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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독서 캠프 1

책뜰안애 2024. 11. 13. 19:09

오늘 아침에 교감 선생님이 아들과 대화를 들려줬다. 고등학생 아들이 밤에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어제는 교감 선생님이 태워줬다. 달빛 독서 캠프하느라 초과근무하다가 아들 하교 시간과 맞았다.

엄마, 오늘은 어떻게 데리러 왔어요?”
초과근무 했어.”
초과근무는 왜요?”
달빛 독서 캠프했거든.”
요즘도 독서캠프 하는 학교가 있어요?”
“책벌레 선생님이 캠프 하는데 도와준 거야.”
“책벌레 선생님은 아직도 그러고 계시는구나! ~~~”

2013년부터 독서캠프를 했다. 우리 학교만, 다른 학교와, 경기도 학교와, 학부모와 책을 읽고 놀았다. 2017년부터 새로운 독서캠프인 달빛 독서캠프를 시작했다. <달빛 독서캠프>는 자정까지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자는 추억 만들기다. 지난 학교에서는 자정을 지나 2시까지 책을 읽었다. 교감 선생님 아들이 그때 독서캠프에 참석했다. 아들은 독서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

이번 학교 아이들은 책과 친하지 않다. 처음 달빛 독서캠프 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지난 학교 아이들은 책을 정말 좋아했고, 이번 아이들은 책을 싫어했다. 두 학교 차이가 컸다. 캠프라고 하면 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3년 동안 분위기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올해 첫 독서캠프는 920분까지 계획했다.

4~6: 책 읽기 (아이들이 진지하게 열심히 읽었다.)
6~7: 저녁 식사 (김밥, 컵라면, 음료수)
7~820: 계속 책 읽기
820~8:40 : 간식 (아이스크림)
8:40~9:20 : 후기 쓰고 귀가

우리반은 12명이 참석했다. 도움반 친구 1, 가족체험학습을 신청한 친구 1명 빼고 모두 참석했다. 조부모와 사는 아이는 데려갈 사람이 없어서 내가 데려다주기로 했다.
넌 나릿골 후배야. 선생님도 나릿골에 살았거든. 그러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신청서를 내지 않은 한 아이는 달빛 독서캠프 하는 날(516, 어제) 몇 번이나 와쳤다.
달빛 독서캠프 하고 싶어요. 달빛 독서 하고 싶은데~”
달빛 독서캠프 하고 싶지? 내가 집에 데려다줄 테니 엄마한테 전화해라.”
했더니 입이 귀에 걸렸다.

책벌레 독서법

책벌레 독서법이 있다. 책을 어떻게 읽으면 잘 기억하는지, 많이 읽는지 그런 게 아니다. 아이를 책으로 꼬드기는 방법이다. 책벌레 독서법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줄 안다. 아니다. 책을 읽을 기회를 주고 곁에서 같이 읽는 거다.
애들이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시까지 책만 읽는다고?”

한 학부모가 달빛 독서캠프에서 무얼 하는지 묻기에 그냥 책만 읽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일정이 어떻게 돼요?”
책 읽다가 저녁 되면 밥 먹고, 다시 읽다가 간식 먹고, 다시 읽는 겁니다.”
하니 영 미덥잖게 생각한다. 아이들도 묻는다.
진짜 책만 읽어요?”
, 책만 읽어!”

안 해본 사람은 뭔가 더 있을 거야!’ 생각한다. 괜찮다. 직접 해보면 다르다. 달빛 독서캠프에 처음 참여한 아이 중에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꼭 있다.
정말 책만 읽었네요. 선생님 말이 진짜였어요.”

가끔은 시스템을 거부해야 한다. ‘아이가 몇 시간 동안 책만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이런 생각을 깨뜨려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1단계에서 2단계로, 다시 3단계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 1단계에서 4단계로 건너뛴다. 5분만 지나도 몸을 비틀던 아이가 분위기에 취하면 한 시간씩 읽는다. ‘적당히 눈치 보면서 놀아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참여한다고? 안 된다. 떠들지 말고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한다.

규칙을 설명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그림책과 만화책을 읽어도 되지만 읽은 책 목록에 쓰지는 않는다. 그림책과 만화책 중에 좋은 책이 많지만, 오늘은 글밥이 많은 책을 읽는 날이다. 그림책과 만화책은 빨리 읽기 때문에 자꾸 책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 그러면 산만해진다. 책을 고르면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서 그림책과 만화책을 제외했다. 한 권만 읽어도 되니까 내용이 긴 책을 읽으면 정말 훌륭하다고 했다.

처음 5분이 중요하다. 무조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엄한 말투를 좀 쓴다. 책 읽으라고, 떠들지 말라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계속 읽어보자고 한다. 조용히 읽기 시작한 아이가 있으면 칭찬한다. 훌륭하다고, 책벌레처럼 읽는다고 칭찬한다. 가장 중요한 비법은 이거다.
오늘 달빛 독서캠프는 920분까지다. 오늘 잘하면 다음 독서캠프는 학교에서 잔다.”
! 책 읽어야지.”

5분 정도 지나면 조용해진다. 10분이 지나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된다. 그럼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살핀다.
우와, 좋은 책을 읽네. 이 책을 고르다니 대단한 걸~”
이렇게 긴 책을 읽으려고 도전하는 거야? 오늘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성공이야!”

가끔 떠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다. 그 아이 곁에 앉아 책을 읽으면 잠깐 중얼거리다가 책을 읽는다. 한 시간 지나면 시간을 알려준다.
~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책만 읽었네. 잘하고 있어.”
선생님, 언제까지 읽어요?”
달빛 독서캠프잖아. 달이 보일 때까지 읽어야지.”

4시부터 6시까지 책 읽고 학교 야외 데크에서 저녁을 먹었다. 애들이 전부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선생님, 달이에요. 저기 달이 떴어요.”

~ 낮달이 뜨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