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 수사님과 지낸 하루

강의 끝나고 <책뜰안애>에 모셨다.
강영안 교수님이 한 달 전에 딴 와인을 드렸더니 와인을 따고 시간이 좀 지나지 않았느냐 물으셨다.
와인 시음, 프랑스에서 와인을 나누는 의미를 알려주셨다.
12시 다 될 때까지 공동체, 책, 사람, 우리나라를 이야기했다.
골뱅이, 케일, 고추, 부추로 아침을 차려드렸다.
식사 기도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떼제에서 부르는 찬양을 부르셨다.
찬양하고 밥 먹는 거 참 좋았다.
식사 끝나고 같이 청소했다. 난 설거지, 수사님은 청소기
고추도 따달라고 했더니 재미있다며 즐겁게 일하셨다. 가지까지 따고 나서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떼제에서 했던 사역을 한국에서 하신다는 말씀, 번역비, 강사비 등으로 생활하신다는 말씀,
김대건 신부에 얽힌 이야기, 에릭 수사 이야기…… 아이들 글, 책, 슬픔, 교사들의 마음, 연대……
에릭 수사(1925~2007)가 만든 유리화를 보여주셨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하셨다.
아내와 딸에게 사진을 보내고 하나 고르라고 했는데 막내가 “그림은 왼쪽, 색채는 오른쪽” 이라고 답을 했다.
막내 말을 전했더니 두 작품 모두 책뜰안애에 걸어놓으라 하셨다.
(에릭 수사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알제리, 미국, 캐나다 등지에
많은 그림과 유리화, 십자가와 조소 작품을 남겼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간직한 작품인데 둘 다 주셨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과 학부모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어두워지고 힘들었다.
교사들이 힘들어서 ‘집단우울증’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했더니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고 하셨다.집회 모습을 보면서 느낀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힘들었다.
떼제 공동체의 정신을 책으로만 읽었는데
수사님과 이야기하며(주로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힘들고 아픈 교사들을 위해 영상으로 한 말씀 해달라고 했더니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사양하셨다.
그래서 더 좋았다.
함부로 말하지 않아서.
비록 아픈 사람을 돕는 일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