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일반독자

코스모스(칼 세이건)를 읽고

책뜰안애 2024. 12. 28. 19:10

경이를 느끼는 마음

권일한

스바 여왕은 솔로몬이 이룩한 것들을 보고 숨을 쉴 수 없었다(왕상 10:5). 이때 숨은 루아흐(רוּחַ)로 보통 하나님의 영(숨결)을 말한다. 스바 여왕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경이로움에 빠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국의 여왕을 전율하게 했던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꽃 하나보다 못하다고(6:29, 12:27) 말씀하셨다. 위대하고 찬란한 대상을 작고 연약한 것에 견주어 가치를 뒤집어버렸다. 광대함을 작은 것과 견주고, 위대한 것을 소박함에 견주어 허망함을 드러내고 생각의 전환을 꾀한다.

코스모스가 백만 부 이상 팔린 까닭이 뭘까? 일상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가 아니다. 투자를 돕거나 마음을 돌보는 책도 아니다. 합리적이지 않고 위로를 주지도 않는다면, 잠깐의 재미와 호기심을 주는 운세나 사주를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코스모스는 과학자를 소개하고 별과 은하를 설명하며 인간의 업적과 한계를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코스모스에 매료되었을까?

칼 세이건이 <경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과학자가 우주를 보며 느낀 경이를 독자가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안에 경이를 펼쳐놓았다. 유스터스처럼 차가운 태도로 별이 거대한 가스 덩어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이건이 원자와 전자를 말하지만, 환원주의에 갇히지 않는다.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모인 은하, 광대한 은하에서 작고 작은 한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인간,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광대한 은하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세이건은 인간의 놀라움과 보잘것없음을 동시에 말한다. 인간은 솔로몬의 영광을 이룬 존재이며 동시에 작은 꽃과 같다. 인간은 우연히 만들어진 세포로 시작해서 우주를 탐사하는 존재가 되었다. 칼과 창을 휘두르며 죽고 죽이던 시대에 막대기 하나로 지구 둘레의 길이를 재다니! 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 결과, 콜럼버스가 망망대해 너머 육지가 있다고 믿었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전기가 없던 시대, 손발로 일하던 시대에 기하학, 물리학, 천문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있었다니 굉장하다. 달에 발을 내딛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 연구한다. 수백, 수천 광년 멀리 떨어진 곳에 전파를 쏘아 보내 지구와의 거리, 질량, 대기 상태를 알다니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가!

인간은 예측불허의 세상에 집을 짓고 문화를 일구었다.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를 탐사하고 우주로 나섰다.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말하는 데 그쳤다면 코스모스의 경이는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광기가 일으킨 지옥이 얼마나 넓고 깊던가! 그러나 세이건은 지구가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며 인간이 알아낸 지식이 얼마나 티끌 같은지도 말한다. 인간의 탐사 계획과 실행 과정의 놀라움을 말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사소한지 느끼게 한다. 인간이 찾아낸 별과 별을 품은 우주는 얼마나 놀라운가!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걸 모두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혜성, 태양의 변화, 광대한 우주의 알수없음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솔로몬의 영광 앞에 있는 한 송이 꽃처럼.

세이건은 과학자다. 과학자는 과학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는 과학자가 호기심으로 살핀 우주의 실재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을 밝히고, 칼 세이건의 문장이 더해져서 독자가 경이를 느끼게 한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더욱 경이를 느낀다는 과학주의에서 바라보는 우주 말이다. 세이건은 우주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주 개발에 쓰일 비용이 국방비에 들어가는 걸 안타까워한다.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이종태 목사는 경이라는 세계에서 신기한 대상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두리번거리는 눈, 그 대상을 파악해서 장악하려는 눈을 호기심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달리 경이는 상대의 신비를 가만히 응시하는 눈이다. 세이건의 눈은 호기심에 가깝다.

새벽출정호의 항해에서 유스터스는 섬에서 라만두에게 우리 세계에서 별은 활활 타고 있는 거대한 가스 덩어리예요.” 하고 말한다. 그러자 라만두는 얘야, 너희 세계에서도 별은 그런 것이 아니란다. 그것으로 만들어졌을 뿐이지.” 대답한다. 은퇴한 별인 라만두는 별을 재료가 아니라 존재로 말한다. 별은 자기 자신이다. 경이로운 대상이다. 과학 지식으로 별을 분석한 유스터스에게는 모든 것이 과학적 지식의 대상일 뿐이다.

유스터스는 별과 자연에서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 라만두는 실재할까? 별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나니아의 섬에서 노인으로 살아갈까? 루이스를 좋아하는 나는 은퇴한 별을 만나는 장면에서 경이를 느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라만두를 물의 요정 나이아스나 타로 카드에 나오는 점술사로 받아들인다. 세이건은 유스터스 쪽에 가깝다. 이 시대 사람들도 유스터스 쪽에 가깝다. 과학주의 자체를 보여주는 유스터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과학주의에 빠진 사람이라도 유스터스는 지나쳐 보이니까.

나우엔은 날마다의 삶에는 놀라움이 있다고 했다. 우리 삶에도 경이가 흐른다. 어린아이 눈으로 보면 세상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아이들은 작은 일에 호들갑을 떤다. 달팽이를 보느라 수업 시간에 늦었다. 소방차가 오면 뛰쳐나간다. 운동장에 내린 서리를 밟으며 뛰어다닌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32000살이라는 말을 믿었다. 경험이 적고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경이를 느끼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1960년대 미국인들은 ‘what a wonderful world.’에 열광했다. 장미가 꽃 피우는 걸 보고 ‘what a wonderful world.’를 노래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무지개,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인사하는 모습, 아이가 울고 자라는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것에서 경이를 느끼는 사람이 줄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잃어버린 경이를 되찾고 싶어서. 광대한 우주 끝 한 점에 불과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작고 작은 인물이지만, 경이로운 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뿌듯해하며 감격하고 싶은 마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