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우리 엄마
6학년 2학기 국어 5단원에 <작가에게 편지쓰기>가 나온다. 좋아하는 책을 골라, 작가에게 편지를 쓰는 활동이다.
교과서 만든 분은 아이들이 작가에게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애들이 작가에게 편지를 쓴다고? 음, 애들을 잘 모르는군~!’
작가가 답장을 쓴다면 모를까, 아이들은 작가가 답장을 하지 않을 줄 안다.
작가에게 편지쓰기 행사를 몇 번이나 해도 답장 받은 적이 없으니까.
편지 받는 사람을 바꿨다.
“잔소리할 대상을 골라라. 이 책 좀 읽어라 응~ 하며 잔소리할 대상!”
“이 책 읽고 사람 돼라! 좀 읽어라, 읽어!” 하며 잔소리할 사람에게 책을 소개하며 편지를 쓰라고 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을 사람은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항상 내가 잘못하거나 삶에 관한 얘기만 하면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죽고 싶어 하는데 우리 엄마까지 죽는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아이는 조부모랑 살았다. 엄마는 주말에 잠깐 와서 ‘명령’하고 갔다.
올해부터 아이를 엄마 집으로 데려갔다. 이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래도 안타까웠다.
아이가 계속 ‘엄마 집’이라고 했다. ‘우리 집’이라 하지 않고.
“엄마가 죽이라고 말해?” 하니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 말이지?” 하며 흉내를 냈다.
“차라리 날 죽여. 내가 죽는 꼴 보려고 그러니~ 어쩌고~~~” 하니 맞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말을 쓰라고 했다.
쉬는 시간에 쓰기 시작했는데 수업 시작했는데도 계속 쓴다.
놔뒀다.
늘 명령과 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당하기만 한 아이가 신이 나서 엄마가 한 잔소리를 썼다.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는데, 위압적인 어른 눈치를 보며 생긴 자기보호 반응이다.)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니가 말을 안 듣는데 엄마가 살아봤자 뭐 해.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도 계속하고. 엄마가 백 번, 천 번 말해도 안 듣는데 엄마가 속이 터지지 안 터지겠니? 니가 얼마나 말을 안 들으면 죽을 생각까지 하겠나? 말만 잘 들어봐라. 엄마가 얼마나 이쁘다고 하겠니? 너가 잘못하면 엄마가 이럴 필요가 없잖아. 엄마가 널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알지? 엄마가 널 그렇게 키워줬으면 말 잘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엄마 속을 그렇게 썩히니? 다음부터 하지 말라면 또 하고 안 하겠다고 해놓고 또 하고, 엄마가 화가 나겠니, 안 나겠니? 너가 잘해 봐. 엄마가 널 얼마나 이뻐해주고 사랑해주는지 너도 알잖아. 그런데 왜 그래? 어? 엄마가 화 내는 이유도 다 너 때문이고, 잘하는 일이 한 번도 없잖아. 너가 잘하면 엄마가 어떻게 해주드나?"
(아이 대답)
또?
(아이 대답)
애지중지는 안 맞는 말이다. 아이는 할머니가 키웠다. 할머니도 효자손, 파리채로 아이를 때리며 길렀다.
몇 달 전에 아이가 슥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제 할머니가 안 때려요.”
“뭐야? 지금까지 맞았단 말이야? 할머니가 때렸어?”
5학년 때까지 자주 맞았다고 했다.
“올해는 할머니가 안 때린다고? 다행이네!”
“철들었다고 안 때린대요.”
아이가 사랑에 굶주려서 하는 행동에 몽둥이를 들었다니~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아이 맡겨놓고 공부하라고 시키기만 했다.
이어지는 엄마 말이 더 가관이다.
그래, 그렇게 해주지? 엄마가. 그렇게 해주는 걸 알면서도 그래? 너 장애인이야?
(아이 대답)
장애인이 아니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엄마가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안 듣잖아. 다음부터 안 한다고 하면 또 하고, 그게 몇 번째야? 다음부터 하지마! 다음에 또 한다? 그러면 넌 집에서 쫓아낼 거야. 진짜야. 이젠 안 봐줄 거야. 그런 줄 알아. 알았어? 대답!
(대답 안 하면)
대답해!
엄마는 자신이 다 옳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폄하하는 줄 모르고, 아이를 위협하는 줄 모르고,
아이는 위협이 아니라 사랑과 친절한 가르침에 행동을 바꾸는 줄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를 걱정한다.
"~ 엄마,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어봐. 엄마도 읽는 순간 죽고 싶진 않을 거니까.
이 주인공도 처음엔 죽고 싶어 했다가 다시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어.
엄마도 읽고 생각을 바꿔 봐."
올해 처음으로 아빠 얼굴을 본 아이!
올해 처음으로 엄마 집에 가서 엄마와 사는 아이!
아직도 자기 집을 자기 집이라 부르지 못하고 '엄마 집'이라고 부르는 아이!
할머니한테 맞고, 엄마한테 맞은 아이!
조금만 잘못해도 선임에게 혼나는 이등병처럼 꼼짝 못한 아이!
이 아이가 엄마에게 죽지 말라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으라고 한다.
이럴 때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이에게 "살아라!" 말해야 어른이지, "죽이라" 하는 게 어른일까?
어른이여, 아이 앞에서 어른이 되자.
참고> '얼이 오를대로 오른' 사람을 '어른'이라 부른다.
당신은 어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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