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묵상

골방에 들어가

책뜰안애 2025. 2. 22. 07:23
아침마다 묵상하며 나를 돌아본다.
열왕기상 22장을 묵상한지 2주가 넘었다.
새학기 시작을 앞두고 지인이 힘들어한다.
그들을 생각하며 묵상 일부를 나눈다.
미가야가 한 말이 아합과 선지자들에게 황당하게 들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들은 이런 현상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을 거짓 선지자 취급하고 아합이 죽는다고 말한 내용은 싫어했다.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어떻게 자기를 떠나 미가야에게 가서 말씀하시느냐?” 따졌다. 시드기야는 정말 몰랐던 것 같다. 자기가 거짓 예언자인 줄.
시드기야는 확신했다. 확신이 너무 커서 미가야의 뺨을 치고 여호와께서 자기와 함께한다고 큰소리쳤다. 목소리 크기로 진실성을 판단한다면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가야의 말을 인정하셨다. 아합이 이길 거라고 빈정댔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열린 이상한 회의를 말한 미가야가 옳았다.
교회에 시드기야와 미가야가 온다면 사람들이 누구 말을 들을까? 시드기야의 확신에 넘치는 퍼포먼스를,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낸다고 말하며 빈정거리는 미가야보다 좋아했을 것 같다. 하나님이 미가야에게 하시는 말씀이 진짜라고 분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걸 ‘내가’ 올바르다는 주장으로 바꾼 것 같다.
이런 걸 경계했다. 세상이 하는 말에 속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간다고 생각 없이 따라가지 않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속지 않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려 했다.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옳다고 생각했다. 힘든 길을 선택했고, 외로웠다. 지금은 지쳤다. 나를 내세우는 것에도 지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데도 시드기야의 자리에 앉진 않았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내 삶에 관해 낄낄대며 평가하는 회의가 열리진 않기를 바란다.
v25 골방에 들어가 숨는 날 알게 된다. v25, v28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날이 온다. 곧 아합이 죽고, 시드기야는 골방에 숨어 떨 것이다. 그가 예언하는 재앙이 결국 임할 때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을 계속 들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춤추며 웃고 지하실에 살던 사람들이 경치 좋은 곳을 내려다보며 살 날이 올까?
그날을 기다린다. 이런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러나 내 마음은 계속 슬픔과 고통이 이어지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견뎌내야 할 거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시드기야가 골방에 숨어야 하는데 내가 골방에 숨는다. 골방은 아벡에서 패배한 뒤에(20:30) 벤하닷이 숨었던 곳이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당신이 있을 곳도 아니다.
우리는 슬픔을 나누고 아픔을 이겨낸다. 혼자 견디지 말고, 슬픔과 고통을 나누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좋은 것(돈, 재능 등 나눌수록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고통, 슬픔, 외로움, 절망 등 나눌수록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것들)을 나누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의 사랑이 이런 모습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