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울린 아이 - 1
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글을 쓰도록 꼬드깁니다.
30여년 동안 아이 글 6만 편 이상 읽었고, 1만 편 넘게 답글을 써줬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이 참 많습니다. 그 중 셋을 꼽는다면
1. 강원도 산골 분교에서 만난 남자아이
- 저를 만나 5년만에 처음으로 일기를 쓴다고 했던 남학생.
- <선생님의 숨바꼭질> 3. 아픈 아이 마음 찾기 - 희망 꽃이 된 산골 소년
에서 소개했습니다.
- 전국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이전해에 형이 전국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글을 훨씬 잘 썼어요.)
2.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남자아이
- <선생님의 숨바꼭질> 3. 아픈 아이 마음 찾기 - 절망에 빠진 아이에게 희망 꽃이 되려면
에서 소개했습니다.
- 1번과 2번 아이 보고 싶어서 중고등학교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3. 마지막 아이는 지난 학교에서 만난 여자아이입니다.
- 4학년 담임으로 만나, 10월 쯤에 아래 글을 써왔어요.
- 5학년이 되어서는 방과후 글쓰기 교실에서 같이 글을 썼고, 6학년 때도 글쓰기 교실에 나왔어요.
- 전국대회 금상, 은상, 동상을 골고루 다 받았던 아이입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글을 두 번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먼저 4학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 할아버지의 눈
*** (4학년 여)
요즘 난 몹시 바쁘다.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내일 베트남에서 오는 외삼촌 데리러 인천공항 간다. 내가 동생들이랑 할아버지까지 다 책임져야 한다. 할아버지는 눈이 잘 안 보이신다. 며칠 전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그 뒤로 잘 안 보이신다. 안 보이니까 길을 익히려 자꾸자꾸 나가신다. 나가는 위치도 모르신다. 할아버지가 나가고 스스로 못 들어오신다. 우사 가셨다가 내가 불러서 겨우 들어오셨다.
할아버지가 하도 안 되니까 내가 창고에 쓰러져 있는 지팡이 하나 들고서 할아버지한테 드렸다. 할아버지는 이제야 좀 덜 불편한 듯 지팡이 짚으면서 겨우 집 안으로 들어오신다. 지팡이 위치랑 신발 위치까지 알아두려고 노력하신다.
할아버지는 길 외우러 또 한 번 나가신다. 난 별 일 없겠지 하면서 집에 있는데 1분이 넘어도 할아버지가 문 앞에 서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신발이 짝짝이다. 한 짝은 맞는데 한 짝은 작고도 작은 분홍색 내 슬리퍼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이상한 듯 출발하지 않으셨다. 불안한 마음에 할아버지를 따라다녔지만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며 집 못 찾으면 소리 지른다 하시며 우사로 가셨다. 불안하긴 했지만 집으로 들어왔다. 약 1분 뒤에 밖에서 “다인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집 반대편, 쓰레기 태우는 곳에서 “여기가 문이냐?” 하며 계셨다. 나는 아니라고 설명하고 문까지 안내했다.
글에 나오듯 엄마가 베트남에서 오셨다.
아이 집에 가정방문을 갔다. 아이에 대해 묻지 않고 아이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다.
"선생님, 저기 계단에 아직도 제 눈물이 남아있어요. 저기 앉아서 많이 울었어요."
한참 즐겁게 지낼 나이의 엄마가 50을 앞둔 아이 담임교사 앞에서 울 정도로 말이다.
엄마는 시골에서 세 아이 기르며, 양계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시어머니가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동네가 다 알 정도다.
엄마가 빗자루 들고 뱀을 때려잡았다.
아이가 이 이야기를 써서 전국대회 초등부 금상을 받았다.
----------------------------------------- 우리 집, 진짜 없는 게 없다.
***(5학년 초)
오늘 왜 이 일기를 쓰냐 하면 일단 시작부터 말해야겠다. 처음에 마당에서 물총 싸움한 걸 쓰려고 했다. 아주 과격한 물총 싸움을. 솔직히 물총 싸움이 아니라 그냥 물총 통에 물 받아서 통째로 뿌리는 싸움이었다. 그러다가 막내가 춥다면서 먼저 들어가고, 나랑 송*이랑 같이 놀다가 들어가려는데, 우리 집 계단 구석에 커~다란 뱀이 뙇! 있어서 집 청소하는 엄마를 크게 부르고 뱀이 있다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엄마! 뱀!!! 뱀!!! 뱀! 뱀! 뱀! 뱀!!!!“
하고 소리를 엄청 질렀다. 그랬더니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어디!?" 라고 했다. 내가 더 잘 잡는 아빠를 안 부른 이유가 아빠는 일하고 있어서 집에 아직 안 들어왔다. 그래서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와서 뱀 머리를 막 때렸다. 막 머리에 피가 막 나는데도 꿈틀거리고…… 하, 진짜 더럽게 안 죽네. 내가 계속
"엄마! 더, 더 때려!! 더! 더! 더 때려!!“
막 이랬다. 하, 진짜 머리에 피 많이 났는데. 진짜 더럽게 안 죽네. 그러다가 뱀이 엄마한테 공격 자세를 취했다. 엄마가 그냥 무시하고 머리 엄청 때렸는데 뱀은 안 죽고, 꿈틀거리기만 하고……
집에 들어갔다. 엄마가 하는 말이
"뱀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이 너 때문에 놀랐어!“ 그랬더니 동생 송*이가
"맞아. 언니, 언니보다 뱀이 더 놀랐겠다.“
아 놔 진짜. “송*아~ 언니가 구석에 있던 뱀 발견 안 했으면 너 물렸을지도 몰라~”
하하하! 엄마가 아빠 오면, 깜짝 놀랄 거라고 했다. 엄마가 뱀만 잡고, 안 치워놔서 아빠가 깜짝 놀랄 만도 하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아빠가 한 두 시간 뒤에 들어와서 엄마가 뱀을 잡았다고 하니 아빠가 놀라서
"어디! 저거 뭐야!“
라고 했다. 엄마가 아직 더 죽여야 한다고, 아직 살아 있다고 해서 아빠가 쇠막대기를 들고 와서 머리를 때렸다. 아빠가 쇠막대기로 뱀을 들어서 버리러 가는데, 엄청 맞았는데 뱀은 아직 안 죽었나 보다. 뱀 버리러 가다가 때리는 소리가 났다. 진짜 안 죽네. 하긴, 두시간 동안 꿈틀거린 녀석이…… 아빠가 독사는 아니고 밀뱀이라고 했다. 엄청 큰 녀석이~ 아무튼 이렇게 뱀 사건이 지나갔다. 아빠한테 어디다 버렸냐고 물어봤는데 도랑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진짜 내가 설마설마 했던 일이 알아났다. 우리 집 근처에도 뱀이 많다. 막내가 자전거 타다가 꽃뱀을 보고. 어렸을 땐 물뱀이 도랑에서 짝짓기하는 모습도 봤다. 그땐 뱀이 별로 안 무서웠는데, 오늘 뱀의 생명력이 아주…… 어렸을 땐 귀엽고 신기했는데 지금은~ 그래서 난, 오늘부터 뱀을 무서워하기로 했다!
정말로 우리 집은 없는 게 없다. 처음에는 벌레가 나오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도 나오고, 심지어 독벌레 같은 거도 나왔다. 개구리도 나오고, 길고양이도 우리 집에 많이 오고, 심지어 고양이가 우리 집 축사에 새끼를 낳았다. 그 새끼 고양이가 우리 집 창고에 똥 싸고, 돌아다니고…… 아, 이제 하다하다 뱀까지 나왔다. 뱀은 또 얼마나 큰지. 진짜……
그런데 정말로 나보다 뱀이 더 놀랐을 것 같다.
쓰기 싫다고 버티는 아이를 꼬드기고 꼬드겨서 4학년 헤어지기 전(11월)에 글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가끔 아이가 글을 '툭' 던져주었다.
뱀 잡는 이야기는 묘사가 탁월한 일기다.
<우리 집 진짜 없는 게 없다>는 제목도 아이가 정했다.
이 글을 만나고 얼마 뒤에 아이가 시를 써왔다.
다리에서 90도 오른쪽으로 꺾어 100미터쯤 가면 왼쪽에 아이 집이다.
그 다리에 현수막이 매달렸다.
-------------------------- 할아버지가 아프니까~
*** (5학년 초여름)
할아버지가 아프니까
일본에 시집 간 고모가 오셨다.
하시던 일마저 놔두고.
할아버지가 아프니까
아빠랑 엄마가 더욱 친절해지셨다.
어차피 소용 없다는 걸 아니까.
할아버지가 아프니까
집 앞에 있는 다리에 장례식 광고가 떡 하니 붙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
나도 무언가 달라진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만 변화가 없다.
“내가 다 나으면……”
‘의사가 못 고친다고 했는데……’
‘아빠가 80살 넘으면 못 낫는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못 낫는다고 생각하기 싫은데……’
"아쉽다. 아쉬워. 뭐 더 없냐?"
했더니 몇 달 뒤에 두 줄을 더 썼고
"아~ 이거 정말~ 와~ 뭔지 알지? 난 계속 기다린다."
하고 또 몇 달을 기다렸다.
마지막 다섯 줄은 내 기다림과 맞바꾼 글이다.
아이와 복도에서 마주치면
"할아버지 2탄!!"
했고 글을 받은 뒤에는 두 손을 모으고 세뱃돈 받듯이
"할아버지 3탄 주세요!"
했다. <할아버지가 아프니까> 받고 얼마 뒤에 3탄을 써웠다.
3탄 읽고 울었다.
3탄은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