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 꼬드기는 방법
“선생님, 친구가 있어요. 친구, 친구!!”
“그래? 가보자. 내 친구는 살려줘야지.”
창문에 벌 몇 마리가 붙었다. 빗물 내려가는 틈으로 들어와 창문과 방충망 사이에 갇혔다.
“말벌이에요. 말벌 맞죠?”
“아니야, 말벌 흉내 내는 애들이야. 바다리라고 해.”
“말벌 아니면 선생님 친구죠?”
“맞아. 선생님 친구는 살려줘야지.”
책벌레 선생님 말고도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벌 친구’다. 복도에 벌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흥분했다. 그때 ‘내가 벌 친구라고, 내 친구들은 아이를 물지 않는다고, 나한테 알려주면 바깥으로 내보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벌만 나타나면 아이들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먼지털이로 벌을 내보냈다. 올해는 손으로 잡아서 내보낸다. 손으로 꽉 잡는 건 아니다. 순간적으로 잡아서 휙 날려 보낸다. 잡고 있는 시간이 0.5초 정도 되려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벌이 알아채기 전에 손을 놓아야 물리지 않는다.
“우와, 선생님이 벌을 잡았어. 진짜 벌 친구 맞나봐!”
사람이 벌과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아는 6학년도 구경한다. 손으로 벌을 잡아서 내보내는 게 신기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곤충이 나오면 애들이 나를 부른다. 노린재도 알려주고, 하늘소는 친구들까지 불러서 구경하라고 했다. 땅강아지 잡아서 보여주기도 했고, 내 주먹보다 큰 두꺼비를 잡아서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2학년(지금 우리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올해도 2학년이 가장 좋아한다. 물론 우리반 아이들도 좋아한다.
우리 학교 2학년 남자들은 남다르다. 힘이 넘친다. 계단을 놔두고 난간으로 오르내린다. 복도에서 뛰는 건 기본,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고 도망친다. 올해 엄격한 선생님을 만나 얌전해지는 중이다. 점심시간에 2학년은 3학년 옆에서 밥을 먹는다. 이젠 젓가락질도 하고, 야채도 먹는다.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2학년 선생님이 급식지도하는 걸 보면 정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아~ 나도 저 정도로 열심히 가르치진 않았는데 대단하다. 저분이 가르쳐서 애들이 사람 됐네!’ 생각한다.
6월 어느 날 교무실에 모여 회의하다가 2학년 애들이 사람 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선생님이 두 남자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A와 B가 욕을 심하게 해요. A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욕을 배운 것 같은데 B가 따라 해요. 아무리 혼내고 가르쳐도 안 되네요.”
점심시간에 A와 B가 밥 먹는 자리에 갔다.
“A, B! 잘 들어. 욕하지 마. 너희가 욕했다는 말이 들리면 다시는 산책 안 데려간다. 산에도 안 가고 벌레도 안 보여줄 거야. 알았어?”
“네” 한다.
“절대로 욕하지 마라. 손가락 욕도 하지 마. 알았어?”
둘은 그때부터 욕을 끊었다. 얼마 뒤에 선생님이 다른 행동을 이야기한다.
“B와 C가 자꾸 가렵다고 해요. 가렵다고 하니 보건실에 보내는데 진짜 가려운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가렵다는데 그냥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며칠 뒤 수요일, 점심시간에 B와 C가 앉은 자리로 갔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췄다. 욕하지 말라고 할 때와 달리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 3학년은 말 타러 가. 자주 갔더니 이젠 말 타고 막 달리는 형과 누나도 있어. 너희도 말 타고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발 태워달라는 눈빛으로 대답한다. B와 C가 더 적극적이다.
“그래? 정말 타고 싶구나.”
“네, 태워주세요. 말 타고 싶어요.”
“말을 타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 첫 번째는 용감해야 해. 너희들 용감하니?”
“네, 용감해요.”
“그래, 그럼 됐네. 용감한 건 통과. 두 번째가 남았어. 승마장에는 털이 많아. 말 털도 있고, 개가 있어서 개털도 많아. 털이 몸에 닿으면 가렵잖아. 가려움을 타거나 털 알레르기가 있으면 말을 못 타. 너희들 가려운 거 참을 수 있어?”
며칠 뒤에 2학년 선생님이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렵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러 ‘가려우면 보건실 가라.’ 해도 ‘가렵지 않다고, 보건실 안 간다고’ 대답한단다.
남자아이는 권위에 순종한다. 벌을 손으로 잡고, 자기들을 산으로 데려가는 선생님은 권위자다. 그래서 내가 말하면 2학년 남자아이들이 듣는다. 2학년 남자아이에게 욕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권위로 명령해야 한다. 반면, 가려움은 권위로 명령할 일이 아니다. 공부가 싫거나, 잠깐 교실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려움으로 나온다. 그래서 더 큰 보상으로 꼬드겼다. 말을 타려면 참아야 한다고. 참, 우리 학교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말을 탄다.
둘째 아이가 교육대학 4학년이다.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어쩌다가 벌 이야기가 나와서 말했다.
“손으로 벌을 잡아봐. 그럼 남자애들이 말을 들을 거야. 아니면 줄넘기 이단 뛰기를 20개쯤 해라. 그것도 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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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들과 글을 쓰는 교사입니다. 30년 동안 문집을 만들었고, 지금도 아이들과 글을 쓰는 책벌레입니다. 2021년에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곁에.서> 펀딩(2021년)으로 화상 입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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