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일반독자

나를 막아서는 호랑이, 어떻게 봐야 하지?

책뜰안애 2022. 4. 24. 21:58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작가정신

- 좋은 교사 잡지에 썼던 책 소개 글입니다.

행복은 참 좋습니다. ,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오래도록 죽지 않고 고통당할까봐 두렵습니다. 고통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하나님 잘 믿으면 축복 받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면 더 좋은 곳에 간다는 말을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은 강하게 가질수록 좋다고 믿고 축복을 강하게 구합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외칩니다. 과연 그럴까요?

행복(Happiness)‘Happen' , 일어난 일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행복합니다.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불행합니다. 우리가 겪는 일이 마음을 좌우합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좋은 사건을 찾습니다.

축복(Bless)’Blood‘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우리를 정결케 한다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겐 죄악을 이길 힘이 없지만 하나님 은혜로 인해 왕노릇한다는 사실을 믿고 기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축복이 더 좋다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믿으면 축복 받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축복은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축복에 더해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뿐인 아들, 자신과 동일하신 아들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계속 이기적입니다.

외나무다리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면?

인도에서 동물원을 하던 파이아버지는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납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화물선은 침몰하고 파이만 목숨을 구합니다. 구명선에 다친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오랑우탄이 함께 탑니다.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잡아먹고 오랑우탄을 죽이지만 하이에나도 맥없이 죽습니다. 보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때문입니다.

구명선에는 생존지침서도 있고 통조림으로 된 비상식량과 물도 있습니다. 낚시 도구도 있고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주는 장치도 있습니다. 구명선도 7-8m 정도로 꽤 크고 생존을 도와주는 도구들이 많습니다. 이 정도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얀 마텔은 구명선에 200kg이나 되는 호랑이를 던져놓고 묻습니다.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게 나을까? 혼자 구명선에서 버티는 게 나을까?’

생존을 도와주는 도구가 많지만 망망대해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이는 호랑이와 함께 지내야 합니다. 먹이를 구해주고 물도 나눠 먹어야 합니다. 호랑이는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확실하게 지킵니다. 좁은 구명선에서 호랑이가 정한 영역 안으로 들어가거나 먹이가 떨어지면 파이는 어떻게 될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묻는다면 대부분 호랑이가 없는 게 낫다고 할 겁니다. 살면서 호랑이(Unhappiness)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병에도 걸리지 않고 슬픈 일을 만나지도 않으면 좋겠죠. 나이가 들어도 자다가 평온하게 하나님께로 가고 싶습니다. , 교통사고, 감당하기 어려운 직장 상사, 마음을 무너뜨리는 아이들…… 모두 없으면 좋겠습니다.

표류하면서 죽을 고비를 만났을 때 파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진정시킨 것은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205)”,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있게 해주었다.(207)”

파이는 하나님을 믿는 걸까?

파이는 집 곳곳에 힌두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상징물을 놓아둡니다. 여러 신을 모두 믿는다고 말합니다. "저는 신을 더 사랑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라고 얘기합니다. ‘파이 이야기를 읽은 대학생 제자가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들과 관계하기 위해 종교를 갖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파이 혼자 구명선에 타기 전, 어린 시절부터 여러 종교를 다 믿는다고 말했으니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주장처럼 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고 어느 길로 가더라도 정상에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반대로 봤습니다. 호랑이 덕에 바다에서 227일이나 표류하고도 살아났지만 다시 호랑이와 함께 구명선에 올라가기는 싫을 겁니다. 극한 상황에서 호랑이가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목적의식을 되살려 주었지만 그건 마음에 남은 의미이지 다시 겪고 싶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파이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하기 위해 여러 신을 함께 믿기로 했다고 봅니다.

주일마다 하는 중고등학생 독서토론모임에서 파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는 아이들 대답입니다. 지면에 맞춰 짧게 요약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종교를 믿을 수 있을까? (있다.) 나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축구, 배구를 좋아한다. 이래도 될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나는 여인 1, 여인 2, 여인 3, 여인 4, 여인 5를 사랑한다. 이래도 될까? (안 된다. 된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왜 될까? (당시에는 허용되었다.) 지금도 이런 문화를 허용하는 곳-아랍, 아프리카, 중남미 일부-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일부다처는 왕이나 부자들이 주로 애용한다. (......)

왜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되고, 여자를 여럿 좋아하는 건 안 될까? (여기서 토론이 길어졌고 결국 인격’,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의견이 모아졌다.) 파이는 여러 종교를 모두 믿는다고 하는데 각 종교의 사제들은 파이가 자기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볼까? (아니다.) 왜 아닐까? (종교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격 사이의 관계 문제이다.) 사제들은 무얼 원할까? (파이가 자기네 종교만 믿는 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필요를 위해 스포츠를 고른 셈이다.)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적어도 힌두교 사제만은 파이가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아니다. 힌두교만 믿기 원할 것이다.) 그럼 힌두교의 다신주의는 뭘까? (힌두교의 다신들만을 믿으라는 것 아닐까?) 천주교 사제가 스님과 함께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할 때 그분들은 어떤 마음일까? 스포츠 개념일까? 인격 개념일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수준이다. 인격으로 믿는 자기네 종교를 높이는 마음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럼 파이는 자기 중심으로, 자기 경험에 비춰,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여러 종교를 믿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종교는 선택이 아니라 인격을 나누는 것이다. 가장 인격적인 종교,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나눔이 아니라 신과 인격적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뿐이다를 토론으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

파이는 호랑이가 있어서 절망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긴장하고 호랑이를 견뎌내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절망은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차라리 호랑이를 만날지언정 절망은 피하고 싶습니다. 절망을 어떻게 이기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할까요? 무엇이 호랑이를 만나고도 살아갈 이유를 줄까요?

저는 욥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욥이 없었다면 삶에서 누리는 의미가 많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욥은 견뎌내기 힘든 일을 만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해도 뭘 모르고 하는 소리구만합니다. 친구들이 비난해도 견뎌내려 합니다. 가장 가까운 욕하고 비난하면서 마음이 점점 힘들어지지만 견뎌내려 합니다. 욥이 정말 힘들어한 건 갑자기 닥친 비극이나 사람들의 비난이 아니라 대답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 당하고 힘들어하는데, 하나님은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십니까?’

대답 없는 신, 내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신, 절대주권을 갖지 않은 신을 붙잡고 살아가는 게 절망입니다. 파이는 호랑이 없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온갖 신을 붙듭니다. 죽음의 순간에 파이는 절망하지 않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