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2. <1940년 열두 살 동규>에서 외로움을 읽다
저는 학교에서 방과후 독서반을 운영하며, 교회에서 초등, 중등 독서반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다달이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10명 내외의 아이들과 매주 100분 정도 함께 합니다. 첫 주에는 배경지식을 알아보고 내용을 파악합니다. 둘째 주에는 이야기식 독서토론을 합니다. 책 내용, 아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내용, 지난 시대나 현재에 이슈가 되는 내용으로 발문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셋째 주에는 핵심 쟁점을 서너 개 정해서 찬반토론이나 교차쟁점식 독서토론을 합니다. 마지막 주에는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글을 씁니다. 대상도서에 따라, 아이들 마음가짐이나 사회 이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이렇게 공부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집중해서 읽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도 줄거리와 내용파악을 넘지 못합니다. 독서반을 시작할 때는 한 달 동안 한 권으로 공부한다고 하면 지루할 거라 생각합니다. 책 읽기도 힘들고, 읽어도 할 말이 없어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외에는 달리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책 한 권으로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중학교 독서반에서 송혁(중 3) 학생이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를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소개하며 “(전략) 처음 모모를 독서모임에서 하자고 했을 때 재미있고 읽기 쉬운 책이어서 그렇게 하자고 한 거였다. 하지만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속에 담겨있는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혼자였다면 몰랐을 여러 가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모모는 반드시 읽고 나눠야할 책이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책이다. (후략)”라고 썼습니다. 한 달 동안 대상도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책이 이런 책인 줄 몰랐어요.”
겉핥기로 줄거리만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책 중에 하나가 <1940년 열두 살 동규>입니다. 북삼초등학교 독서반에서 <1940년 열두 살 동규> 내용을 파악하고 일제 강점기가 어떤 시대였는지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물었습니다. “동규가 겪었던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일본 선생의 차별’, ‘죽은 동포 아이들의 시체를 본 일’ 등을 말합니다.
“너희들은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들어?” 저는 배경설명 없이 대뜸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일부러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물어보면 썰렁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책에 빠졌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포장을 벗겨낸 것처럼 속을 내보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성적, 차별, 비교’를 말합니다. 공부를 워낙 잘해서 다른 세상에서 온 대접 받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넌 뭐가 힘들어?” “사람들이 공부 잘한다고……”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며 웁니다. 함께 앉은 친구들이 당황해 합니다. 그러고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아이를 다시 봅니다. 공부 잘하는 게 부럽기만 했지 기대가 부담이라는 걸 몰랐을 테죠. 하지만 이젠 공감합니다. 아이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생략)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댈 누군가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찾으려면 지금 겪는 외로움을 설명해야 하고, 그걸 설명하는 과정은 너무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기댈 사람 찾기 힘들다고 썼지만 우리는 압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 눈물을 본 친구들은 이해하고 서로 손을 내민다는 걸. 덕분에 우리는 마음에 쌓인 울분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교하는 엄마’, ‘차별하는 엄마’가 주로 공격 당했습니다. 흥분해서 얼굴 벌게지는 아이, 눈물 글썽이는 아이, 어느 때보다 신나게 이야기하며 속을 털어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한 문장, 두 문장…… 한쪽을 넘고 두 쪽을 채우도록 씁니다.
세 번째 시간에 ‘왕따,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다시 글을 썼습니다. 아픈 글이 너무 많았습니다. 심예빈이 쓴 글을 읽으며 위의 아이와 바꿔 읽으면 굳이 위로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글로 위로를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동의를 얻어 글을 바꿔 읽게 했더니 둘이 얼굴을 쳐다보며 “너도 그러니?” 하고는 껴안습니다. 독서반이 끝난 뒤에 두 아이가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면서 너무 좋았습니다.
심예빈
지금 나와 내 친구들은 서로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겐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다. 단지 공부하는 것이 조금 버거울 뿐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동규는 많은 모욕감과 차별을 받고 동규 나름대로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동규가 힘든 상황에서 살았다고 해서 내가 꼭 동규를 본받아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도 똑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항상 일본사람들을 위해야 했고, 조선인이라서 일본 친구들과 차별된 대우를 받으며 공부를 해야 했을 것이다. 만일 동규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나와 똑같이 공부를 하고, 평범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또 나처럼 공부가 힘들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항상 공부가 힘들다, 어렵다, 하기 싫다. 말하지만 실제로 내 인생에서 공부가 가장 힘든 건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공부 말고도 힘든 일이 많다. 친구들간의 관계도 그렇고. 나는 지금 사춘기다. 그래서 모든 일을 다 하기 싫어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중략)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그만큼의 부담감이 있어 힘들 것이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어려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로 힘들 것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쯤의 아이도 '나는 뭐지?' 방황하며 제자리를 잘 찾지 못하여 힘들 것이다. (후략)
예빈이는 다른 글에서 외로움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한 명이라도 진심을 알아주었다면 외롭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댈만한 곳이 없었다네요. 그래서 외로움이 더 컸다고 합니다. 대구나 광주에서 친구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자살한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 아이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미안할 따름입니다.
<1940년 열두 살 동규>는 외로움을 꺼내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나는 이렇게 힘들다. 너는 어떠냐?’ 묻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나도 이렇게 힘들다. 너도 그랬구나’ 대답합니다. 독서퀴즈하고 골든벨을 하는 정도로는 알 수 없었겠지요.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세요. 하고 싶은 말,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생각은 강요하지 않아도 씁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고 ‘왜 이렇게 썼느냐?’고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면 더 깊고 멋진 글을 쓸 것입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회를 주세요.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청아출판사) : 고통과 외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무엇이 이겨낼 힘을 주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상-일반)
2. 엄마가 떠난 뒤에(킴벌리 윌리스 홀트/우리교육) : 엄마를 잃은 아이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따뜻하게 드러납니다. (대상-초6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