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톨스토이) 토론 질문
<몇십 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을려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 둥우리를 만들기에 바쁜 떼까마귀와 참새와 비둘기는 새봄을 맞아 아주 즐거워 보였고, 양지바른 담장 가에서 파리들도 분주히 날고 있었다. 식물도 새도 곤충도 어린애들도 모두 명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 어른이 된 사람들은 – 여전히 자기 자신뿐 아니라 서로서로를 속이고 괴롭혔다. 사람들은 이 봄날 아침이 신성하다거나 의미 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온갖 만물의 행복을 위해서 신이 마련해 주신 세계의 아름다움, 즉 평화와 화평과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생각해낸 일들만이 가장 신성하고 의미 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9-10쪽)
1. 톨스토이는 위 글에서 자연과 아이를 좋게 보고, 어른을 나쁘게 판단한다. 부활에 나온 아이들은 모두 좋게 묘사했다. 톨스토이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1-1. 봄날 아침이 신성하고 의미 깊은가?
1-2. 봄날 저녁이 신성하다면 여름날 점심, 가을날 밤, 겨울날 새벽도 신성하고 의미 깊은가?
1-3. 한 사람의 삶에서 신성하고 의미 깊은 순간은 언제였을까? 여러분에게는?
1-4. <날마다의 삶에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라는 문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건 문제에 그다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증인 부재란 명목으로 그가 스코페스 교도 사건을 연기하고 있는 이유는 배심원의 구성원이 지식층이어서 공판에서 무죄로 판결될 우려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군청 소재지의 하급 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도록 재판장과 협의했다. 그곳에서는 배심원이 거의 농부 출신일 것이므로 유죄로 판결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46쪽)
2. 이런 생각은 지혜로운 판단일까, 교활한 생각일까?
2-1. 검사보는 뇌물을 주지 않았다. 권력자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아는 사실을 유리하게 이용했다. 나쁘게 보아야 할까?
<사십육 년 동안이나 이 성책을 맡아온 사제는 얼마 전에 대성당의 주임 사제가 치른 것처럼 앞으로 삼 년 후에는 자신의 성직 생활 오십 주년 기념 축하를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 지방 재판소의 창설 당시부터 계속 근무해온 사제는 자신이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선서를 하게 했고, 또 아주 늙어서도 교회와 국가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가족을 위해 지금 살고 있는 집 말고도 3만 루블 이상의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큰 긍지로 여겼다. 그의 직무가 선서를 원칙적으로 금하는 복음서를 앞에 놓고 사람들에게 선서를 시키는 일이었으나,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거나 그로 인해 마음에 부담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직무상 훌륭한 신사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었으므로 이 습관적인 일에 애착까지 느끼고 있었다.> (54쪽)
<농민들은 지금 죽음 속에 있다. 그리고 자기의 죽음에 너무 길들어 버려 이에 어울리는 생활 방식을 만들어냈다. 어린애들의 죽음, 아낙네들의 과중한 노동, 그 외의 사람들 특히 노인을 위한 식량 부족 등. 이런 상태에 익숙해져 버린 그들은 자기들의 그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그 공포를 호소하는 것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보는 우리도 그것을 당연한 것,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로 아는 것이다.> (387)
<그녀(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이런 일들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했기 때문에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고마워하는 마음도 없이 당연하게 그녀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3. 주임 사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농민은 주변 상황에, 마리야 파블로브나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도움에 익숙해졌다. 귀족들도 네흘류도프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자 불편해했다. 인간은 쉽게 무뎌지는 존재일까?
<~ 우리는 모두 절망 속에 떨어질 운명입니다. 깊은 절망이, 고통스러운 영혼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떨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이 두려운 재앙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무서운 불길은 이미 우리의 집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모면할 길은 없습니다.> (Ⅱ-70)
3-1. 설교자는 같은 설교를 하고 또 하면서도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린다. 주임 사제, 농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무뎌졌다. 설교자의 반응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대인들, 이를테면 기독교도라든가 자선가, 지극히 선량하기만 한 사람들이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죄를 짓게 하려면?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즉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Ⅱ-219-220)
3-2. 위 글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무슨 뜻일까?
3-3. 중요한 일에 무뎌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의 병세가 조금도 회복될 가망이 없었을 때 그는 진심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바랐던 것이다. 어머니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바랐던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이르고 있었으나 사실은 자신이 어머니의 고통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죽음을 바랐던 것이다.> (176쪽)
4. 사람이 이기적인 의도에서 나온 행동을 이타적인 동기로 바꾸어 해석하려는 까닭이 뭘까?
<처음 면회 갈 때 네흘류도프는 카튜샤가 자기를 보고 자신이 뉘우치고 있으며 그녀를 위해 힘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기뻐하고 감동하면서 다시 예전의 캬튜샤로 돌아와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튜샤라는 여자는 이미 없어지고 단지 마슬로바라는 여자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에 그는 더욱 놀랐고 두려웠다. 더욱이 크게 놀란 것은 마슬로바가 자기의 처지를 – 여죄수로서가 아닌 매춘부라는 처지를 –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만족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인간이란 무슨 행동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행위가 중요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극히 중요하고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갖게 마련이다.>(265-266)
4-1. 인간은 왜 자신을 정당화할까?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인생관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또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자신의 인생관이 변하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의 뜻대로 여기에서 벗어나 그가 끌어들이려는 세계로 발을 내디딘다면 자기에게 긍지와 자존심을 갖게 해줬던 자기 인생의 의의가 없어질 것만 같아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었다. 그녀가 처녀 시절과 네흘류도프와 사랑을 나눴던 시절의 추억을 스스로 몰아내 버린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268)
4-2. 인생의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 자신을 위해 살아가건,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건 자기 자신의 긍지와 자존심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불건전한 노동과 음주, 방탕으로 건강을 잃고 타락하여 미치광이처럼 꿈이라도 꾸듯이 거리를 방황하다가 어느 낯선 집 광 안으로 숨어들어가 누구에게도 소용없는 돗자리를 훔쳐 잡혔을 때, 궁핍을 전혀 모르는 교양 있는 우리는 이 젊은이를 이 같은 처지로 몰아넣은 원인을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이 젊은이를 처벌함으로써 사건을 해결 지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18>
5. 네흘류도프는 내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노력을 쏟았다. 어떤 효과가 있을까?
<건물이 거대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제도는 훨씬 더 거대하다는 것을 문득 생각해 냈다. 누구에게도 소용없는 희극을 연출하기 위해서 매달 임금을 받고 생활해 나가는 관리며 서기, 수위, 문서 배달부들이 비단 이 재판소만이 아니라 러시아 전국에 하나의 완전한 군대와 비견할 만큼 퍼져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는 생각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겨우 자신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서 필요로 하는 손이나 발을 바라보는 정도로밖에 가치를 인정치 않는 이들 내버려진 사람들을 돕는 데 이와 같은 위선을 위해 소비하는 노력의 백 분의 일만 쏟는다면?> (217)
5-1. 이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말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될까?
5-2. 처벌 대신 회복을 추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처벌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다. 지금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나는 뉘우치고 있는 거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러 왔소.” ~ 이렇게 외치고 난 그는 부끄러움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곧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참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콘 소리로 계속 말했다. “나를 용서해 주오. 나는 정말 나쁜 짓을…….” “ 그는 다시금 철망 너머로 외쳤다.> (257-258)
6. 톨스토이는 고백하는 장면을 왜 철장 너머로 소리치게 만들었을까?
<그는 상부에서 전달된 지시 사항은 어김없이 행하였으며 또 그 실행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상부로부터의 지시 사항에 아주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여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변경할 수 있으나 이것만은 절대로 변경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Ⅱ-77)
<215-217쪽 참고>
7. 위의 두 부분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7-1.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이런 일꾼 –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지시에 성실하게 복종하는 사람 –을 길러내는 건 아닐까?
7-2. 구조가 잘 갖추어진 사회, 조직 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8. 네흘류도프의 변화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
<외면적인 생활 개혁(그는 학생같이 검소하게 지내려고 했었다.)에 대한 그의 노력은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일 뿐 아니라, 오히려 집 안에서는 집지기도 그의 조수도 찬모도 거기에 코르네이까지도 모직물이며 모피류를 일광 소독하는 작업에 휘말려 소동을 피웠다.> (269)
8-1. 네흘류도프 저택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이렇게 모든 일들이 잘 처리되었는데, 그래도 네흘류도프는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농부들 중의 몇 사람이 고마움의 표시를 했으나 대두분의 농부들에게선 여전히 뭔가 더 큰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한 기색을 엿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많은 것을 잃으면서 농민들에게 해주었으나 결코 그들의 기대만큼 해주지 못한 꼴이 돼버린 것이다. ~ 네흘류도프 역시 불만스러웠다. 뭐가 불만인지 뚜렷이 말할 수 없었으나 뭔가 수치스럽고 슬픈 느낌이었다.> (366-367)
8-2. 네흘류도프의 제안을 받은 농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8-3. 여러분이 네흘류도프라면 어떻게 처리할까, 농민을 도와주려는 주인의 의도를 모르거나 왜곡하는 사람들, 의도를 안 뒤에는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뜯어내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절대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Ⅱ-217)
9. 귀족들은 농민들의 고통을 알았을까?
9-1. 귀족들이 농민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데 넌 뭣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구속하려 하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가는 거니?”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Ⅱ-211)
10. 네흘류도프가 꼭 가야만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11. 네흘류도프의 부활을 방해하는 것들을 찾아보자. (집안, 같은 가문, 귀족들, 사회 구조, 농민들, 기타)
11-1. 네흘류도프가 카튜사를 따라가기 위해 행한 불법을 묵인해도 될까?
12. 톨스토이가 어떤 의미로 부활이라는 낱말을 썼을까?
<카튜사는 오직 자기만 희생되기를 바란다. 아, 그녀도 나도 이긴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사실이지만 그녀 마음속에 변화가 온 듯하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믿기는 어렵지만 그녀는 분명 부활하고 있다.> (Ⅱ-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