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묵상

기독교 세계관과 수업

책뜰안애 2022. 9. 1. 18:37

15년 전에 기독교 세계관으로 수업하겠다고 모임을 만들었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수업하는 게 재미있었다.
행복한 수업만들기(초등)에서 모임을 여럿 개척했지만 몇 년 반짝하다가 무기력해졌다.

이후로 줄곧 나만의 수업에 몰두했다.
글쓰기 수업, 독서 수업, 자연을 거니는 수업, 마을을 다니는 수업!
이런 수업은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수업일까?

30년 전에는 기독교 세계관을 창조-타락-구속으로 설명했다.
20년쯤 전에 창조-타락-구속-회복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 구조를 수업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창조, 타락, 구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업에 적당히 끼워넣는 수준이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도예베르트의 우주법철학이 발전된 형태입니다.
대부분의 사상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핵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고
대중이 좋아하는 개념만 남지요.

기독교 세계관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한다.
같은 기독교인들이라 해도 통일된 관점을 정하기 어렵다.
또한 세계관은 도구로 활용될 가치가 크지만 도구는 늘 오용될 위험이 크다.

기독 교사로 30년 동안 수업하면서 든 생각,
수업은 관계다.
세계관도 하나님과 한 사람의 관계다.
수업하는 사람(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수업과 학습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런 게 세계관이라 생각한다.
설명과 전달이 아니라 토론과 묵상(숙고)이 필요하다.

2022년 9월 <복음과 상황>에 좋은 기사가 실렸다.
<복음과 상황> 잡지사에 전화해서 선생님들과 기사를 나누고 싶다고 했더니 1주일 동안 무료로 읽게 해주었다.
1주일이 지나면 회원만 기사를 읽게 바뀐다.

<아돌프 히틀러, 칼 바르트, 그리고 세계관 투쟁>에 나오는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같은 성서적 주제로 세계관을 구성한다고 하여
그리스도인이 신뢰하고 활용할 만한 좋은 '기독교' 세계관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계관' 개념 없이, 혹은 '세계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지금 여기서 현실에서 듣고 말과 삶으로 증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