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을 위한 책(2015년 이후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중학생과 토론하기 때문에 고등학생 대상 책은 찾아 읽지 않았습니다.
읽다가 "이건 고등학생이 읽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책만 골랐어요.
⁂ 휴먼카인드 (뤼트허르 브레흐만, 536쪽) / 인문
11월에 읽었는데 독서토론 질문을 만들려고 다시 읽었다.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생각(통념)이 ‘과연 그러한가?’ 생각하며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대부분 사람이 옳다고 받아들인 사실이 정말 옳은지 밝히는 내용이다. 소년들이 무인도에 갇힌다면 정말 『파리대왕』 같은 일이 일어날까? 이스터 섬에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방관자 효과를 널리 알린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은 알려진 그대로일까?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특별하다. 친밀하고 우호적인 존재가 살아남는다는 호모 퍼피 이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공감의 부정적인 면, 권력자가 보이는 행동을 분석한 내용은 정말 놀랍다.
『휴먼카인드』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에게 ‘당신의 생각이 타당한가?’ 하고 묻는 책이다. 반면 긍정하며 잘 받아들이는 분에게 ‘제대로 받아들이는가?’ 묻는 책이다. 물론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분이 『멋진 신세계』나 『1984』, 『기억전달자』 , 『산둥수용소』 같은 책을 읽는다면 균형잡힌 생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279쪽) / 소설
70년 전(1953년)에 바라본 디스토피아 세상을 썼다. 저자는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고 영상에 빠져들 거라고 봤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다 못해 국가에서 책을 읽지 못하도록 전략을 세운다. 거짓 방송을 내보내어 세뇌하고 국민을 우둔하게 만든다. 그래야 국가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 테니까.
대부분 국민이 책이라곤 본 적이 없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숨어버렸다. 책을 간직하다가 들키면 방화수들이 가서 책을 태워버린다. 집을 불이 나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서 소방관들이 할 일이 없어지고, 오히려 불을 지르는 직업이 생겨났다. 책 제목인 『화씨 451』도는 책이 타기 시작할 때 온도다.
몬테규는 방화수다. 책을 태우러 갔다가 책과 함께 죽는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도대체 책이 뭐라고 책과 함께 죽는지 궁금해서 책을 한 권씩 숨겨온다. 책을 좋아하던 사람을 찾으려 한다. 그러다가 발각되고, 자신이 모은 책을 스스로 불태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 ……
사건이 많지 않고 몬테규의 생각과 서술이 많아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그래도 7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책보다 영상을 좋아하는 세상이 될 줄 어찌 알았을까!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참 좋은 책이다.
⁂ 준주(조양희, 456쪽) / 소설
작가는 어릴 때 엄마와 외할머니가 징병으로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은 외삼촌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작가가 외삼촌 나이의 아들을 둔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외삼촌 이야기를 엄마에게 물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나마 외삼촌이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준주>를 썼다고 했다. 준주는 작가의 엄마, 외삼촌은 오빠로 등장한다. 대구에서 살다가 일본에 공부하러 가고, 인연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가슴 저리게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 작가의 의도가 해피엔딩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적다. 일제 강점기 이야기 중에 가장 편안하게 읽었다. 위험도 겪지만 행복하게 끝나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나는 슬픔과 친하기 때문에 이렇게 느꼈지만,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 고등학생들과 토론하려고 읽었다.
⁂ 지리의 힘 2 (팀 마샬, 460쪽) / 인문
지리의 힘 1권에서 중국, 미국, 서유럽, 러시아, 한국과 일본,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인도, 북극을 다루었다. 2권에서는 분쟁 지역이거나 분쟁이 늘어나는 곳을 설명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그리스, 터키, 사헬, 에피토피아, 스페인, 그리고 우주. 이 책을 읽으며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종족이 나라보다 더 중요한 영역임을 깨달았다. 학생들이 지리의 힘 1권과 2권을 읽으면 세상을 잘 이해할 것 같다. 참 좋은 책이다.
저자가 꼽는 강대국의 조건이 있다. 교통망(배가 다니는 강, 평야지대, 대양으로 나가는 항구), 적으로부터 방어할 산맥이나 강의 지형, 힘을 길렀을 때 밖으로 나갈 통로(러시아에게 있어서는 우크라이나 방향), 민족의 연합 능력이다. 이는 경제력과 군사력의 바탕이다. 저자가 말하는 힘은 그야말로 파워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힘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진 평화의 힘, 고난을 이겨내는 힘, 싸우지 않고 화해하는 힘이다. 저자의 눈에 이것들은 ‘힘’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 지리의 힘 (팀 마샬, 367쪽) / 인문
지리(땅의 모양)가 한 나라를 강하게 하거나 지도자의 야망을 좌절시킨다. 중국이 해양 대국을 꿈꾸는 까닭,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까닭, 유럽이 좁은 곳에서 여러 나라가 생긴 까닭 등을 지리로 설명한다.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경유지가 된 것도 지리로 풀어간다. 25년 이상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얻은 다양한 정보를 잘 풀어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다. 재미있고 색다른 책이다.
⁂ 화이트 타운 (문경민, 342쪽) / 소설
5년 전에 집을 지으려고 땅을 사러 다녔다. 집 구조를 살피려고 아파트, 타운하우스 분양하는 곳에 처음으로 가봤다. 와~ 분양하는 직원들 사기가 장난 아니었다. 이거 사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지난해인가 LH 직원들이 투기하는 뉴스가 나왔다. 개발할 곳을 미리 알고 땅을 사서 돈을 벌어들이고, 다시 땅이나 아파트를 사고 이러면 금방 돈을 벌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지내면 눈에 돈만 보이고, 아파트에만 매달릴 것 같다.
『화이트 타운』에는 두 무리가 나온다. 아파트값을 올려 돈을 벌려는 무리와 반대편에 선 소수. 임창현은 돈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다면 사람이건 제도건 부숴버린다. 우격다짐으로 아파트를 사 모으고, 재개발할 때 아파트 팔아 땅을 사고, 타운하우스를 지어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려 한다.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는 중에 문제가 생긴다. 검은 장부를 관리하던 회계직원이 자살한다. 그리고 아파트 앞에 있던 폐교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려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 몰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오랜만에 정말 몰입하게 만드는 내용을 만났다. 『화이트 타운』은 일정한 수면 시간을 깨버렸다. 잠자는 시간을 훌쩍 넘긴 늦은 밤, 끝부분을 읽다가 충격받았다. ‘이건 뭐?’ 책을 꽤나 읽었는데 이런 결말은 상상도 못 했다. 파격적인 결말이 꺼림칙했는지 작가가 결말에 대해 에필로그에 설명해놓았다.
도시에 사는 분들이 아파트 왕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꼭 독서모임을 해야겠다. 대한민국 다수 국민이 겪는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썼다.
⁂ 주홍글씨 (너새니얼 호손, 286쪽) / 고전문학
헤스터는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낳아 ‘죄인’으로 낙인찍힌다. 평생 주홍색으로 새긴 글씨(Adultery, 음란) A를 가슴에 새기고 다녀야 한다. 공개적으로 비난당하며 홀로 외로이 아이를 기르면서도 아빠가 누군지 말하지 않는다. 헤스터는 자신의 죄악을 드러내놓고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아이 아빠는 죄악을 감추고 괴로워한다. 신분과 직업이 죄악을 밝히지 못하게 막았고, 그 때문에 더욱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그 사람이 경건하다고 좋아한다.
심리 묘사가 굉장히 많은 책이다. 고전을 읽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읽기 힘들다. 내겐 참 좋았다. 마음의 변화를 드러내는 곳이 많아 좋았고, 헤스터가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마지막 장면도 굉장히 의외였다. 아무튼 좋았다.
⁂ 체호프 단편소설 (안톤 체호프, 312쪽) / 고등학생 이상
난 단편은 잘 모르겠다. ‘뭔가 더 있겠지?’ 해도 없는 게 단편소설이다. ‘내용이 더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도 없다. 체호프 단편에는 웃음이 있다는데 나한테는 잘 안 보인다. 가끔 느껴지는 단편도 있지만, 대부분 ‘응, 뭐지?’ 하다가 끝난다.
⁂ 요코 이야기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294쪽) / 고등학생 이상
12살 요코는 일제강점기에 청진에서 살던 일본인이다. 일본 패망이 가까워지자 엄마, 언니와 서울을 향해 도망간다. 아빠, 오빠와 만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도망치다가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고 겨우 일본에 간다. 일본에서도 거리에서 자면서 힘겹게 버틴다. 일본인이 고생한 이야기라 비판을 많이 받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에서만 번역되었다. ‘일본이 우리 선조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이걸 고생이라고 썼냐? 우리 선조가 겪은 일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마음이다. 12살 아이가 겪은 일을 썼기 때문에 ‘그렇구나!’ 하며 읽었다. 어디에서나 전쟁은 없어야 한다.
⁂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장 클로드 그럼베르그, 109쪽) / 소설
참으로 귀한 책을 만났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에 할아버지가 타고 떠난 지 넉 달 뒤에 아버지가 또 기차를 탔다. 이때 저자는 4살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작가들 책을 좋아했다. 수기도 있었고, 심리학이나 철학을 다룬 책도 있었다. 소설은 처음이다. 독특한 문체로, 예측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썼다. 저자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모든 걸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문장 그대로다. 홀로코스트에 관해 모든 걸 말해주는 책이다. 대단한 능력이다. 강력 추천한다.
⁂ 천 개의 파랑 (천선란, 374쪽) / 소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책이다. 과학문학상이라? 과학 소재로 쓴 문학인지, 이야기로 과학을 말하는 건지 궁금하다. 책을 읽어보니 작가는 문학가라기보다는 과학자이다. 단, 문장을 쓰는 능력은 확실히 문학 쪽이다. 정말 문장을 잘 쓴다. 특히 여성이 관계에서 느끼는 마음을 정~말 잘 표현했다.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책값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문학의 눈으로 보면 부족한 점이 있다.
첫째, 인물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주요 인물이 고2 정도의 학생들인데 너무 성숙한 모습을 보여서 비현실적이다. 인물의 성격, 행동, 만남이 툭툭 끊어진다. 인물 아이디어를 준비해놓고 책 한 권에 다 넣었으나, 잘 연결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익혀서 책을 냈다면 정말 좋은 책이 되었을 것 같다.
특히, 여성의 관계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한 반면 남성의 중요도가 떨어진다. 남성을 주변화시켰다.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보경(어머니)의 남편은 죽는다. 연재를 고용했던 점장은 연재를 해고할 때와 나중에 연재가 부탁할 때 한 번만 나온다. 남성 기자는 연재와 은혜의 부탁에 몇 달이나 고생하며 준비한 기사를 포기한다. 지수의 아빠는 지수에게 부품을 주는 역할로만 나온다. 대기업 사장 부인인 지수 엄마가 연재네 엄마와 함께 밥 먹자고 말할 정도가 되는데도 아빠는 나오지 않는다. 말 관리자도 잠깐 큰소리치다가 쭈그러든다. 작가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마음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다. 남성이 나오지 않거나,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가 여성을 다룰 능력이 탁월한 반면, 남성을 표현할 능력이 없어서 남성을 뺐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해서 아쉽다.
둘째, 주제의식이 탁 드러나게 썼다. 주제가 빤히 들여다보여서 문학성이 부족해 보인다. 인간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는 것, 빈부 격차가 가져오는 우월감이나 박탈감, 장애, 이익을 위해 동물을 괴롭히는 것,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 주제를 담았으나,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인물의 성격과 사건을 툭툭 끊어지게 표현한 것처럼 주제도 툭툭 끊어진다.
조금 더 익었으면 좋았을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장만으로도 읽을 만한 책이다. 특히 승마 로봇으로 나오는 콜리가 매력적이다. 콜리는 등장인물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로봇이다. 그래서 선입견 없이 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이 된다. 콜리를 만나는 사람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콜리는 조정자, 중재자 역할을 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했던 모습이 있다. 내가 생각한 모습이 콜리와 비슷하다.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담담하게 툭 문장을 던져주는 사람. 상대가 그 말을 듣고 고민하게 하며, 때로는 깨닫게 하는 사람! 『천 개의 파랑』에서 콜리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 콜리가 하는 말을 읽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577쪽) / 소설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겪었던, 이제 다시 겪을 수도 있는 삶을 이야기한다. 르완다 내전을 겪은 소녀의 이야기 『천 개의 언덕』이 생각났다. 전쟁, 죽음, 난민, 절망을 다룬 두 책이 <천 개의>라는 말로 시작한다. 르완다에 있는 천 개의 언덕,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천 개의 태양이 왜 피로 물들어야 했을까? 슬프다. 어릴 때의 찬란한 꿈이 무너지며 겁에 질린 피해자로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삶이 참으로 안타깝다. 내가 아이 몇 명 도울 힘밖에 없어서 슬프다. 진짜 힘 있는 사람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을까?
⁂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레이철 시먼스, 394쪽)
우리 반 여학생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읽었다. 책 읽고 토론하고 고민한 날이 길어서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다시 읽으니 좋다. 내 마음이 여성스럽다는 걸 다시 확인했고,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여성들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했다. 우리 반 소녀들은 몇 년 더 지나야 이 책에서 말한 고민을 할 것 같다.
⁂ 돈이 필요 없는 나라 (나가시마 류진, 255쪽) / 사회
놀라운 생각을 담은 책이다. 돈이 필요 없는 나라를 상상해서 썼다. 실제로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지구에 있는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닳고 소멸한다. 음식은 상하고, 동식물은 죽는다. 돈만 다르다. 돈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생기고 가치가 늘어난다. 그래서 돈이 문제를 일으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가치가 줄어드는 실험을 했다. 현재 만 원이 1년 지나면 9500원이 된다. 돈을 오래 간직할수록 손해가 커지므로 써야 한다.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보시라. 이 실험은 책 내용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돈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면 사회 전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한 이야기이다. 설명이 아니라 소설 형식으로 썼다. 우리 사회에서 돈이 필요 없는 사회로 간 사람이 겪는 일, 돈이 필요 없는 사회에서 온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을 썼다. 경제를 떠받치는 가치를 이야기하기에 좋은 책이다.
⁂ 오레스테이아 (아이스킬로스, 321쪽) / 그리스 비극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아이스킬로스가 썼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달아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형 아가멤논의 도움을 요청한다. 트로이의 목마가 등장하기까지 10년 동안 전쟁이 이어진다. 이 전쟁은 그리스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오레스테이아>는 집으로 돌아와 살해당하는 아가멤논(1부),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살해하는 코이포로이(2부),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 게 죄인지 아닌지 가리는 에우메니데스(3부) 이야기이다. 비슷한 때에 일어난 일을 다룬 소설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 썼다.
시로 쓰인 문체에,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가 복잡해서 앞부분을 읽기 어렵다. 50쪽 정도 지나가면 그때부터는 내용에 빠져든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한 옛날, 전쟁터에 얽힌, 스파르타의 영향이 진한 이야기라 여성이 읽으면 불편하다. 그래도 ‘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원한과 저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살피며 읽으면 아주 재미있다.
⁂ 폭탄 파티 (그레이엄 그린, 211쪽) / 소설
프레드릭 비크너가 칭찬한 작가여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발상이 뛰어나다. 인간의 탐욕과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재미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굉장한 부자가 적당한 부자들을 조종한다. 식은 죽을 먹게 하고 경멸 가득한 말을 내뱉는다. 그래도 적당한 부자들은 경멸을 고스란히 참는다. 굉장한 부자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보석, 옷, 스포츠카를 받으려면 경멸을 참아야 한다. 1980년도 노벨상 후보작이라는데 읽을 가치가 있다.
⁂ 더 브레인 (데이비드 이글먼, 296쪽) / 과학
첫째의 추천으로 <책뜰안애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려고 읽었다. 뇌가 하는 일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기존의 뇌과학 책과 다르다. TV 프로그램(6부작)으로 만들어져서 독자 친화적이다. 사진이 많고 새롭다. 인간이 누구인지,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지, 어떤 존재가 될지 등의 문제를 ‘뇌’로 풀어간다.
함께 읽은 분들은 저자의 견해에 놀라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 나도 반대한다. 실험 사례가 극단적(병에 걸리거나 특이 현상을 겪는 사람)이거나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방송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호기심을 끄는 사례를 많이 보여준 것 같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길로 접근해서 균형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철학의 문제를 꺼낸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우리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로 과학만을 내세운다. 아쉽지만 굉장한, 굉장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책이다.
→ 당신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당신의 정체성은 절대로 종착점이 이르지 않는다. (12)
→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뇌와 몸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변화한다. 예컨대 당신의 적혈구들은 4개월마다, 피부세포들은 몇 주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약 7년이 지나면,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다른 원자로 교체될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당신의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상수가 하나 있다. 바로 기억이다. 어쩌면 기억은 당신을 당신으로 만드는 연속적인 실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당신의 정체성의 핵심에 자리를 잡고 단일하며 연속적인 자아감을 제공한다. (34-35)
→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38)
→ 당신은 대상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대상들을 당신답게 지각한다. (52)
→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미완성 작품이다. (52)
→ 의식은 무수한 세포들이 자신들을 통일된 전체로서 보는 한 방식, 복잡한 시스템이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한 방식이다. (132)
→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당신 자신을 아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당신 자신들을 모두 아는 것이 중요하다. (174)
→ 자아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208)
→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고통 없는 습득이 인식이 될까?)
⁂ 달리기의 맛(누카가 미오, 333쪽) / 소설
책을 읽고 나서 요리하고 싶어졌다. 달리기도 하고 싶다. 오른쪽 무릎을 다친 ‘소마’가 달리기를 포기하고 요리를 한다. 형의 등을 보면서 뛰었던 동생, 소마와 함께 뛰었던 친구, 요리를 가르치는 여학생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요리와 달리기가 잘 어우러졌다.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 다만 중간으로 가면서 글이 늘어진다. 앞서 일어난 일을 나중에 알려주는 구조로 글을 썼기 때문에 조바심 내면서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사라진 조각 (황선미, 189쪽) / 소설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 읽어서일까,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야기에서 숨겨진 마지막 조각이 드러나는 책의 끝부분까지 읽느라 답답했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숨죽이며 읽다가 답답하고 짜증났다. 마음이 밝을 때 읽었으면 삶의 무게를 다루었다고 말할 텐데 지금은 힘들다. 책은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이번 책이 특히 더 그렇다.
⁂ 수학의 감각 (박병하, 278쪽) / 수학
출판사하는 분의 글에 속아 산 책이다. 그분의 글은 제목으로 봐도, 주제나 내용으로 봐도, 내가 결코 사지 않을 책을 사게 했다. 저자 박병하는 모스크바대 수학박사다. 어디라고? MIT가 아니라 모스크바하하하하~
첫 장을 읽으며 이상한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속아서 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 2인 첫째에게 먼저 읽으라고 했다. “노는 것 같으면서도 수학 공부하는 기분”이라 했다. ‘그렇단 말이지?’
책을 들고 다시 읽었다. 쭈욱~ 읽었다. ‘와!’ 하며
이 책은 철학책 같은, 인문학 책을 읽는 느낌을 주는, 수학책이다. 예를 들어보자. 무한을 설명하면서 ‘안 된다는 생각이 가능성을 밀쳐낸다.’는 제목을 달았다. 원숭이가 거의 무작위로 쳐 대는 글자에서 의미 있는 문장이 나오는지 보는 실험으로 ‘무한’을 시작한다. ‘상상에 무한을 ‘모셔’오면 무한의 괴력을 빌려 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리타분한 수학자가 아니라 방대한 지식의 바다에서 수학을 건져내는 사람이다.
2장의 제목은 ‘당신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다.’이다. 박지원의 책에 나오는 황희 정승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가 옷에서 생기는지, 살에서 생기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설명은 박지원의 <소완정 기문>으로 갔다가 수학의 거장 힐베르트를 지나, 소동파의 시로 끝난다.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은 ‘점과 직선’이다. “What?”
내일 학교에 가서 4학년 우리반 아이들에게 곱하기 계산 방법 4가지를 설명해줘야겠다. 기존의 곱셈식과 인도 사람들의 곱셈식은 알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계산을 혁신하라’는 소제목으로 곱셈을 설명하는 장의 제목은 이렇다. <버스는 저절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수학, 과학 책 중에 최고이다. 쿤이 쓴 <과학 혁명의 구조>만큼이나 새롭다.
그나저나 내 지갑을 연 분은 책 이야기와 등산 이야기를 페북에 자주 쓴다. 나처럼 딱딱하게 살지 않고 부드럽게 어울려 사는 것 같다. 이분을 만나면 “어떻게 이런 책을 만나는지, 출판하면서 어떤 마음인지” 물어보고 싶다.
⁂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550쪽) / 인문
사피엔스가 조금 더 재미있다. 물론 호모데우스도 흥미롭다. 사피엔스를 더 차분하게 쓴 것 같다. 사피엔스가 좋은 반응을 일으키자 자신의 생각을 더 드러내어 쓴 것 같다. 합리주의로 무장한 세속주의자의 관점이 더 강해졌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찾아냈지 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의 주장에는 반대한다. 5주 동안 독서반 학생들과 함께 읽었는데 학생들도 저자가 지나치다고 말한다. 다음 주에 학생들이 어떻게 글을 쓸지 궁금하다.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593쪽) / 인문
인간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역사책은 이미 설명한 책을 살짝 바꿔 설명하는 게 대부분인데, 유발 하라리는 새로운 눈으로 역사를 설명한다. 통찰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첫 쪽부터 강력하다. 저자가 정말 박학다식하다. 지금까지 배운 역사가 고정관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과 호모데우스를 토론하면서 따로 ‘사피엔스’를 읽었는데 이 책부터 토론할 걸 그랬다. 이 책으로 인간의 역사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궁금한 점은, 저자의 진리 개념이다. 유대인이면서 유대교 계율을 따르지 않는다. 절대 진리를 부정한다. 눈에 보이는 증거만을 인정하여 진화론, 합리론, 과학주의, 증거주의를 따른다. 그런데도 히브리 대학에서 가르친다. 유발 하라리가 안식일에 무얼 할지 정말 궁금하다. (동성애자라고도 하던데)
⁂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400쪽) / 소설
중등 독서반에서 토론했다. 다시 읽어도 좋다. 1930년대에 이런 사회를 생각하다니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4년 전 독서반 학생들은 멋진 신세계에 감탄했는데 올해 학생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 344쪽) / 소설
포리스트 카터는 자신의 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가르침을 주는지 보지 못하고 55세에 죽었다. 안타깝다. 정말 좋은 책을 더 많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새 학기를 시작하며 마음이 우울해서 읽었다. 다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책도 다섯 번쯤 읽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책이다. 강추!!
⁂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 182쪽) / 과학
원제인 <모든 것의 의미>를 담은 책이다. 의심하고 분석하고 증명하는 게 일상이 된 과학자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어떤 의미를 찾아내는지) 설명했다. 종교에 대한 과학의 시선이 새로웠다. 우리가 과학적,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결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있다.
⁂ 이야기 영국사 (김현수, 405쪽) / 역사
스톤핸지부터 대처수상까지 영국 역사를 왕실 중심, 잉글랜드 중심으로 다룬다. 작가, 종교인, 장군 들을 대부분 생략하고 왕실 이야기로 영국 역사를 서술했다. 영국의 정치체제가 당시와 이전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하는 내용이 많다. 영국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개요를 알고 싶다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