가 이것 아닐까요? 자신을 돌아보며 고민하는 것. 한 가지 더한다면 책이 지독하게 재미있다는 것!
이 수업을 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빨강 연필>로 교사 연수를 합니다.
어쩌면 평생 '글을 쓰는 마음'을 이 책으로 설명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