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아이들 이야기

졸업식에서 아이가 읽은 편지

책뜰안애 2022. 1. 4. 21:50
지금도 졸업식에서 송사와 답사 하는 학교가 있을까?
송사와 답사가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았다.
송사와 답사 확 없애고 졸업생 학급에 들어가 글을 썼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쓴 글에서 문장을 모아 편지 한 편을 만들었다.
담임 선생님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읽어달라고 했다.
졸업식 할 때 아이가 먼저 읽고, 선생님이 이어서 편지를 읽었다.
2011년부터 했는데, 할 때마다 선생님과 아이가 울었다.
가스폭발 사고로 화상 입은 아이 졸업할 때 나도 참 많이 울었다.
올해 6학년 담임이라, 다시 내 차례가 왔다.
지난주에 아이들에게 편지 써달라고 했고,
아이들이 쓴 문장을 골라 편지 한 편을 만들었다.
편지의 90%는 아이가 쓴 문장이고, 10%는 내가 덧붙였다.
졸업식(다음 주 화요일)에서 아이가 읽을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우리 반 친구들이 선생님께 쓴 편지에서 문장을 가려내어 한 편의 글로 만들었습니다. 친구들이 함께 쓴 편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선생님, 3월부터 같이 지내, 지금은 1월입니다. 약 10개월 정도 되는 시간을 보냈는데 제가 봐도 좀~ 힘들었을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날마다 미친 짓 해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저희의 미친 짓을 190일 동안이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가르치랴, 선생님 멘탈 잡으시랴, 이리저리 치이느라 힘드셨지요? 예의 없는 저희를 가르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감사한 게 많아요. 일단 상담! 선생님이 상담해주시면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이랑 상담하면 아무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애들이 착하긴 한데 너무 시끄러워서 학교 나오기 싫을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있으셔서 나올 만했어요.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상담하면 선생님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느낌이라 눈물이~ 예~
다음은 글쓰기. 3월,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글을 조금 잘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 애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걸 적을 수 있거든요. 또 제가 6학년에 읽은 책이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읽은 책보다 훨씬 더 많아요. 제가 도서관에 이렇게 많이 간 건 6학년이 처음이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아프시다고 할 때 좀 놀라기도 하고 속상했어요. 체육 시간에 팔팔하던 선생님께서 병에 걸려서 놀랐어요. 애들이 걱정 안 하는 척해도 다 걱정해요. 선생님, 건강해지셔야 해요!
저는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붙잡아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과 헤어지게 되어 너무 슬퍼요. 저는 언제나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제가 선생님의 제자였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내년에도 담임 선생님 해주세요. 그래서 재미있는 수업도 해주세요.
선생님, 중학교 가면 선생님이랑 헤어집니다. 저희가 그리우시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저희가 바로 달려가서 10점들의 수다를 떨겠습니다. 내년에 남초등학교 와서 선생님께 인사할게요. 평생 저희처럼 재미있고 얌전하고 착하고 정상적인 아이들만 만나시길 바랄게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폭발했던 아이)가 쓴 문장으로 인사드립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냥 사랑합니다.”
참고-10점은 미친 행동 점수다. (최고점이 10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