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수업 사례/초등 5~6학년과 토론한 기록

원고 23.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

책뜰안애 2021. 12. 26. 20:26

인권을 다룬 책이다. 1. 인권이 뭐예요? 2. 세상을 바꾼 인권의 역사, 3. 세계 인권 선언, 4. 희망을 만들어 가는 우리 이웃 이야기, 제목만 봐도 딱딱하다. 부모와 함께 의식주 걱정 없이 사는 아이들에겐 우리와 상관없는, 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독서반 아이들 모두 한 번씩 읽어왔다. 동화책은 두세 번 읽기도 했지만 인권 책은 재미없겠지. 똑같이 한 번 읽었으니 평소 책 읽는 습관을 알아볼 기회다. 내용 파악 문제 14개를 줬다. 1. 결손 가족이라는 말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우리 주위에서 인권과 관련된 현상을 찾아보자. (: 왕따) …… 10. ‘잊힌 죄수들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시작된 세계 최대 인권 단체는 무엇인가? 11. 세계 인권 선언은 2차 대전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일인가?

반만 맞춰도 대단하다고 말하고 시작했지만 실망이다. 책 좀 읽는다는 아이들이 3-4문제 맞췄다. 엄마에게 등 떠밀려 온 다섯은 1-2문제 외엔 다 모른다.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억지로 읽었다. 평소에 책을 다양하게 읽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6학년 한 아이만 12 문제 맞췄다. 아이는 평소에 인권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내용을 대부분 기억한다. 불법 체류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왜 참는지, 님비현상이 무엇인지 안다. 전제정치와 왕권신수설도 알고 두 나라가 싸울 때 상대 국가 물건 불매운동을 벌이는 이유도 안다. 로자 파크스와 세계 인권선언도 안다. 책에 나오는 사직동 그 가게가 티베트 사람을 위해 일하는지도 안다. 한 번 읽고 이 정도 알다니 놀랍다.

한 번 읽고 어떻게 내용을 다 알까?” 물었더니 친구들이 얘는 똑똑하잖아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겠죠.” 라고 대답한다. 당사자는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그냥 기억이 나요.” 한다. “얘는 책 한 번 읽고도 내용을 잘 알고 있어. 비법을 알려줄까? 한 번만 읽고도 기억하면 좋잖아?” 하니 궁금해 한다. “최신 음악을 한 시간 동안 듣는다고 해보자. , 너희, 작곡가나 가수가 들으면 얼마나 기억할까?” 나는 최신 음악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쟤들 왜 저래?” 할 거라고 한다. 자기들은 나보다 많이 기억하겠지만 작곡가나 가수보다는 모를 거라 한다.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해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많이 보고 많이 느낀다. 책을 한 번 읽고도 잘 아는 까닭은 배경지식을 많이 알기 때문이다. 어려운 내용을 읽어도 관련된 이야기와 내용 즉 배경지식이 떠오르면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한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면 쉽고 빠르게 배운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한 종류만 읽지 말고 여러 분야를 골고루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겪어본 걸 하면 생소한 걸 할 때보다 잘하기 마련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튀김을 먹을 때 몸에 나쁘다고 하지만 그래도 튀김은 역시 식용유에 튀겨야 제맛이지!” 한다. 식용유에 튀긴 음식이 맛있다기보다는 오래도록 식용유에 튀긴 음식을 먹어 입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고향하면 떠올리는 풍경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가 겪은 고향을 생각한다. 책은 온갖 이야기를 접하게 한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처음 만나는 내용에서도 구수한 고향 맛이 떠오르게 한다.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가 전에 먹어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건 굉장한 보물이다. 내가 독서반을 하는 까닭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인권 내용을 어려워해서 둘째 시간에도 내용을 파악했다. 1, 인권차별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했다. 신분제도, 결손가족, 학교폭력, 여성 차별, 종교, 불법체류자, 장애인 관련 차별 사례를 찾아 이야기했다. 사례들의 공통점을 찾아 인권 침해의 원인을 알아봤다. 영국, 미국, 프랑스, 한국, 러시아의 인권 역사는 어려워해서 아이들이 질문하고 내가 대답했다. “너희가 묻지 않으면 내가 묻고 너희가 대답해야 한다.” 했더니 잘 묻는다. 그래도 모르는 내용은 아이들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에서 답을 찾아가도록 인도했다. 질문을 쉽게 바꿔서 묻고, 관련 내용을 묻고, 질문을 이해하도록 다른 내용을 연결해서 물었다. 이렇게 하면서 저절로 책 내용을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셋째 시간에는 인물을 중심으로 토론했다. 마틴 루터 킹, 로자 파크스, 넬슨 만델라, 왕가리 마타이, 파키스탄의 아이 이크발이 겪은 일을 살펴보았다.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 지낸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에게 진짜 자유를 준다면 무얼 하고 싶어?” 물었다. “잠자고 싶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놀고 싶다. 텔레비전 실컷 보고 싶다.”고 한다. 강원도 아이들이 이 정도라면 서울과 대도시 아이들은 어떨까?

44쪽에 가수 데프콘이 부른 <힙합 유치원>이라는 노래 가사가 실려 있다. 경쟁에 시달리며 자유롭게 지내지 못하는 가사가 자기들 이야기 같다고 공감한다. 당장 자기 마음을 둘 곳을 찾기 어렵다면 대단한 이야기를 읽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읽을 것이다. 인권을 배우면서도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 인권책을 읽으면서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일 생각조차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인권의 역사만큼 지금 내가 누리는 인권이 중요하지만 느낄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인권을 모른다.

만델라는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외치며 감옥에서 인권을 빼앗긴 채 소망 없이 지내는 시절을 견뎌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누고 너는 네 영혼의 선장이니? 누가 네 영혼의 선장이야?” 물었다. 지금 우리는 아이를 인권이 아니라 돈과 성적, 운동 실력 따위로 평가한다. 평가는 다른 사람을 깔보게 만들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었다. 저마다의 배를 이끌어 대양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도록 짓누른다. 그래서 네가 나가고 싶은 대양을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물었다. 스스로 영혼의 선장이라고 외치는 아이는 없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누가 이끌어 가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영국은 명예혁명으로, 프랑스도 혁명으로 자유를 누렸다. 그렇게 얻은 자유로 약한 나라의 자유를 빼앗았다. 인권을 소중하게 여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힘으로 밀어붙이고 차별했다. 지금도 국제 관계, 외교 관계는 만델라를 감옥에 가둔 힘의 논리가 앞선다. 강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세운 기준을 내세워 차별한다. 약자, 소수, 남과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은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서 모두 다수, 강자에 끼기 원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만델라는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나와 너가 함께 누리는자유를 원했다. 우리나라에는 다툼과 분열이 많다. 그러기에 더욱 나와 네가 함께 누리는 자유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책을 읽고 글을 쓰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인물의 일대기를 요약하는 글이 많았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두 아이가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꼭두각시이고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조종하는 리모컨 같다. 우리 어린이들도 인권이 있고 권리가 있는데……(최윤정, 정라초 5),” “어른들도 어린이의 말을 좀 들어주면 좋겠다. 어른들도 한때는 우리처럼 어린이였을 때가 있었다. 어른들이 어린이일 때도 지금의 우리처럼 같은 생각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이 상황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해인, 정라초 6)” 두 아이 글을 읽고 어렵지만 인권 책을 나누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을 모두 틀림없이 다른 독특한 존재로 바라본다면 두 아이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줄어들겠지. 자기 문제를 뛰어넘어 아이들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날이 가까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