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학교 연합 달빛 독서캠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서일까?
새로운 학교에 가면 첫해가 힘들었다.
소달초에서 아픈 아이들과 지내다가 4년이 흘렀다. 미로초로 옮겼다.
미로 아이들이 참 착했는데도, 소달초에서 아끼고 사랑한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옮긴 학교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미로초에서 4년 지내며 아이들을 또 사랑하게 됐다.
소달초에서도 한 해 더 근무하고 싶었는데 못 했고 미로초에서 아쉬워하며 떠났다.
여름방학 때 지역아동센터 다니는 몇 아이를 위해 미로초 도서관에서 책 놀이 수업을 했다.
그때 미로초 아이들이 달빛독서캠프하자고 졸랐다. ‘실컷 책 읽고 싶다!’는 말이 자꾸만 마음을 흔들었다.
미로초 선생님께 “애들이 캠프하자고 조르네요!” 하고 말했다.
할 수 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얼마 뒤에 전화가 왔다. 캠프하자고. 우리 학교도, 미로초 구성원도 좋다고 했다.
<<달빛 독서를 하다.>>
미로초 담당교사와 의논해서 계획서를 만들었다.
미로초와 우리 학교에서 각각 신청을 받았다. 미로초 3~6학년 22명, 삼척남초 8명이 신청했다.
2019년과 2020년에 미로초에서 담임으로 가르친 아이들이 지금 5, 6학년이다.
미로초 5~6학년 중 독감 걸린 아이, 특별한 아이 둘 빼고 모두 신청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 데리고 삼척남초 도서관에 갔다. 아이들이 출입문 앞에서부터 환영해줬다.
1. 달빛 독서캠프
가. 책 놀이 90분 : 두 학교 아이들이 친해지는 놀이를 했다. (책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놀이, 정확한 높이로 책을 쌓는 놀이)나. 저녁 식사 : 학교 앞 식당
다. 7시~9시까지 책 읽기
라. 간식(피자) : 30분
마. 9시 30분~10시 30분 : 책 읽기
바. 10분 휴식하고 11시 30분까지 책 읽기
사. 핑퐁게임으로 소감 나누고 글쓰기(40분)
7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놀이는 가볍고 즐겁게, 달빛 독서는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먼저 규칙을 알려주었다.
가. 자세는 편하게. 누워도 되고 앉아도 되고 마음대로 해라. 단, 다른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된다.
나. 만화를 한 권 읽으면 만화 아닌 책을 한 권 읽는다.
(그림책은 포함하지 않는다. 계속 그림책만 읽어도 되지만 만화 읽고 그림책 읽고 다시 만화 읽는 건 안 된다.
만화를 읽으면 반드시 줄글 책을 읽어야 한다.)
다. 책을 읽으면 제목과 평점을 써야 한다.
우리 반이었던 5~6학년은 곧바로 책에 빨려 들어갔다.
3~4학년은 학교에서 자는 게 좋아서 신청했다. 책 읽기 시작할 때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하면 힘들다.
달빛 독서캠프는 책을 읽기 시작하는 10분이 중요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아이들 사이를 다니며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좋은 책을 읽는다고 칭찬하고, 편하게 읽으라고 격려하고 떠드는 아이에게 책을 권하고 지켜보고~
조용해진 뒤에도 책을 읽다가 가끔 일어나 여기저기 다니며 아이들을 격려한다.
3학년 남자아이들이 계속 낑낑댄다. 책을 넣었다 뺏다 하고, 친구와 붙어 소곤거리고~
그때마다 재빨리 다가가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달빛 독서캠프잖아. 책 읽는 캠프인 줄 알고 신청했지? 네가 스스로 신청했으면 스스로 책을 읽어야 해. 읽어 봐!”
10분 지나자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나도 책을 읽는다.
10분, 30분, 1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책에 빠져든다.
2시간이 지나고 피자를 먹었다. 30분 쉴 동안 아이들이 잠옷을 입고 왔다.
9시 30분부터 다시 읽기 시작! 이번에는 3, 4학년도 책에 빠져든다.
앉아서, 누워서, 엎드려서, 요가 자세로~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책을 읽는다.
시작할 때는 두 시간 연속으로 읽었고, 지금은 한 시간 읽고 10분 쉬었다.
도서관에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아~ 이게 달빛독서의 묘미지!’
11시 30분에 책 읽기를 마치고 글을 썼다.
아이들과 <소감 말하기 핑퐁게임>을 하고 세 가지 규칙을 알려주었다.
가. ‘재미있다’는 말을 쓰지 않기 – 신난다. 행복하다, 뿌듯하다 이런 걸 쓰겠다고 한다.
나. 이어주는 말(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다. 문장을 짧게 쓰려고 노력하기
“오랜만에 권일한 선생님을 만나서 반가웠다.”
“권일한 선생님이 오셨다. 너무 반가웠다.” 라는 말로 시작한 글이 이렇게 끝났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갔다. 너무 시간이 짧은 걸 느꼈다.”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 도서관이 따뜻하고 책도 많아서 좋았다.”
12시 10분까지 글을 쓰고 아이들을 재웠다.
미로초 6학년 아이들(2019년 제자들)과 삼척남초 6학년 남자아이와 같이 누웠다.
한참 웃고 떠들다가 아이들이 먼저 잠들었다.
쌕쌕 소리내며 자는 아이들 곁에서 행복함에 젖어들었다.
아침에 우리 학교 아이들 데리고 떠나려는데 미로초 제자들이 나와서 인사한다.
도서관에서 인사했는데도 아쉬운 모양이다.
“행복하다. 다음에 또 하고 싶다.”
‘이런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삼척남 6학년
오늘은 책 읽는 달빛독서를 했다. 책 놀이하고 책을 읽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은 『안네의 일기』라는 네덜란드 소녀가 전쟁을 당하면서 쓴 일기를 진짜 책으로 만든 책이다. ~
옛날에는 2시까지 읽었다는데 나는 가능할 것 같다. 전혀 안 졸린다. 미로초 애들은 은근 재미있고, 친절하고, 잘 인간 취급해주었다. 책만 읽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도 해 지루하지 않았다. 중딩 되면 못하지만 꿈에서도 했음 좋겠다.
미로초 5학년
오늘은 밤샘 독서를 하는 날이다. 나는 밤샘독서 핑계를 대고 권일한 쌤을 만나려고 신청했다. 옛날에 밤샘 독서했던 게 재미있어서 신청한 것이기도 했다. 밤샘독서는 생각보다 할 만했고, 아몬드라는 책이 생각보다 진짜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
몇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는 것도 어려운 경험인데 이렇게 경험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좋았다. 내년에도 하면 좋겠다.
미로초 5학년
오늘 달빛 독서캠프를 해서 권일한 선생님이 오셨다. 권일한 선생님이 오는 건 좋지만 책 읽는 건 싫다. 내가 책 읽는 건 싫어하면서 독서캠프를 한 이유는 바로 늦게 자도 되고, 오랜만에 권일한 선생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으로 독서캠프에 온 건 실수였다. 내가 그 싫어하는 책을 몇 시간이나 읽으면서 재미없을 것 같았던 책이 의외로 재미있었던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책을 싫어한다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지루했지만, 꽤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달빛 독서캠프는 아이들을 책에 빠뜨린다.
책놀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읽기만 해도 충분하다.
시작할 때 분위기를 잡아주고, 책이 아이를 이끌어가게 놔두면 된다.
<<12시까지 읽기만 하면 된다.>> 이거만 지키면 된다.
그럼 아이도, 교사도 모두 행복해진다.
“아, 정말 행복하다. 다음에 또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