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하는 자연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도망친다. 호랑이가 올라올수록 오누이는 더 위로 도망친다. 동아줄이 내려오지 않으면 오누이는 죽는다.
30년 전 사회책에는 대구 사과를 소개했다. 이후 사과 주산지는 청송을 지나 태백까지 올라왔다. 대구는 더워서 사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지구온난화로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도 바나나를 기르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자생 식물이 사라지기도 한다. 구상나무가 한꺼번에 고사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나는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다. 책도 꽤 읽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동물들이 생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펭귄이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북극곰이 굶주린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많은 동물이 온난화를 피해 서식지를 옮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벤야민 폰 브라켈은 『피난하는 자연』에서 동물들이 도망칠 피난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동물은 거처를 옮겨야 한다. 실제로 동물은 서식지를 옮긴다. 나비와 벌과 모기 같은 곤충부터 파충류, 조류, 포유류까지 모두 살아가기 적당한 곳(지금 서식지보다 시원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산호와 다시마, 대구와 고래까지. 고위도(북극과 남극)로 옮기면 살아남겠지만, 서식지를 옮기는 게 어렵다. 인간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도로와 도시, 경작지가 곳곳에서 동물의 이동을 막는다.
침입종, 외래종의 위협은 각 나라에서 주요 뉴스로 다룬다. 저자는 침입종이 지구온난화를 피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과정이라고 한다. 침입종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기존 논리에 맞서 새로운 종이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동식물이 대륙을 옮겨 생태계를 교란하는 건 막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무조건 퇴치하는 태도에는 반대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구상나무는 죽기 마련이고, 지구 온도를 낮추지 않는 한 구상나무를 살릴 방법이 없다는 논리다.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높은 산 아래에 살던 동물은 그야말로 나무 위로 도망치는 오누이 신세다. 더위를 피해 산으로 올라갈수록 동물의 종류와 개체수가 많아진다. 다른 동물과 싸워야 한다. 또한 산은 정해진 높이가 있다. 지구가 더 뜨거워지면 산꼭대기에 온갖 동물이 모여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만 기다릴 것이다. 동아줄이 내려올 리 없으니 남은 건 하나뿐이다. 멸종. 실제로 2020년 호주 산불에서 30억 마리의 동물들이 불에 타거나 질식해서 죽었다. 코알라들은 불길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동아줄은 내려오지 않았고 코알라들은 모두 불에 타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피난하는 자연』은 학자들이 조사한 내용을 가득 담았다. 수십, 수백 km를 이동한 동식물을 증거로 자연이 피난할 통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호구역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보호구역이 더워지면 그곳에 살던 동식물도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보호구역이 도시와 도로로 둘러싸였다면 남은 건 멸종뿐이다. 저자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학자들은 보호구역에 살던 동식물이 북쪽으로 이동하도록 통로(거점)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호주, 에콰도르, 싱가포르 등에서는 정부가 땅을 사들여 피난 통로를 마련한다.
『피난하는 자연』을 읽으며 지구온난화가 정말 심각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자연이 피난한다면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자연이 무너지는데 어디에 선단 말인가!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모임에서, 환경에 관심있는 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