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일반독자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책뜰안애 2021. 12. 16. 19:29
-- 지독한 우울증의 압력에 짓눌려 살았던 분의 고백이 깊다. 적당한 우울을 다룬 책,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지만 글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책을 여럿 읽었다. 괜찮은 책도 있었지만 그다지 깊진 않았다. 이 책은 다르다. 우울증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다.
-- 우울증에서 벗어난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좋은 직장 사직하고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1주일 만에 교통사고가 났다. 가난한 나라 라오스에서 일어난 사고라 처리도, 치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버스에 짓눌려 몇 시간 동안 구조대를 기다리며, 말이 안 통하는 병원에서 떠밀리며 느낀 감정들이 또한 깊다. 이분을 위해 어렵사리 휴가를 내서 함께 여행길을 시작한 친구가 사고에서 죽었다. 자신만 살아남은 죄책감과 살고 싶은 마음이 거대한 버스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짓눌렀다. 다친 몸을 치료하면서, 우울증과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깨닫는다. 이걸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 그렇지만 이분 곁에는 좋은 분들도 참 많았다. 같은 버스에 탔던 여행객은 버스에서 부상 당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안아주었다. 자기들 여행 계획을 바꿔서라도. 아는 사람 전혀 없는 외국 병원에서 혼자 내버려진 기분으로 떠는 사람을 찾아와 고향 음식을 해주며 돌봐준 분도 있다. 함께 걸으며 아픔을 들어주고, 자기들 아픔을 이야기해준 분도 있다. 짧게 듣고 처방해주는 의사가 아닌, 길게 들어주고 사고 났을 때 병원까지 찾아와주는 의사도 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짓눌리는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으리라!
-- 나는 인간의 고통, 고통을 대하는 감정에 관심이 많았다. 20대와 30대 내내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포로수용소에서 견뎌낸 분들의 책을 읽었다. 하나님이 왜 고통을 그냥 보기만 하시는지 논하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 마음에도 같은 고통이 숨어있는 걸 보았고, 아이들 마음을 회복시키려고 아이들과 글을 썼다. 그때 참 마음이 아팠는데, 이 책은 그보다 더 무거웠다. 우울함에 눌리는 분들, 우울함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분들(교사도)에게 추천한다.
-- 더불어 걷기 좋아하는 분에게도 추천한다. 저자가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여행길에 나섰고, 여행에 나섰기 때문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이를 이겨내려면 다시 여행길을 걸어야 했고, 안전하게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혼자 산티아고를 걸었다. 산티아고 걷고 쓴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모두 별로였다. 그래서 산티아고 걷기 원하는 분들에게 ‘거기 아닌 다른 곳도 괜찮지 않냐?’ 물었다. 이 책을 읽고는 ‘산티아고 걷는 거 괜찮겠다’ 생각한다.
-- 다만 '자기 중심성'의 함정을 조심하자. 아주 많이 아픈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자신도 아프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사람들이 몰라주는구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면, 대부분 자기가 가장 힘들게 살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덧붙여져서 자기가 아주 많이 힘들게 살았고, 지금 괜찮게 사는 건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나를 알아달라고 외친다. '우울증'도 이렇게 쓸 수 있다. 그냥 운동하면 괜찮아지는 사람, 친구 만나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하면 괜찮아지는 사람이 이 책의 어느 한 부분을 붙잡고 '나도 이렇게 힘들었다'고 빠져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