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기독교

2023-1. 진리를 말하다 (프레드릭 비크너)

책뜰안애 2023. 1. 1. 14:28

2023년 첫 책으로 비크너를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비크너.

. 저자
: 비크너는 독특한 사람이다. 고개를 기울여서 본다. 사람들이 보는 방식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삐딱한 그리스도인을 위한통쾌한 희망사전이라는 책 제목에 드러나듯이 꽤나 삐딱한 사람이다. 무뎌진, 뻔한,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낯선, 새로운, 뒤통수를 탁 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독자
:진리를 말하다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무엇이어야 하는지) 말한다. 이 책에서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설교자라고 해석했지만,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면 누구나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다. 학생을 만나는 교사, 자녀를 기르는 부모, 누군가를 만나는 다른 누군가 말이다. 진리를 말하고 싶은 소명을 가진 사람 중에서 책을 좀 읽은 분에게 알맞다. 헨리 워드 비처(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스토우 비처의 남동생) 이야기로 시작해서 리어왕, 선지자, 예수님을 넘나들다가 오즈의 마법사와 나니아 연대기로 이어지며 글을 썼다. 독특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하는 이야기라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 내용
: 비크너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복음을 비극으로, 희극으로, 동화로 읽으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은 비극이고, 희극이고, 동화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는 비극이 있다. 리어왕의 공허한 외침처럼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이때 복음은 웃음을 준다. 예수님의 비유도 하나님의 농담에 가깝다. 무엇보다 복음은 동화에 가깝다. 꿈꾸는 듯한 이야기, 모든 시대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말이다.

진리를 말하다마지막 문단이 책을 요약하는 내용이다.

--- 설교자는 진리를 말해야 한다. 설교자는 소리 버튼을 꺼서, 세상이 전하는 침묵의 소식이 우리 귀에 들리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복음의 비극적 진실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진실이란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세상은 소리가 되울리는 어두운 허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희극적 진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재의 심연 속으로 스스로 임재하시되 있을 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늙은 사라와 아브라함 같은 가능성 없는 사람들에게 임재하시며, 때가 오면 어쩌면 빌라도와 욥, 리어왕, 헨리 워드 비처, 그리고 여러분과 나 같은 사람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때까지 포복절도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희극이라는 수단으로써 압도적 비극을 설교해야 하며, 빛으로써 어둠을, 특별함으로써 평범함을 설교해야 한다. 너무 좋아서 사실일 수 없는 이야기로 말이다. 이건 사실일 리 없다고 일축해 버린다면 이는 그 이야기의 숨결, 눈물에 가까운 아니 눈물과 동반되는 그 가슴 뜀과 가슴 벅참까지 놓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숨결, 그 가슴 뜀, 그 가슴 벅참이야말로 진리에 대해 우리가 지니는 가장 심원한 직관이다. ---

 

. 문장

얼굴에 거품을 잔뜩 바른 채 면도칼을 들고서 호텔 방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비처가 본 것은 자기 자신의 수치와 공포,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 하나님의 심판보다 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게 분명한 심판, 곧 자기가 자신에게 내린 심판이었다. 이 심판이 하나님의 심판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데 비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자비를 보이는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우리는 다 자기 칼에 베인다. 우리는 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아니 바라건대 적어도 인간으로 존재하는 길에 있다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수고한다.(12)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침묵이다. 이는 귀 기울여 들으라고 우리에게 제시된 침묵이기 때문이다. (45)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건 대부분 하나님의 부재 때문이다. ~ 하나님의 부재는 폭풍우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아니, 하나님의 부재가 곧 폭풍우다. 폭풍의 눈이 하나님의 눈이고, 폭풍의 중심에 있는 그 고요와 텅 빔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 긴장해서 들어야 하는 세미하고 작은 목소리기 때문이다. (75)

동화에서는 절대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지는 않으며,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최상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이들이다. (131)

세상의 벽 너머에 있는, 슬픔보다 통렬한 기쁨이라니. 교회에서도 이 기쁨을 얼핏 보게 될 때가 있다. 비록 우리가 교회에서 기쁨을 너무 열심히 찾고 있는 탓에 오히려 교회가 도무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법하지 않은 곳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138)

믿음은 이들의 최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끌어냄으로써, 믿음은 그 자체가 목표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153)

 

. 비크너 문장을 내 문장으로 바꾸기

유대인들은 아무 사고 없이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신중하게 처리한답시고 한 일이 빌라도에게 책임을 전가한 짓이다. 우리도 이렇게 한다.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예수는 메시아일 필요가 없이 그저 예수 자신으로 있어도 되었고, 가끔 술도 한 잔 나누며 그저 예수 자신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사로는 예수의 친구였고, 예수는 나사로를 사랑했다. 당신 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요한계시록의 천사는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각 사람에게 주는데, 이는 창세 전부터 붙여진 참되고 감춰진 이름이다. 한 사람의 진짜 모습, 자기 자신이 되는 모습을 담은 온전한 이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