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아동

표해록, 동방의 마르코 폴로 최부

책뜰안애 2024. 2. 8. 20:02

최부가 중국에 표류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표해록/ 최부 기록 / 알마, 동방의 마르코 폴로 최부/ 김성미/ 푸른숲)

기록해야 남는다.

  나는 22년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만나고, 함께 지내고, 헤어지고21번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10년 뒤에는 더 많이 잊겠지. 30년 뒤에는 기억하는 추억보다 잊은 추억이 더 많겠지. 아이들과 만난 기억뿐이랴! 자녀를 기르면서 누리던 한 순간, 웃음보를 터뜨리게 만든 기가 막힌 한 마디도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두세 살 된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살 때 기억이 희미해진다. 자녀가 대학생이 되면 초등학교 시절 기억을 잊기 마련이다. 그나마 어른은 과거를 돌아보며 기억을 붙잡아두려고 애쓰지만 아이들은 미래를 바라보느라 기억을 계속 떠나보낸다.

  ‘추억은 과거에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기억을 공유하는 무대와 같다. 추억을 무대에 꺼내 놓으면 함께 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준다. 누군가 기억하면 추억이 되건만, 기억하지 못해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사라진 아름다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나는 추억을 종이에 붙잡아 놓는다. 교사로 지낸 21년 동안 문집을 21권 만들었다. 순간순간의 기억을 붙잡아 놓으려고 다달이 문집을 만들었다. 쉬는 시간에 쉬지 않고, 점심시간에도 아이들 일기에 답글 써주며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오랜만에 제자를 만나도 무대에 올릴 이야기가 참 많다. 문집에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기록해야 남는다. <표해록>은 조선 성종 때 관리인 최부가 남긴 기록이다. 최부는 1487년에 추쇄경차관이라는 관리로 임명되어 제주도에 파견된다. 3달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나주로 가다가 표류해서 중국 남부 해안으로 밀려간다. 14일 만에 중국 절강에 이르러 태주, 항주를 지나 양자강(양쯔강)을 건너고 양주, 서주를 지나 황하를 건너 북경까지 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온다. 최부는 530년 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135일 동안 3200km를 다닌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 견문록>, 일본 스님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힌다.

  최부는 <표해록>을 남기지 못할 뻔 했다. 표류한지 4일 만에 군인들이 자포자기하고 배에 드러누워 버렸다. 7일째는 풍랑이 너무 심해서 홑이불을 찢어 배 가운데 빗장나무에 묶고 죽기를 기다렸다. 12일째는 배에 들이닥친 해적에게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육지에 닿았을 때도 해적을 만났을 때 못지않게 위기를 만났다. 당시 중국 남부 해안은 왜구로 인한 피해가 심해서 왜구를 발견하면 먼저 죽이고 나중에 보고했다. 중국 관리가 포상에 눈이 멀어 왜선 14척을 발견했다고 거짓 보고를 하고는 최부 일행을 왜구로 몰아 모두 죽이려 했다.

  최부는 임금의 덕 때문에 하늘이 살렸다고 감사했지만 사실은 기록이 최부를 살렸다. <표해록>에는 제주도 현감으로 일했던 이섬이란 사람의 기록이 언급된다. 이섬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표류해서 최부보다 5년 먼저 중국에 갔다. 이섬의 기록에는 중국에 도착했을 때 중국 국경을 침입한 것으로 오해받아 죽을 뻔한 일과 풍랑을 만났을 때 배에 물이 차자 사람들이 스스로 목을 매며 죽으려 한 일을 기록했다. 이섬이 남긴 기록을 읽지 않았다면 최부는 같은 일을 겪으면서 지혜롭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부는 실의에 빠진 군인과 노꾼들을 격려하고 물과 식량을 통제한다. 중국에 닿았을 때는 죽기를 각오하고 산을 넘어 마을에 들어가 포상에 눈이 먼 관리를 피한다.

  최부는 돌아가면 곧바로 돌아가신 아버지 묘소 곁에서 3년 상을 치르려고 했다. 그는 배가 가라앉을 위기에서도 상복을 입었다. 12일째 중국에 닿았을 때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도적이라고 여길 거라며 관복을 입으라고 권해도 하늘의 뜻을 어길 수 없다며 상복을 갈아입지 않았다. 14일째 중국 병사들이 다가올 때 해적을 만났을 때를 생각하라며 주위 사람들이 관복을 입으라고 해도 효와 신의가 아닌 일은 하지 못하겠다며 버텼다. 중국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순간에도 상복을 못 벗겠다고 버티던 최부가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처음 한 일은 아버지 무덤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최부가 돌아오자 성종은 표류한 이야기를 기록한 보고서를 내라고 명령했다. 최부도 기록을 남겼지만 수행 아전 정보, 김중, 이정, 손효자가 틈틈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표해록>은 지금보다 부족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최부가 아버지 묘소에 가지 못한 줄 알면서도 성종이 기록을 요구한 까닭이 있다. 당시는 나라 사이의 교류가 드물어서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사신들이 오가기는 했지만 늘 가던 길로만 갔으며, 맡은 임무를 먼저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제한이 많았다. 표류한 사람들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에서 예상 밖의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외국에 대한 정보가 귀했기 때문에 표류자가 생기면 반드시 보고하라고 왕이 지방관들에게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최부는 명나라의 경제 중심지이며 문화가 가장 번성한 중국 강남에서 보고 겪은 귀한 정보를 남겼다. 성의 모습, 무기, 경제활동 모습, 생활모습, 최부를 심문하고 이송하는 관리들의 행정 체계를 직접 겪고 보았다. 운하를 다니며 경제활동에서 교통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달았다. 중국 관리들이 고구려를 대단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며,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인격과 덕망이 마음을 이어준다는 것도 느꼈다. 530년 전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중국과 중국 사람에게 존경을 받은 조선 선비의 정신을 지금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도 최부가 남긴 기록덕분이다.

  정약용 선생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닭을 기르면서도 기록으로 남기라고 했다.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문순득이란 흑산도 사람이 표류한 기록을 남겼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남겼다. 우리 조상들은 기록을 귀하게 여겼다. 조선왕조실록은 인류 최고의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사관이 날마다 쓴 사초와 승정원일기가 있어서 조선왕조실록이 나왔다. 정조 때부터 왕이 쓴 성찰일기 일성록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한때는 일기를 썼다. 예전 일기를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일기는 초등학생이나 쓰는 글이 돼버렸다.

  보스니아에서 저격병의 총탄을 피해 숨어서 일기를 쓴 즐라타 필라보빅은 <빼앗긴 내일>에서 일기는 기억을 왜곡시키지 않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일기는 글을 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세상에 발표할 작정을 하고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솔직하고 진실합니다. 처음부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지만, 결국 개인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기록의 가치는 꾸준함에서 나온다. 꾸준히 기록한 일기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나는 기록을 소중하게 여긴다. 가족이 함께 누리는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꾸준히 가족신문을 만든다. 2, 4쪽 만든 신문이 이제 100쪽을 넘어섰다. 가족신문에 담긴 기록은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추억을 되살려준다. 해외여행 다녀오면 여행문집을 만든다. 여행지에서 날마다 남긴 일기는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 보고 무얼 먹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알려준다. 가족의 추억이 담긴 기록을 보며 내가 부족했던 순간을 돌아본다.

  만약 우리 행동과 말이 그대로 기록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부모와 교사는 친절해지고, 공무원은 청렴해지며, 정치인들도 박수 받지 않을까! 유대인들은 세계 최고의 기록인 성경을 읽고 또 읽는다. 기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기록하자. 기록을 읽자. 기록이 우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