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를 읽고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자가 될 환경에서 살았다. 인도 벵골에서 아편국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학교 진학을 목표로 내세우고 제국주의자를 양성하는 학교에 다녔다. 당시 영국의 정책에 부합하는 학교였다. 학비도 부족하고 학업에 흥미가 없어져서 인도 제국 경찰관이 되었다. 아버지가 근무했던 버마로 갔다. 영국 경찰 90명이 버마 경찰 1만 명을 관리하는 일로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 『동물 농장』이 성공하기까지 그만한 돈을 벌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버마에서 돌아온 뒤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때 경험을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에 써서 르포 작가가 되었다. 탄광 노동자들과 지내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썼다. 그리고 결혼 6개월만에 바르셀로나로 갔다. 아내와 함께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제국주의자로 길러진 사람이 어떻게 자유를 위해 싸우게 되었을까? 자란 환경을 보면 오웰은 제국주의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제국주의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를 싫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배고픔과 냄새를 견디며 싸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같은 대의를 가졌던 사람들이 서로 속이다가 죽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겪으며 환멸에 젖지 않을까!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더러운 세상!’을 외치지 않을까?
『동물농장』은 오웰이 쓸 법한 책이라 생각한다. 냉소적인 작가가 스탈린과 일당을 돼지에 비유하여 본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속이 시원할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보기 싫어서 “이렇게 가다가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 거야!” 하며 『1984』를 쓸 법하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글쎄다.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인간의 품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을까? 자유를 향한 갈망을 계속 가졌을까? 기대했던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질문, 오웰은 총을 들고 싸우면서도 어떻게 평상심을 유지했을까? 나는 똥을 싸놓은 참호에서 화를 냈을 것이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이건 아니지. 적이 비록 사람이지만, 저격병의 총에 맞으면 슬프거나 화가 치밀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오웰은 몬손 병원에서 적이었던 강습대원 옆에 누워 같이 담배를 피웠다. 이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오웰은 적 참호를 공격했을 때 적을 쫓아가면서 견갑골을 찌르려 했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준다. 자기가 죽을 뻔했던 이야기도 낄낄대며 말하는 분위기다. 전투에서 돌아오자마자 죽을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를 찾아 다시 전선에 나간다. 유머를 타고나서 이럴까?
오웰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 사람의 존엄성,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를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도 싸운다. 더럽고 추악한 모습, 속고 속이며 배신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지저분한 뒷골목 사람들, 형편없는 탄광마을 사람들에게서 존귀와 빛나는 모습을 찾아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30년 교사로 지내면서 아이가 귀찮아지고 학교에 가기 싫었던 적이 꽤 많다. 오웰이라면 낄낄대며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진지한 내 태도가 좋았다. 그러나 점점 웃으며 지나가는 여유가 부러워졌다. 오웰이 이런 태도로 살았기 때문일까?
조지 오웰은 버마 경찰로 근무할 때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존엄을 느꼈다고 한다. 물웅덩이를 피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며 ‘저 사람도 인간이구나!’ 느꼈다고 썼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을 교육받은 게 내게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전에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을 받아 살면 계명을 더 앞세울 것 같다. 그나마 사랑하라는 말씀을 배웠으면 다행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주일을 성수해라, 충성해라, 헌신해라 하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그때 우리는 가깝게 지냈다. 어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친구들과 친했다. 추억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들은 말씀은 대부분 목사에게 잘하고, 교회에 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우린 무얼 배웠을까? 사랑이 가장 중요한 곳에서 주일 성수, 목사에게 순종, 헌금 같은 걸 강요받으면 웃음을 잃을 것 같다. 사람보다 규정에 더 매인다. 참호에 똥 싸놓고, 전쟁터에서 담배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사람도 아니라고 짜증을 낼 것이다. 교회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나!
‘집사가 어떻게 그래?’, ‘그러고도 장로냐?’, ‘꼴에 목사라고는~’
아이를 사랑하려고 했다. 의지로 사랑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힘든 일을 맡았다. 아이 마음을 살폈고 아픈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오웰처럼 낄낄대며 아이들 곁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뭔지 조금 알 만한 나이가 되자 웃음이 조금씩 많아졌다. 앞으로 더 많이 웃어야 한다. 규정이나 윤리가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