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7. 우리 토론해볼까? (멋진 여우씨)
2학년 담임으로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책을 직접 고르며 책과 친해지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부모님들에게는 책 때문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도서실 책상을 ㄷ자로 만들고 부모님들이 뒤에 앉으셨습니다.
쓰기책에 ‘푸른꿈 도서관’이라는 글이 나옵니다. 도서실에서 책 고르는 방법, 책을 빌리는 방법, 도서실에서 주의할 점이 주된 내용입니다. 교과서를 읽고 퀴즈로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영상매체와 인터넷 매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단이 무엇인지 알려줄 때는 색지를 잘라서 칠판에 붙였습니다. 책을 고르고 빌리는 방법을 배우고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2학년은 아직 작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책 참 재미있다’ 말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 반은 로알드 달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 로알드 달 책을 소개하고 인용했더니 한 아이가 <멋진 여우씨>를 말합니다. 멋진 여우씨를 읽은 아이들도 2/5가량 됩니다.
주문한 학급문고가 들어오던 날, 아이들에게 멋진 여우씨를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여우를 잡으려는 사냥꾼 세 명이 있어. 평소에는 여우를 쉽게 잡는데 이번에 만난 여우는 멋진 여우씨야. 멋진 여우씨는 아주 똑똑한 여우야.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학급문고에서 ‘멋진 여우씨’를 가져가려고 쟁탈전이 붙었습니다. 며칠 그러더니 금세 시들해집니다. 오늘 멋진 여우씨를 말하면 아이들이 또 읽으려고 할 겁니다. 며칠 지나 시들해지면 또 말해줄 겁니다. 선생님이 책이야기를 자주 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책을 더 읽겠지요.
독서토론을 하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할 겁니다. 꼭 읽으세요’라고 하면 2학년은 물론이고 고학년이라고 해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만 읽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겁니다. 저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아침활동 시간에 책을 읽어줍니다. 지금 읽어주는 책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입니다. 네 번째로 읽어주고 있는 책인데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전체 아이들이 모두 듣기 때문에 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좋습니다.
수업 후반에 도서실에서 책 찾기 시합을 했습니다. 2학년은 시합을 너무 좋아합니다. 멋진 여우씨를 지은 ‘로알드 달’ 작품 찾기를 했더니 이 책, 저 책 뒤지며 다닙니다. 오늘 배운 ‘도서관에서 주의할 점’을 지켜가며 찾아야 합니다. 하루 전에 미리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여러 곳에 골고루 숨겨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과학, 역사, 위인, 경제…… 온갖 종류의 책을 만지고 제목을 읽으며 찾아다닙니다. 다음에 도서실에 오면 멋진 여우씨를 찾으려다가 눈에 익은 책이 또 보일 테고 그러면 읽으려는 마음이 더 생기겠죠!
로알드 달 책 찾기를 한 뒤에는 가장 읽고 싶은 책을 골라오라고 했습니다. 너무 쉬운 책을 골라오면 내용을 설명하며 바꿔줍니다. 아이에게 맞는 책을 추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모두 책을 한 권씩 가져옵니다. 부모님들은 그걸 보며 흐뭇해 합니다. 오늘 아이들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와서 또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혜영이뿐만 아니라 모두 깔깔 웃으며, 도서실을 좋은 곳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은 학교에 부모님들께서 오셨다. 그래서 특별히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키셨다. 도서관에서 부모님과 공부하는 소감을 물으셨다. 그때 예현이가 손 들었는데 “부모님들이 뒤에 계셔서 좀 그래요.” “그래, 뒤통수가 뜨끔뜨끔” 선생님 말씀에 모두 웃었다. ‘하하! 까르르르’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좋으셨지만 학부모님이 오시니 더 좋아지신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하루였다.>(원**-2학년)
지구상에 있는 어떤 민족보다 유대인들에 관한 책이 많습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박해와 위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벨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인구의 2%가 안 되지만 노벨상은 10배나 많이 받습니다. 유대인들 교육의 핵심은 독서와 토론입니다. 유대인들은 듣고 말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도서관에서도 토론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고, 교실에서도 토론으로 수업합니다. 묻고 답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사의 설명을 학생들이 잘 듣고 이해해서 외웁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외우다 보면 이해가 될 거라고 합니다. 자기 의견은 사라지고 정답 찾기만 남습니다.
독서교육이라고 해도 독해력, 이해력, 독서퀴즈, 독서감상문 대회 따위를 생각합니다. 독서감상문을 쓰려면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의견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 의견을 듣는 토론은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주장을 내세워 상대방 의견을 이기는 게 토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 규칙을 배우고 토론 순서에 따라 연습합니다. 그래서 토론은 어렵고 딱딱하다 생각합니다. 규칙과 절차에 맞는 토론도 해야 합니다. 독서감상문도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독서교육은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이야기 나누기는 토론과 토의의 차이점을 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해야할 독서활동은 이야기나누기입니다.
로알드 달을 소개하면서, 동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하건 상관없이 여우 이야기가 나오면 ‘멋진 여우씨’를 말할 수 있습니다. 2학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책이야기를 자주 하면 아이들이 책을 더 보게 되고, 줄거리를 넘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자기 생각을 담습니다. 이걸 글로 쓰면 좋은 독서감상문이 됩니다.
우리반 00이는 농장 주인이 부자여서 좋겠다고 합니다. 꼭 이웃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쓰지 않아도 됩니다. ‘여우를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표현이라면 상담을 해야겠지만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생각은 받아주어야 합니다. &&이는 “세 사냥꾼은 너무한 것 같아요. 가축 몇 개 잡은 건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해를 해줘야 인기가 많아지고 인기가 많으면 너무 자랑스럽단 생각이 들 거예요. @@한테 쫓겼을 때 난 여자화장실에, @@가 나한테 쫓길 때 남자화장실에 영리하게 숨었어요. @@는 남자고 나는 여자거든요. 내 생일파티에 초대한 안**이 덥다는 이유로 안 와서 안** 걱정한 게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고 여우한테 속은 사냥꾼이 된 것 같았어요. 여우 같은 영리한 친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멋진 여우씨’에서 배운 건 영리함은 욕심을 이긴다는 것이에요.”라고 썼습니다.
정확한 형식을 따지면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쓴 글로는 굉장하지 않습니까! 영리함이 욕심을 이긴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고 마음에 새긴다면 무엇보다도 귀한 배움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고 독서감상문 한 편 쓰고 마치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깊은 생각을 길어내지 못합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야 깊이 남습니다.
1학기에 멋진 여우씨를 소개했으니 2학기에는 아이들이 ‘책 먹는 여우’와 만나게 할 겁니다. 근처에 여우를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