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9~11절 묵상 일부
로마서 8장 9~11절을 1주일째 묵상 중입니다. 그 중 일부입니다. (본문은 영어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v9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네가 육신의 영역이 아니라 영의 영역에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v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음에 굴복하나 영이 의를 인하여 생명을 준다.
v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에 생명을 주신다.
거하다(οἰκέω)는 집으로 삼다, 집이 되다, 산다는 뜻이다. 복음서에 쓰이지 않은 낱말이다. 가룟이 아닌 유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요 14:23).” 하셨다. 이때 쓰인 낱말은 거주하는 장소를 뜻하며 요한복음 14장에만 두 번 쓰였다. 요한복음 14장은 성령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떠나도 아버지 안에, 너희 안에 예수님이 있다고 하셨다. 가룟이 아닌 유다가 어찌하여 우리(제자들)에게는 나타내시느냐고 묻자 예수님이 거처를 함께하겠다고 하셨다.
당시 사람들에게 거처를 함께한다는 말이 무엇을 뜻했을까? 그리스도가 거하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이의 영이 거하고, 하나님의 영이 거한다는 게 뭘까? 두 사람이 결혼해서 같이 살기 시작하면 다툰다. 다투면서 생각과 태도를 조정한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내 생각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 때문에 내 생각을 바꾸나? 이게 거한다는 뜻일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내 욕망과 다투고 난 뒤의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인가? 다투고 또 다투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이 많아지는 과정이 성화인가?
성령이 거하지 않았으면 다르게 살았을까? 그렇다면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건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한다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게 더 쉬워야 하지 않나?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의 한계를(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말한 뒤에 8장(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에서 성령을 소개한다. 그런데 왜 나는 성령을 알고도 다시 7장(곤고함, 갈등)으로 돌아갈까? 왜 계속 곤고한 상태로 살아야 할까?
8장이 아무것도 하나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선언으로 끝나는 건 좋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갈등과 괴로움은 어찌하랴! 8장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면 해답을 얻을까? 에베소서에도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행하고 자라는 모습을 표현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3:17).”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는지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랑 가운데 사는 게 낫지 않나?
어쩌면 우리가 죄의 심각성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물론 죄는 심각하다. 죄는 죽이고 무너뜨린다. 어떤 이단의 주장처럼 앞으로의 죄까지 모두 용서받았으니 자유롭게 살아가자는 말은 지나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된 사람이 계속 죄의 심각성에 매달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죄를 생각하고 죄에서 벗어나려고 애쓸수록 슬픔과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바울은 죄의 심각함을 알고도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죄를 생각하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다. 하지 못한 일이 앞을 가로막는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고, 이웃을 더 사랑했어야 하는데 못했고, 더 헌신하고 봉사해야 했는데 안 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한두 해 전부터 의무감이 줄어들었다. 힘이 빠진 것 같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줄어들자 ‘나는 할 수 있다.’ 하는 자만도 줄어들었다. 성취욕이 줄어들자 교만과 이기심도 줄어든 것 같다. 지금까지 살던 모습으로 사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성령이 함께하는 모습이 꼭 열광적인 모습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