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잉타이 인생 3부작 2. 사랑하는 안드레아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지!” 하면 어떤 추억이 떠오를까? 6․ 25나 가난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중요한 시험에 합격한 순간이나 성공한 기억,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겠다. 2016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은 무얼 추억으로 떠올릴까?
지난해 10월에 학부모와 함께 울릉도에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전교생 10명이 엄마, 아빠, 선생님과 울릉도에 가서 시내버스 타고 다녔다. 내수산 전망대에서 삼선암 쪽으로 3시간 동안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지나가는 봉고차를 얻어 탔는데 어쩌다 보니 봉고차 한 대에 22명이 가득 탔다. 봉고차 안에 쭈그리고, 허리 숙이고, 끌어안고 낑낑대면서도 다들 웃었다.
다음날에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히치하이킹으로 세웠다.
“아니, 내가 손을 들면 한 번도 차가 서지 않던데 선생님은 손만 들면 차가 서네요.”
이렇게 말하는 아빠는 얼굴이 무섭게 생겼다. 뭐라 말하기 어려워서 ‘그러게요.’ 하며 웃었다. 관광업체와 계약하지 않고 다녔기 때문에 많이 걷고, 지루하게 시내버스 기다리기도 했다. 땀 흘리고 헉헉대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않는 건데……’ 하던 학부모들이 돌아오는 길에 내년에 다시 가자고 한다. 고생 많이 해도 하루만 지나면 추억이 되나 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더 소중한 추억!!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무얼 추억으로 간직할까? 30년 뒤에 무얼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라 할까? “그땐 ○○○ 게임을 했지!”라고 하진 않겠지! 학원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시 아이들이 무얼 추억으로 간직할지 모르겠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사는데도 도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일까?
“지금은 안 그래요.”
공간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사는 곳이 다르면 생각이 다르다. 시골에 사는 아이와 도시에 사는 아이는 생각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공간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서울 가면 코 베어간다’고 했지만 지금은 시골 사람이 더 약았다고 한다. 시골에서도 인터넷 활용해서 공간의 차이를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차이는 어떨까? 30년 전을 추억으로 간직한 부모와 지금을 추억으로 간직할 자녀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30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어렵다. 변화가 느린 시대, 부모와 자녀가 비슷하게 살았던 고대 사회에도 세대 차이가 존재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에 “요즘 젊은 것들 버릇이 없다.” 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부모는 ‘그때’ 겪은 일, 30년 전에 생긴 가치관으로 판단한다. ‘그때’를 모르는 자녀는 “지금은 안 그래요.” 라고 말한다. 당연히 차이가 생긴다. 부모는 자녀가 철이 없다, 버릇이 없다고 한다. 자녀들은 부모 세대를 고리타분하다,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 “그땐 그랬지.”와 “지금은 안 그래요.”의 차이가 어찌나 큰지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으르렁대게 만든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라고 편지를 시작하면 어떤 내용을 쓸까?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 항상 최선을 다하고 행복해라, 게임 그만하고 성공하라고 쓸까? 부모는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하기 원한다. 이를 위해 게임 그만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 말을 듣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을 즐긴다. 미래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지금 행복하기 원한다. 부모 속을 긁어댄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기 힘들다.
룽잉타이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1986-1999년) 독일에 갔다. 대만 문화국장 일을 하기 위해 독일을 떠날 때 아들 안드레아는 14살이었다. 문화국장 일을 끝내고 홍콩에 건너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안드레아는 18살이 되었다. 4년 동안 떨어져 지낸 아들은 와인 잔을 들고 ‘차갑게’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들은 담배를 피우고, 엄마의 물음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자기는 엄마의 사랑스런 아들 안안(어릴 때 부르던 이름)이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 룽잉타이는 ‘안안’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들 안드레아를 영영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들을 알아가려면 “잘 지내니? 밥은 먹었니?”만 물을 수는 없다. 엄마가 어릴 때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내세워서, 아들을 엄마의 그림자에 가두어도 안 된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편한 상대가 어디 있으랴!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오해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미워하기 싫어서, 더 멀어지지 않으려고, 가까이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또 실망하고 더 미워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서로에게 남긴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민감한 이야기를 피하고, 서로의 솔직한 생각을 알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진실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이긴다. 그래서 어렵다.
천천히 생각을 나누면서
편지는 느린 방식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면서 편지가 ‘그땐 그랬지’의 대상이 돼버렸다. 전화하거나 만나면 될 일을 굳이 편지로 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빠르게 지나가면 깊이 보지 못한다. 한 번 해버린 말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하기 어렵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가까이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조금씩 덧붙여져서 뜻이 바뀌기 쉽다. 편지는 내용이 그대로 남는다. 오해하지는 않았는지, 편지 쓴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다시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
편지를 쓰는 자체도 어렵지만 30년간의 시간 차이도 부모와 자녀를 가로막는다. 부모와 자녀가 안부편지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니 얼마나 힘들까! 편지에는 감정 대립, 논리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3년 동안 꾸준히 편지를 썼다. 신문에 칼럼을 내면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와 아들이 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귀하지만 둘이 편지에서 나눈 내용이 더 귀하다. 개인 일상이야 당연히 나누겠지만 홍콩, 대만, 독일,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이슈로 논리 싸움을 벌인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편지가 가치관, 문화, 취미, 인생의 목표에 대한 대화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이, 독일에서 자란 사람과 대만에서 자란 사람의 문화 차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복해간다. 우리나라 18살이 이런 생각을 할까 싶다. 교수이며 문화부 장관이었던 사람의 생각이 깊은 거야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18살, 여전히 부모를 의지하는 나이인데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통찰을 보여준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며 읽었다.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생각을 확인하고 이해한다. 아들이 엄마처럼, 엄마가 아들처럼 되지는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며 받아들인다. 게다가 신문에 낸 칼럼을 읽고 독자들이 보낸 편지가 균형을 더한다. 대만과 독일의 차이를 넘어서서 세계적인 시각으로 균형을 잡아가게 돕는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지금처럼 멀어진 적이 있을까! 앞으로는 얼마나 더 멀어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자녀가 부모를 좋아하는 마음만큼 서로를 이해하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부모와 자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가면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정치 색깔이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대화’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