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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뜰안애 2020. 3. 11. 08:08

사람은 어떻게 바뀌나? (바보 온달/ 이현주 / 우리교육)
2014년 6월, Thanksbook 기고 글

바보 온달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약아빠진 술수에 염증이 난 현대인은 순수한 바보에게 대리만족을 느낄 것이다. 온달이 성공한 뒤에 평강을 버리는 삼류드라마, 온달의 성공을 자기 계발로 접근한 성공담, 한 사람의 삶이 바뀐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킨 역사드라마, 평강의 헌신과 희생을 보여주는 연애 드라마도 가능하다. 바보가 한 사람의 희생과 교육에 의해 나라를 구하는 장군이 되었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야기, 정말 멋지다.

평강은 온달을 멋진 남자, 용감한 장군, 위대한 사람으로 바꾼 아내로 칭송받았다. 온달은 관에 들어가서도 평강이 오기까지 꼼짝도 하지 않을 정도로 평강을 사랑했고 평강에게 감사했다. 바보 온달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평강을 훌륭한 아내, 헌신하는 여성으로 칭찬한다. 이현주님은 달리 해석한다. 그냥 바보 온달로 살게 두는 게 낫지 않았을까 묻는다. 자연에서 동물과 어울려 욕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전쟁터에서 분노하며 싸우는 사람으로 만든 게 잘한 일일까 묻는다. 정말 잘한 일일까?

20여 년 전에 한 아이가 학교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첩첩산골에 살았다. 아빠와 단둘이 문명이라곤 라디오 하나뿐인 곳에서 긴 긴 날 홀로 지냈다. 라디오에서 청취자가 보낸 편지를 읽어주는 걸 듣고는 도시라는 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묻는 편지를 보냈다. 세상에 이런 아이가 있나 싶어 라디오 방송에 사연이 나가고 텔레비전 방송도 드나들었다. 책 읽고 싶다고 해서 책도 보내주고 돈도 좀 보내줬나 보다. 수도권에 사는 강도가 강원도 골짜기까지 찾아 들어와 아빠를 죽이고 20만원도 안 되는 돈을 가져갔다.

그때 아이 담임을 했던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안 오기에 주변 사람에게 물었더니 걔는 원래 안 온다고 했단다. 아이가 안 오면 한 번이라도 찾아가야지, 누가 찾아간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그때 선생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면,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아빠와 산에서 그냥 살았다면 언젠가 전기도 들어가고 도로도 생겼을 텐데…… 아빠 잃고 경찰서로, 어른들 손에 이리저리 다니다 절에 맡겨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 선생님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 촬영하겠다고 오면 말린다.”고 했다.

바보 온달을 문명화된 세상에 잘못 내보내면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 촌놈이 서울에 가서 코 베어간 이야기가 어디 한둘인가! 이현주님은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 만나 장군이 되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묻는다. 책 가장 앞에 고장 나거나 아픈 별을 고치는 어린 영혼이 나온다. 오래도록 아픈 별이 없어 심심하던 어린 영혼은 하늘을 향해 돌을 던지는 바보를 보고는 저 아이라도 고쳐야겠다생각한다. 평강공주로 태어나 온달을 찾아간다.

어린 영혼 외에 중요한 인물로 고승 장군이 나온다. 고승 장군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저돌적인 사람이다. 앞길을 가로막으면 깨부수고 지나간다. 고승 장군이 나서면 모두 비켜서야 한다. 바보인 온달은 비켜서지 않아 채찍으로 맞는다. 다른 사람이라면 잘못했다고 빌거나 납작 엎드리지만 온달은 맞으면서도 계속 일어선다. “채찍을 휘두르는 장군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고 반대로 온달은 누군가를 쫓는 사람처럼 보였다.” 고승 장군이 당황한다. 비굴하게 빌지 않고, 덤비거나 욕하지도 않고, 때리는 대로 맞으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순수한 바보의 도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바보 버전의 마틴 루터 킹이랄까~

바보 온달은 맞기만 하면서도 때리는 사람을 쫓기게 만들었다. 장군은 잘 교육 받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으며 거칠 것이 없었지만 바보를 이기지 못한다. 고승 장군은 평강공주와 결혼하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평강은 바보 온달을 찾아간다. 그러나 평강을 만난 온달 고승 장군처럼 때리고 죽이고 돌파하는 사람이 돼버린다. 여유 없이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뀐다. 고승장군 같은 사람과 결혼하느니 바보 온달과 살겠다며 궁궐을 박차고 나갔지만 온달을 고승 장군과 똑같은 사람으로 바꿔 버린다.

평강은 바보의 순수함을 가지면서도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강의 교육 방식은 장군을 만들어냈다. 궁궐에서 자라면서 치열하고도 냉혹한 경쟁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교육 방식을 배웠겠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바보에겐 다른 교육 방식이 필요한데 장군이라는 목적만 바라보다가 사람을 놓쳤다. 어린 영혼은 고치는기술은 좋았지만 대상을 바라보고, 대상에게서 시작하는 마음이 없었다.

교사를 기르는 교육대학에서 교육인간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이라고 배웠다. 교육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활동, 과정을 투입한다. 바보 온달이 별을 따려고 돌을 던지는 행동보다 낫게 하려면 어떤 활동과 과정이 필요할까? 평강은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방법, 말을 고르고 타는 방법, 글을 읽고 장수답게 행동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그래서 바보 온달을 잃고 관을 받는다.

전교생 5명인 분교에서 3년을 지냈다. ‘바보 온달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말 순수했다. 아이들은 티 없이 맑은 글을 썼다. 글을 읽는 사람은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울었다. 아이가 쓴 글은 어른들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소 키우는 집에서 짚을 내릴 때면 함께 짚단을 옮기고 던지며 뒹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정보화 마을로 선정해서 집집마다 인터넷을 설치하고 컴퓨터를 준 뒤에는 온달이 사라졌다. 아침마다 마을을 달린 뒤에 글을 쓰고, 점심 먹고 나서 개울에 나가 돌 던지며 놀던 아이들이 게임하다가 피곤한 기색으로 학교에 왔다. 농사짓는 노인들에게 정보화가 무슨 대수라고, 바보 온달에게 정보와 기술을 가르치려 했을까?

온달이 별 따려고 돌을 던졌는데 어린 영혼은 돌팔매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순수함을 잃으면 순수한 행동을 못된 짓이라 판단한다. 산골 아이에게 정보를 제공할 게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순수한 마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배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경쟁에 찌들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살게 하려고 아이를 모두 온달 장군으로 만들려 한다. 말 타는 대신 학원에 가고, 활 쏘는 대신 스펙을 쌓으며, 칼 휘두르는 대신 문제집 푸는 것만 달라졌지 여전히 궁궐을 향해 내달린다. 언젠가 아이들이 칼을 휘두르며 경쟁에 앞서나갈 때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아 바보 온달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온달이 죽은 뒤에 어린 영혼은 사람을 바꾸려고 사용한 도구 향기 나는 걸레와 망치를 내버린다. 향기 나는 걸레는 당근을, 망치는 채찍이라 보면 된다. 당근과 채찍은 말을 조련할 때 써야지 인격을 대할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정한 목표를 강요하기 전에 무엇이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지 고민해보자. 고승 장군 쫓아가지 말고 별을 따려고 돌을 던지는 바보 곁에서 함께 돌을 던지며 추억을 만들자. 훗날 부모 세대가 고승 장군처럼 된 아이를 보며 후회하지 않을까! 어쩌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