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청소년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끝날까?

책뜰안애 2020. 3. 19. 09:07

(보물섬, 산호섬, 15소년 표류기 그리고 파리대왕, 멋진 신세계)

코로나 19로 개학이 5주나 연기되었다. 보물섬을 꿈꾸던 아이들이 15소년 표류기를 맞은 셈이다.
어떤 나라는 통제로(멋진 신세계처럼), 어떤 나라는 방임으로(파리대왕처럼) 대처했다.
이럴 때 아이들은 집에서 무얼 할까?
책을 읽으면 좋겠는데 부모가 책으로 자녀를 이끌지 모르겠다.

Thanksbook(2015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모험이 이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어릴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 <보물섬>을 빠지지 않고 봤다. 짐 호킨스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벗어나 보물을 찾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보물섬>은 모험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잘 나타냈다. “끝이 좋아야 한다!!”

로버트 밸런타인이 쓴 <산호섬>은 모험 이야기 공식에 맞게 행복하게 끝난다. 세 소년이 폭풍을 만나 산호섬에 표류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다. 세 젊은이는 원주민 부족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고 원주민을 기독교인으로 교화한 뒤에 돌아온다. 그야말로 행복하게 살았더래요.’이다.

모험 이야기 하면 쥘 베른이다. 쥘 베른은 모험 소설의 수준을 높인 작가이다.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15소년 표류기> 제목은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해저 2만리(원제목은 해저 20만리)는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 호를 타고 바다 속을 종횡무진 다니는 이야기이다. 네모 선장은 물고기와 해저 괴물이 득실대는 곳에서 사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사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필리어스 포그는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겠다며 내기를 한다. 80일 만에 돌아왔지만 조금 늦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날짜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를 앞당겼다는 걸 알고 내기에서 이긴다.

소개한 책은 모두 1800년대 후반에 쓰였다.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때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류가 끝없이 진보할 것이며 과학기술이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할 것이라 생각했다. <15소년 표류기>는 이런 분위기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중학생 15명을 무인도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 쥘 베른의 ‘15소년은 어른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다. 표류했지만 총과 탄약과 각종 물건을 잔뜩 건져낸다. 배에 있는 도르래를 끌어내 물건을 산 위로 올린다. 동굴을 파서 집을 만들고 밭을 개간한다. 야생동물을 잡아 키우고 바다표범을 사냥해서 기름을 만들어 불을 피운다. 해적과도 싸워 이긴다. 곰과도 싸운다. 그러나 한 명도 죽지 않는다.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현실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험이다. 폴 투르니에는 우리의 삶을 <모험으로 사는 인생, IVP>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겪는 모험이 19세기 후반에 쓰인 이야기처럼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개발서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까닭은 자기를 잘 개발하면 행복한 결말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개발로 성공하는 사람이 적다. 자기개발서를 요약하면 성실성+통찰력을 갖추라는 말이다. 둘 다 책 몇 권 읽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면서 미래만 바라보면 절망하기 쉽다.

<산호섬>에 표류한 세 사람 이름이 랄프, , 피터이다. 공교롭게도 윌리엄 골딩은 <파리대왕>에 랄프와 잭을 다시 등장시킨다. 파리대왕의 아이들은 산호섬 아이들과 완전히 다르다. 몇 명이나 표류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다. 바람과 비를 피할 임시 오두막도 완성하지 못한다. 구조를 위해 봉화를 피우자는 랠프에 맞서 잭은 멧돼지 사냥에 마음을 빼앗긴다. 주도권 다툼 하면서 친구를 죽이고도 죄책감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한 사이먼을 죽이고 랄프까지 죽이겠다고 단체로 인간 사냥을 벌인다.

과학이 인류에게 멋진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는 꿈은 1차 대전과 함께 깨졌다. 2차 대전은 인간 자체에 대한 소망도 깨버렸다. 인간에게 정말 아름다운 미래라는 게 있을까 의심하게 만들었다. 윌리엄 골딩은 이런 분위기에서 <파리대왕>을 썼다. <산호섬>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랠프와 잭이 맞서 싸우게 만들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70년이나 흐른 지금,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바라볼까? 도와줄 사람, 이야기 나눌 사람 없이 홀로 남은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일까?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존재와 함께 표류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호랑이 덕분에 오히려 절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한 배에 탔다면 오히려 견디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와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는 500년 전에 <유토피아>를 썼다. 모어가 생각한 유토피아는 사유재산이 없는 국가를 보여준다. 신분의 구별이 없어 모두 평등하게 살아간다.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다. 이것 역시 현실성이 없다. 모든 국민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며 평안하게 살아간다. 어림도 없다. 유토피아가 맞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속의 나라이다.

토머스 모어는 괜찮은 인문학자였다. 윌리엄 틴들에게 협력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루터교 신도를 죽이고 감옥에 보냈다. 나는 틴들과 루터를 좋아하지만 이들을 반대한 토머스 모어도 좋아한다. 그래도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기대는 그저 마음에 그리는 상상,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 생각한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린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탐욕은 더 커졌고, 사람들은 여전히 정의에 굶주려 있다. 모어가 꿈 꾼 유토피아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 앞으로 500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쓴 책이다. 포드 기원 141년에 9년 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바뀌고 다시 500여 년이 지난 뒤의 세상을 말한다. ‘포드 기원은 아마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스템을 만든 헨리 포드가 태어난 해(1863)일 것이다. 포드 기원 632, 지금보다 480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올더스 헉슬리는 인류가 유토피아를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올더스 헉슬리가 생각한 <산호섬>이 아니라 <파리대왕>이었다.

유토피아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 멋진 신세계가 전혀 멋지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중학생들과 토론하면서 5가지를 찾았다. 첫째, 계급제도 때문이다. 헉슬리는 모어가 꿈꾼 계급 없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계급제도를 유지하되, 모두 자기 계급에서 만족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어떻게 다른 계급을 부러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호랑이와 한 배에 타는 것이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지내는 것보다 쉽다.

둘째, 세뇌이다. <멋진 신세계>는 정해진 계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세뇌를 이용한다. 세뇌당했기 때문에 다른 계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사회 질서에 의문을 품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국민만 모인다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 지도자의 명령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해 한다면 정말 유토피아다. 플라톤이 원한 철인정치가 이렇지 않을까?

셋째, 소마가 있다. 정해진 계급에서 정해진 일을 하도록 세뇌되었지만 <멋진 신세계> 주민도 사람이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우울함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울 때,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소마를 먹는다. 기본으로 하루 반 알, 기분이 나쁠수록 더 먹는다. 현재에 만족해서 사회에 의심을 품거나 불만을 갖지 않게 만드는 마약이다. 소마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기쁨을 약속한다. 원주민 공동체에서 멋진 신세계로 들어온 존은 대가를 지불한 것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니나는 그저 하룻밤 상대로 존을 원했지만 존은 레니나를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한다.

넷째, 그러나 사회 체제를 의심하면 죽인다. 멋진 신세계에서 다름은 틀림이다. ‘촉감영화보고 방향오르간으로 만족하고 장애물 골프즐기지 않으면 위험인물로 간주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혼자 지내며, 생각하고,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소마를 의지하고 않고 옛날 책을 보면 섬으로 보내버린다.

이승원(부구중학교 3학년, 멋진 신세계 독서토론 후기)

오늘 수업을 하면서 내가 우리나라 사회에 세뇌되어 있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처음 내가 받았던 질문인 현대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어야 한다면 무엇으로 계급을 나눌까?’ 라는 질문에서 당연할 지도 모르는 성적이라는 대답을 했다. 근거로 시험이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다라고 하였는데 혹시 내 대답이나 근거마저 내가 어릴 때 교육 받으면서 세뇌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계급사회일까?” 라는 질문에서는 성공한 자와 성공하지 못한 자가 누리는 혜택이 다르다고 대답했는데 이것마저도 성공해야 우리나라에서 어깨 펴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 같아 나는 세뇌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수업이었다. 상당히 재미있었다.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인간됨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승원 학생처럼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살펴보는 생각이 귀하다. 얄팍한 생각으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헉슬리가 생각한 <멋진 신세계>를 만들 뿐이다. ‘다름틀림으로 생각하면 <산호섬><파리대왕>이 된다.

<파리대왕>을 만들지 않기 위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도 못한 순간에 갑자기, 외부의 혁명적인 간섭으로 하루아침에 격변이 일어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도록 돕는 게 내 일이다. 학생들이 정답 찾는 기계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인간으로 자란다면 조금이라도 유토피아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1.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기억전달자, 로이스 로리, 비룡소

- 이방인, 알베르 까뮈

- 사이렌, 전성현,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