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국민편지쓰기대회 초등부 금상작

근덕초등학교에 소속된 분교가 셋이었다.
마읍분교 전교생이 5명, 노곡분교 5명, 동막분교 14명이다.
마읍분교는 이쪽 산에, 노곡분교는 저쪽 산에,
동막분교는 가운데 바닷가에 있다.
화요일마다 동막분교에 모여 아이들과 글을 썼다.
마읍 아이들은 내가, 노곡 아이들은 노곡분교 선생님이 데려왔다.
나는 왕복 24km, 노곡 선생님은 왕복 26km 강원도 산길을 운전했다.
(내 계획을 듣고 허락해주신 교장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첫날, 아이들이 쓴 자기 소개글을 읽으며 늘 하던 방식을 던져버렸다.
아이들에겐 마음을 만지는 자기고백이 필요했다.
이때 <상담 글쓰기>를 시작했고
대부분 내용을 <<선생님의 숨바꼭질>>에 실었다.
4학년 여학생이 아래 1문단 내용으로 자기소개 글을 썼다.
아이 이야기를 조금씩 들으며 엄마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내용은 모두 아이가 썼으며 문단 순서는 내가 고쳐주었다.
하늘에 계신 엄마께!
하늘에 계신 엄마,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눈부신 해를 보면 자꾸 엄마 생각이 나요. 엄마는 저를 이 세상에 살아가도록 낳아주시고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엄마한테 한 번도 효도해 드리지 못했어요. 자꾸 효도 얘기를 하든가 효도 생각을 하면 엄마께 효도를 못해드려서 마음에 걸려요. 다섯 살 때라도 엄마한테 한 번만이라도 효도해 드렸으면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거 후회 안 할텐데……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그런지 기억나는 일도 얼마 없어요. 내가 태어날 때 아빠를 닮아 이마가 클까봐 엄마가 걱정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엄마처럼 뚱뚱할까봐 맨날 기도했다고 했죠! 지금은 그 기도 덕분에 안 뚱뚱하고 날씬해요. 정말 잊혀지지 않는 게 하나 있어요. 3살 때 공원에 갔는데 엄마가 화장실 간다고 나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갔는데 나는 날 버리고 가는 줄 알고 엄마를 쫓아가다가 넘어져 이마를 다쳤어요. 그 흉터가 아직도 내 이마에 남아있어요. 그래서 앞머리를 만들어 흉터를 가렸어요. 가끔 흉터를 만지면 조금 파여서 느낌이 이상해서 내 이마가 싫을 때도 있어요. 엄마가 돌아가셔서 헤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몰랐는지 울지도 않고 엄마묘만 바라봤대요. 이제 조금 철이 들어 엄마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도 보내드릴 주소가 없어요.
그렇지만 엄마는 제가 항상 마음 아픈 일, 슬픈 일, 속상한 일 있을 때 제 꿈에 나타나서 절 즐겁게 해주셔서 조금은 위로가 돼요. 정말 고맙고 엄마가 제 곁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또 가끔씩 슬픈 일, 속상한 일, 마음 아픈 일 없을 때도 제 꿈에 나타나서 눈물 흘리며 자꾸 미안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날은 그 꿈 때문에 엄마 생각이 나서 우울하고 쓸쓸해요. 그러니깐 제 꿈에서 눈물 흘리며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가 일부러 자살해서 죽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일찍 죽어서 미안하다고 하세요? 엄마는 아빠 때문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저한테 미안하다고 안 하셔도 되요. 엄마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절 잘 보살펴 주고 잘 키워주고 계세요. 그러니 엄마는 걱정 말고 제 꿈에서 울지 마세요. 그냥 제가 슬프고 우울하고 마음 아파 속상할 때 나타나서 즐겁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저는 아무 것도 못해 드렸는데 엄마는 절 즐겁게 해주시고…… 엄마가 하늘에 계셔서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해 드리지만 엄마가 꿈에서 말한 것처럼 엄마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효도 많이 해드릴게요.
제가 7살 때 유치원에서 어버이날 축제 같은 걸 해서 할머니가 오셨댔어요. 할머니나 엄마가 우리를 도와주는 게임을 했는데요. 그때 할머니가 30분도 있지 않고 바빠서 집에 갔어요. 그때 엄마가 있었으면 끝까지 다른 아이들처럼 마칠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했어요. 울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다른 할머니와 엄마를 우리 할머니랑 엄마라고 생각하고 어버이날 게임을 하고 그랬어요. 다른 할머니, 엄마들을 우리 할머니, 엄마라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해진 느낌이었어요. 저 이렇게 울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6살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동막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이사올 때는 나는 한 것이 없는데 왠지 피곤했어요. 엄마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아빠는 어디 갔는지 가버렸는데 올해 3월에 나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빠! 하고 말하면서 받아보니 무슨 여자가 받았어요. 그때 새엄마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는 괜찮지만 엄마가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니 엄마가 슬펐을 것 같아요. 엄마가 아빠 때문에 슬퍼하는 거 생각하니 화가 나요. 아빠도 그렇고 새엄마도 그렇고…… 아빠한테 새엄마가 생겨도 꿋꿋하게 잘 지낼게요. 그리고 엄마! 하늘에서 건강하게 사세요. 저랑 있을 때처럼 아프지 마시고요. 안녕히 계세요.
엄마가 보고싶은 딸 00 올림.
서울에서 열린 시상식에 마읍, 노곡, 동막 분교 아이들을 모두 데려갔다.
황금찬 시인께서 사인을 해주시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셨다.
고향 강원도에서 온 아이들이라며 책 많이 읽고 글쓰기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아이들과 서울 구경하고 돌아왔다.
초등부 금상 상금이 50만원이었다. 아이에게 말했다.
"10%는 네 것 아니다. 다른 사람 돕는데 쓰자."
아이는 5만원을 기부했다.
2007년에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