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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장로가 되어야 할까?

책뜰안애 2022. 1. 1. 20:40
2017년 9월 9일에 쓴 글에, 페북친구가 좋아요를 눌러서 다시 읽었다.
이곳에 공유한다.
오늘 운동하러 앞산에 오르다가 문득 떠올랐다.
장로 위치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 뭘까?
1. 성실성(과 책임감) :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성실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성실하다고 결정을 잘하는 게 아니다.
지방의회 의원 선거할 때 마땅히 뽑을 사람이 없어
인사 잘하는 사람, 교통정리 하는 사람, 봉사활동 하는 사람 뽑으면 낭패를 본다.
성실성은 바른 일을 결정한 뒤에 있어야 할 기준이다.
잘못된 결정에 성실하면 아돌프 아이히만을 만들어낸다.
유대인을 죽이라는 히틀러의 결정을 성실하게 실행한 인물.
잘못된 결정을 성실하게 이행해서 공동체를 분열로 몰고 가는 인물.
2.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 :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공동체(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좋은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공동체를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망친다.
잘못된 열정이 지나친 열심과 만나면 폭풍을 일으킨다. 주의 전을 위하는 열심이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어설픈 내 글보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구절이 낫겠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성자 중에서 이단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 아드소, 선견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
3. 공동체(교회) 모임 참여도 :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장로를 뽑을 때 예배와 새벽기도 참여도를 따진다. “새벽기도 안 하는 사람이 장로가 되겠다고?”
공동체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 모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임에 바라는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참여한다고 장로의 자격을 갖춘 건 아니다. 무엇에서 나오는 열심인지 확인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주일 예배 외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내겐 지역교회 외에 참여해야 할 다른 공동체가 있다.
둘 다 하나님의 공동체라 생각한다.)
4. 재산(돈) : 상관없다.
 
언제부터인가 재산이 장로 선정의 기준이 되었다.
재산이 많으면 교회에서 일을 잘하는 구조는
.
.
한 마디로 쓰레기다.
예수님 말씀에서 ‘돈’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 하나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아니었다.
돈이 일을 쉽게 만들 때가 있지만 돈이 많은 사람을 뽑는 교회는 병들었다.
중산층 이상이 되어야 지도자가 되는 교회, 가난하면 교회에서 말하기 힘든 교회,
헌금 많이 내는 사람이 칭찬 받는 교회는 다시 말하지만 쓰레기다.
(과부의 두 렙돈 들먹이며 정성껏 헌금하라 하는데
그 말씀에서 정성껏 헌금하라는 결론만 내리면 코끼리 다리만 만진 셈이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좋은 위치에 있다.
돈이 적으면 주눅이 든다.
돈으로 일하지 못하면 다른 일로 보탬이 되려 한다.
그럼 믿음과 상관없는 열성을 만들어 내기 쉽다.
믿음보다 더하려는 마음은 위험하다.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로 살아가는 분, 부유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죄인임을 아는 분
이런 분이면 좋겠다.
(나는 지역교회보다 이슬람 선교, 북한 선교, 교육을 위한 헌금을 더 많이 낸다.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5. 명예와 권력 : 논할 가치도 없다.
 
하나님 일을 많이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난 성경에서 그런 말씀을 읽은 적이 없다.
교회에 고위 공직자, 교수, 농부, 일용직 근로자가 오면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똑같이 대하신다고 믿는다.
예수님 행동을 보면 후자를 귀하게 여길 가능성이 더 크다.
6. 겸손과 교만 : 논할 가치가 없다.
 
무조건 겸손해야 한다. 겸손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교만하다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게 낫겠다.
(바로 위의 문장은 확신하지는 못한다. 아직은...)
7. 추진력과 신중함 : 때에 따라 다르다.
 
교회에 추진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새롭게 시작할 때, 목표를 정하고 나아갈 때, 어려움을 만날 때 추진력 있는 장로가 있어야 한다.
“내가 책임집니다. 나를 따르세요.” 라는 사람.
또한 신중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추진력을 발휘한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은 신중하게 백성들 마음을 만져주어야 했다.
다독이고, 뒤를 돌아보고, 올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내부를 든든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추진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교회가 발전했고 성장했으니까.
지금은 신중할 때인 것 같다.
(물론 지역교회마다 상황이 다르다.)
나는 장로 자격이 없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일곱 집사를 뽑을 때 내세운 집사 자격도 없다.
그래서 나이가 되면 누구나 받는 ‘집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이가 되었다고 집사를 시켜줬지만 난 아직도 집사라는 말이 버겁다.
그냥 평신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