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저작권
《검정 연필 선생님》, 김리리 《우리 사부님이 되어주세요.》, 김리리 《뻥이오, 뻥》, 김리리
인터넷 서점 두 곳에서 어린이책 베스트셀러를 검색했다. 50위 중에 만화가 30권이 넘는다. 동화는 세 권뿐이다. 『푸른 사자 와니니』, 『스무고개 탐정』, 그리고 『만복이네 떡집』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소재에 좋은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김리리 작가가 쓴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렸지만 작가는 이 책을 몇 시간 만에 썼다고 한다. 『나의 달타냥』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다르며, 어떤 책이 사랑을 받는 건 운명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생각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기도 하다.
김리리 작가를 초청하기 한 달 전부터 아이들과 작가의 책을 읽었다. 세 권을 소개한다.
『검정 연필 선생님』 (143쪽)
단편 세 편이 실렸다. <이불 속에서 크르륵>은 무거운 짐을 진 느낌으로 살아가는 첫째 딸의 고민을 담았다. <검정 연필 선생님>은 공부를 짐으로 짊어진 아이가 주인공이다. <할머니를 훔쳐 간 고양이>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지친 아이의 고민을 다루었다. 도깨비가 첫째 딸의 고민을, 검정 연필이 공부에 힘들어하는 아이의 걱정을, 고양이가 할머니의 잔소리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한 가지가 이루어지면, 문제만 바라볼 때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양이가 할머니의 기억을 가져가서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지만 할머니의 다른 기억도 사라진다. ‘치매’에 걸려 소중한 기억까지 잃어버린 셈이다. 치매를 이렇게 묘사하다니 대단하다! 검정 연필을 쓰면 성적이 좋아지지만 그럴수록 걱정이 함께 커진다. 주인공 이름이 바름이다. 바름이가 정직하게 바른 길로 갈 것인가? 토론 거리가 많다. 구박받는 첫째 딸 수민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가족이지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니 더 힘들다. 도깨비는 수민이 소원만 들어줄까, 수민이가 가족과 화해하게 도와줄까?
읽으면 알겠지요!!
『우리 사부님이 되어 주세요』(92쪽)
고재미, 오재강, 마주왕은 축구를 잘한다. 자기들보다 축구를 못하던 친구들이 축구 클럽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선수 출신 코치에게 축구를 배우는 세 친구가 ‘하이에나 팀’을 만들어 도전한다. 위기를 느낀 아이들이 코치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찾아낸 사부가 마주왕의 형이고, 아빠다. 형과 아빠는 과연 훌륭한 사부일까?
축구 시합날이 다가오는데 사부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합에 지긴 싫고, 코치를 구하지도 못한다. 할 수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부가 되기로 한다. 각자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면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다니, 참 좋은 생각이다. 결말이 따뜻하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참, 축구 시합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읽어보시라.
『뻥이오, 뻥』 (91쪽)
순덕이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말귀를 알아먹는 구멍이 조그마하게 뚫려서이다. 말이 제대로 드나들지 않아서 뜻을 엉뚱하게 받아들인다. 장갑을 가져오라 하면 장화를 가져오고, 텃밭에서 가지를 따오라 하면 나뭇가지를 꺾어 온다. 순덕이는 친구들에게 ‘바보, 멍텅구리’라는 말을 듣는다. 말이 드나드는 구멍을 뻥 크게 뚫으면 어떻게 될까? 너무 잘 알아듣는다면, 상대가 말하기 전에 이미 안다면? 그러면 순덕이는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을까?
이번에는 순덕이 귓구멍이 뻥 뚫린다. 어찌나 잘 들리는지 사람이 듣지 못하는 말까지 다 들린다. 동물들 소리가 막 들린다. 청개구리가 물가에 무덤을 만든 까닭, 토끼가 달리기 시합에서 진 사연, 고양이와 비교해서 차별하지 말라는
강아지의 부탁을 듣는다. 동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친구들이 ‘바보, 멍텅구리’라는 별명을 바꿔줄까? 바꿔준다. 순덕이가 듣기 싫어하는 다른 것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쉬운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가, 동물들 말까지 잘 듣는 아이가 되더니 이야기꾼으로 바뀐다. 김리리 작가는 어릴 적 자신의 경험을 썼다고 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공부를 못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 내가 좋아하는 책이 멋진 이야기꾼을 만들어냈다는 말인데, 고맙고 기쁘다. 특히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내용이 마음에 든다. 좋은 책이다.
저작권 문제
김리리 작가는 글을 쉽고 재미나게 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편하게 읽는다. 그렇다고 작가가 편하게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글은 작가가 마음으로 낳은 자식과 같다. 저작권은 자녀를 지키는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6학년 아이가 김리리 작가에게 질문했다. MBC 드라마 <반지의 여왕>(2017년 방영)이 김리리 작가가 쓴 『감정종합선물세트』(2014년 출간)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작품의 플롯은 물론 반전, 소재, 마법 설정까지 똑같아서 MBC에 항의를 했고 다툼이 오갔다는 대답을 해주셨다. 순간 『빨강 연필』이 생각났다. 검정 연필이 오답을 찾아준다면 빨강 연필은 글을 써준다. 우연히 연필을 갖게 된 아이가 연필을 사용하고, 고민하고, 연필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벗어난다는 구성이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검정 연필이 혼자만의 고민이라면 빨강 연필은 글 잘 쓰는 친구와의 갈등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빨강 연필은 검정 연필과 달리 장편이라 더 복잡하고 묘사도 많다. 김리리 작가와 둘이 있을 때 『빨강 연필』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신수현 작가와 『빨강 연필』에 대해 조심스럽게 대답해주셨다. (참고 : 『검정 연필 선생님』 2006년, 『빨강 연필』 2011년 출간)
책에 대한 저작권을 말하면 『구름빵』이 빠지지 않는다. 굉장히 많이 팔렸지만 저자인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사람들이 출판사 사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림책 병관이 시리즈를 쓴 고대영 작가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영 작가가 출판사 직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쪽만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에 유은실 작가가 우리 학교에 왔다. 유은실 작가가 아이들에게 “글을 잘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라고 물었다. 권정생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권정생 선생님 말씀으로 대답했다. “글을 잘 쓰려면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리리 작가도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했다. 유은실 작가와 똑같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두 분이 권정생 선생님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저작권을 침해할까? 그분들처럼 쓰고 싶어 하니 그대로 따라 할까?
『빨강 연필』을 쓴 신수현 작가와 몇 달 전에 메일을 주고받았다. 신수현 작가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행동하는 분 같았다. MBC가 김리리 작가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모른다. 다만 신수현 작가처럼 신중하게, 김리리 작가와 유은실 작가처럼 존경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마주한다면 ‘침해’라는 낱말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저작권 침해 문제로, 작가들이 고민하는 시간을 빼앗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