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글, 좋아하는 글 (초등학생 글)
우리반 아이들에게 글쓰가를 가르친다. 다양한 형식으로 쓰진 않는다. 에세이(일기, 수필)만 꾸준히 쓴다.
많이 쓰지도 않는다. 1주일에 두 편 쓴다. 학교에서 한 편. 주말에 집에서 한 편.
자세하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글 쓰는 방법을 많이 알려주지도 않는다.
1학기에는 두 가지만 가르친다. 특히 3월에 강조한다.
첫째, 글감 찾기다.
“너희들이 지나다닌 곳을 살펴봐라. 너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지나치는 길에 있는 것들이 글을 써달라고 외친다.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외친다. 그게 보이면 글을 잘 쓰는 거다.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무얼’ 쓰느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나는 오늘’로 시작하는 ‘한 일’만 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
글을 쓸 때 ‘무얼 했나?’ 생각하는 게 아이다.
아이들은 ‘무얼 봤나?’, ‘무얼 들었나?’, ‘뭐가 달라졌나?’ 이런 거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새로운 걸 쓰면 폭풍 칭찬하며 ‘이런 걸 써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아무도 안 쓰는 걸’ 찾아서 ‘나만’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걸 써보라고 ‘몰래 게임하는 방법, 동생 몰래 초콜릿 먹는 방법’ 같은 걸 같이 쓴다.
둘째, 자세하게 쓰기다.
아이들은 글을 자세하게 써야 좋아진다는 걸 모른다. 자세하게 쓰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글을 쓸 때마다 “이게 무슨 뜻이야?” “여기서 무얼 더 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면서 묻는다. 아이 대답을 듣고는 “지금 말한 내용을 써야 해. 자세하게 쓰면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해.
잘 이해하면 공감하게 돼. 그럼 그 사람은 네 편이 되는 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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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아이들이 열심히 쓴다. 피드백도 자주 해준다.
글감이 좋은 글, 자세하게 쓴 글을 칭찬하고는 여기저기 붙여놓는다.
아이들은 자기 글, 친구가 쓴 글 앞에 모여서 같이 읽는다.
3월은 글솜씨가 좋아지는 달이다. 지금까지 워낙 안 썼기 때문이다.
5월쯤 되면 글쓰기에 관심이 줄어든다. 문집을 만들어도 관심이 줄어든다.
5월부터는 습관처럼 ‘그냥’ 쓰는 기간이다.
호기있게 글쓰기 도전하는 분들이 내게 연락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잘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기간에 글쓰기를 멈추면 진짜 잘 쓰는 아이를 만나기 어렵다.
계속 써야 한다. 글은 어느 정도 써야 달라진다. 그 기간을 채워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그냥’ 쓰는 기간이 조금씩 다르다.)
20년 전 아이들은 4월만 돼도 좋은 글을 썼다.
15년 전 아이들은 5~6월에, 10년 전 아이들은 7월이나 9월에 괜찮은 글을 보여주었다.
최근에 만난 아이들은 10월쯤 되면 좋은 글을 썼다.
헤어질 때 참 아쉬웠다. 1년 더 만나면 정말 잘 쓸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올해는 6월부터 잘 쓰는 아이가 생겼다. 한 명이 아니다. 여럿이다.
3학년, 어려서 잘 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닭볶음탕
3학년 남자
우리 집 닭볶음탕은 닭 껍질이 없다. 엄마가 닭을 씻을 때 닭 껍질을 모조리 벗기기 때문이다. 아주 완벽하게 제거한다. 그것도 초스피드로 말이다.
‘닭 껍질 한번 먹고 싶은데. 딱 한 마리만이라도!’ 엄마가 닭 껍질을 없애는 건 아마도 살이 많이 찌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닭볶음탕은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포실포실한 감자도 있고 맛있는 닭고기까지 환상의 맛이다. 또한 양념은 매콤달콤해서 정말 맛있다.
“엄마, 감자도 포실포실 맛있고, 닭고기도 최고다!” 내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감자는 **이가 좋아해서 많이 넣었지!” 엄마가 말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다니’
역시 날 생각해서 만든 요리가 최고다.
1. 시작하는 문장이 좋다.
‘나는 오늘’로 시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가! 우리 집 닭볶음탕에 닭 껍질이 없다는 담백한 서술로 시작한다. 궁금해진다. 왜 닭 껍질이 없지?
2. 자세하게 써야 할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닭 껍질이 없는 까닭, 엄마가 닭을 씻을 때 닭 껍질을 모조리 벗긴다.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다시 설명해야 한다. 아주 완벽하게 제거한다. 훌륭하다. ‘모조리 벗긴다’를 ‘아주 완벽하게 제거한다.’로 설명했다. 게다가 ‘그것도 초스피드로 말이다.’ 라고 예상하지 못한 설명까지 썼다. 훌륭하다.
3. 문장 부호를 사용했다.
‘닭 껍질 한번 먹고 싶은데. 딱 한 마리만이라도!’
“엄마, 감자도 포실포실 맛있고, 닭고기도 최고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감자는 **이가 좋아해서 많이 넣었지!”
초등 아이들이 글 잘 쓰는 거 그리 어렵지 않다. ‘’와 “”를 몇 개 넣으면 실감난다. ‘’(작은 따옴표)와 “”(큰 따옴표) 하나만 써도 설명으로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더구나 아이는 닭 껍질을 먹고 싶은 까닭을 썼다. 포실포실도 잘 어울린다.
4. 다시 설명했다.
엄마가 닭 껍질을 없애는 까닭을 추측해서 설명했다. 닭볶음탕이 맛있다면서 이유를 썼다. 포실포실 감자와 맛있는 닭고기까지 환상의 맛이라고! 게다가 양념이 매콤달콤해서 정말 맛있다고 강조했다. 와우~! 훌륭하다.
5.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이 있다.
이건 글을 많이 써도 갖추기 어려운 능력이다. 아이들은 책을 읽어도 문장을 기억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겐 스토리가 있을 뿐, 문장은 없다. 그런데 3학년 남자아이가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다니’
역시 날 생각해서 만든 요리가 최고다.
그래서 이 글은 정말 잘 썼다.
다음 글은 ‘나는 오늘’이라고 시작하지 않았지만 ‘나는 오늘’ 하며 쓴 글과 같다.
텐트 말리려고 해변에 갔고, 물이 차가웠고, 게를 잡으려다가 추워서 힘들었고, 게 다리만 잡았고, 그래서 누웠고, 시원했고, 심심해서 모래를 덮었고, 간식 먹고 집에 왔다.
그런데도 이 글이 마음에 든다.
바닷가에서 특별히 한 일이 없다. 그런데 글에 여유가 느껴진다.
강원도 동해안에 사는 아이의 여유가 마음에 든다. 너무나~
아이들과 글을 쓰면 행복하다.
바닷가
3학년 남자아이(위와 다른 아이)
전에 캠핑 갔을 때 비가 와서 텐트가 젖어버리는 바람에 말리지 못해 말리러 가는 김에 덕산 해변에 갔다. 발을 담궜는데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차가웠다. 게를 잡으러 바위 있는 곳에 갔다. 발이 너무 시렵고 아팠다. 게를 잡으려고 잡아당겼는데 게 다리만 뽑혔다. 잡지 못했다. 건진 게 게다리였다. 그냥 모래에 누웠다. 그냥 시원했다. 많이 누워있다가 심심해서 다리를 모래로 덮었다. 다시 일어났더니 다 떨어졌다. 간식을 조금 먹고 집으로 가려고 한다. 게를 잡지 못해서 아쉬웠다. 다음에 와서 꼭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