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21. 이누이트가 되어라.
겨울방학이 지나면 아이들이 부쩍 자란다. 방학 지나고 한 달 만에 만났는데 생각이 자란 모습이 보인다. 낱말이나 짧은 문장으로 대답하던 아이가 관련 내용을 더해서 말한다. 책 읽은 느낌을 나누었다. 남학생은 대단하다고 대답한다. 그린란드에서 알래스카까지 북극해 주위 12000km를 개썰매 타고 혼자 탐험했으니 정말 대단하다. 남학생은 탐험이야기를 좋아할 줄 알았지만 여학생도 재미있다고 하며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묻는다. <이누이트가 되어라>는 우에무라 나오미가 혼자 개썰매를 타고 북극에 가기 위해 훈련한 과정을 쓴 동화이다. 일본 탐험가 나오미는 북극권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처럼 생활하면 혼자 힘으로 북극점에 다녀올 수 있다고 믿었다. 책의 대부분은 그린란드에서 캐나다를 지나 베링해 근처까지 해안을 따라 탐험한 내용이다. 북극점에 다녀온 이야기는 뒷부분에 간단하게 나온다. 백인들은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사람)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이누이트(사람)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문제를 만들고 함께 풀며 내용을 파악했다. 한 학생이 “이날부터 ○○○이 말을 듣지 않았다.”에 들어갈 낱말이 무엇인지 묻는다. 북극점에 가까울수록 자기력이 강해져서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북극점에 가까이 왔다는 뜻인 줄 알았다면 “어느날 나침반이 말을 듣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라고 문제를 내야 했다.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지 못하면 단답형으로 묻는다. 독서감상문에 줄거리를 가득 쓰는 것도 자기만의 문장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문장을 가지려면 원인을 찾는 추론능력, 다른 내용과 연결 짓는 종합 능력, 숨은 뜻을 찾아내는 분석 능력을 길러야 한다. 책을 많이 읽기만 해서 되지는 않는다. ‘왜’ 그랬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자기만의 말로 바꿔 표현해야 한다. 인물의 성격이나 특정한 사건이 이야기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까? 그런 성격이 아니거나,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턱대고 ‘이어질 내용을 상상해보자’ 하기 전에 책 내용이 무얼 말하는지 먼저 따져보고 분석해야 한다. 그러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추론과 분석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멋대로 지어내는 능력이 아니다.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두어 그럴 듯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자기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나오미는 야콥스하운을 떠나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코츠뷰까지 간다. 나오미가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에 가는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봤다. 야콥스하운에서 우마나크까지 가면서(39-52쪽) 개들이 개썰매를 제대로 끌지 못했고, 개가 도망쳤고, 겨우 우마나크에 갔다. 문장으로 바꾸기 힘들어해서 내가 정리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개 데리고 힘들게 산을 넘었다.” 우마나크에서 우퍼나빅까지 가는 여정은 내용이 짧아서(53-60쪽) 쉽게 썼다. “개들이 계속 말을 듣지 않아서 힘들게 우퍼나빅까지 갔다.” 이런 방법으로 나오미가 탐험한 내용을 문장으로 표현했다. 추론 능력, 분석 능력, 자기 문장으로 쓰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했는데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자기 문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시간에 주제 중심 토론을 했다. 1. 인간은 여러 가지 도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도전을 소개해보자. 북극, 남극, 에베레스트, 우주…… 중에 하나는 말하리라 예상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대답하지 않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아, 내가 주제를 잘못 잡았구나!’ 하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극지나 우주에 처음 간 사람, 대항해 시대 탐험가를 물었더니 몇 사람을 말하지만 내 질문이 허공에 떠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1-1, 1-2를 뛰어넘어 1-3) 여러분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에 도전해보고 싶나? 온 힘을 기울여 해보고 싶은 일을 말해보자고 물었는데 조용하다. 돌아가며 물어봐도 도전해보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다. 질문을 바꾸었다. “돈과 시간을 마음껏 준다면 무얼 하고 싶어?” 집에서 뒹굴거나 학원 빠지거나 pc방에서 실컷 게임하고 싶다고 한다. 번지점프 해보고 싶다는 5학년 아이가 없었으면 정말 슬펐을 것이다. ‘아, 아이들이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그냥 쉬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하니 슬프다.
1-1) 나오미가 도전한 일을 책에서 잘 찾지만 1-2) 나오미처럼 도전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추운데 왜 고생하러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혼자 날고기 먹으며 개썰매를 타고 12000km를 고생하며 간 탐험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너무 편하게 지내서일까? 공부와 학원에 떠밀려서 지친 걸까? 집에서 뒹굴며 텔레비전 보거나 게임 실컷 하는 것보다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일이 없을까? 토론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도전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지만 자신이 없다.
2. 프랭클린 탐험대는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빠지는 뱃길을 찾으려다가 빙산에 갇혀 129명이 모두 죽었다. 왜 모두 죽었을까? “가까이에 이누이트가 살고 있었지만 죽어가면서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날고기를 먹고 털가죽 옷을 입는 야만인에게 문명인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에요.(21쪽)”, “명예를 중시하는 영국사람 눈에 이누이트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사람이 되다 만 존재’로 보였을 거예요" 2-1) 월터 스콧 역시 남극점에 도전했다가 대원이 모두 죽었다. 죽은 까닭을 찾아보자. 스콧 역시 명분과 명예를 내세우다 대원이 모두 죽었다고 대답한다.
2-2)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은 남극점을 정복하고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영국은 오히려 실패한 프랭클린과 월터 스콧을 영웅으로 받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아문센은 털가죽 옷을 입고 시베리아 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고 남극점에 도달했다. 스콧은 남극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설상차와 조랑말을 이용했다. 말이 다치면 자기들이 짐을 끌고 다친 말까지 데려갔다. 아문센은 돌아오는 길에 지친 개를 잡아먹을 요량으로 식량을 줄여 썰매를 가볍게 했는데 스콧은 반대로 행동했다. 아이들은 나오미나 아문센처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졌으면 졌다고 말해야지, 스콧이 기사도를 발휘한 영웅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을 내세운 거라며 영국을 비판한다.
2-3) 나오미는 왜 아문센의 방법을 따랐을까? 나오미의 판단이 옳을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아이들은 아문센과 나오미가 한 일이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로 바꿔 물었다. “우리와 일본이 똑같은 경쟁을 벌였다고 하자. 일본이 아문센의 방법으로 남극점에 먼저 가고 우린 실패했다면 어떻게 말할까?” 했더니 씩 웃으며 “그야 영국처럼 말해야죠.” 한다. 우리와 일본의 경우로 묻지 않고 2-4)를 물었다면 모두 아문센의 방법이 옳다고 말했을 것이다. 2-4) 여러분은 누구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들어 말해보자. 4명은 아문센을, 4명은 스콧을 응원한다. 어느 편도 들지 않은 한 아이에게 물었더니 “왜 가야 해요?”한다.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고 이유를 묻는 건 좋은 태도이다. 이어서 아문센과 스콧의 이야기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로 연결해서 토론했다. 그러나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아이들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왜 가느냐고 물은 아이는 “~ 어차피 한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미지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에 가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6 여)”고 썼다. 지금 생활에 만족해서 미지의 세계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공부나 성적, 친구 관계가 힘들어 꿈을 꿀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 되라는 말에 눌려서 고개를 들고 멀리 내다보는 마음까지 않은 건 아니겠지!
새롭게 시작하는 3월이다. 이누이트가 되고 싶은 아이가 많아지도록 활기를 불어넣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