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아동

책 읽고 무얼 느끼니? (2020년 3월 좋은교사 원고)

책뜰안애 2020. 2. 26. 06:32

망나니 공주처럼, 이금이

꼴뚜기, 진형민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서감상문을 쓰는 방법이 나온다. 책을 읽은 동기, 책 내용, 책을 읽고 든 생각이나 느낌을 표로 정리해서 쓰게 한다. 독서록에도 동기, 줄거리, 생각과 느낌을 쓰도록 표로 나눠 놓았다. 교사도, 학부모도 이렇게 쓰라고 가르친다. 독서감상문에 동기, 줄거리, 생각과 느낌을 써야 하니 세 가지를 하나씩 찾아 합치는 방식이다. 독서감상문을 쉽고 빠르게 쓰는 방법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렸다.

난 다르게 가르친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도- 책을 읽은 동기를 가진 아이가 적었다. 책을 읽고 표현할 만한 생각과 느낌이 있는 아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기준은 단순하다. 재미가 있으면 읽고, 재미가 없으면 안 읽는다. 어디에 재미를 두는지는 아이마다 다르지만 책 읽는 기준이 재미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 무얼 느꼈니?”는 소용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책 읽은 아이에게 어땠니? 책이 괜찮았니? 무얼 느꼈니?” 묻는다. 아이가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그걸 말해주기 원한다. 아이가 무얼 배웠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부분 아이는 재미있어요.” 또는 재미없어요.”라고 대답한다. 교사와 부모 모두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또 묻는다.

어디가 재미있었어?” “왜 재미없었어,”

전국 어디서나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그냥~!>이 솔직한 반응이다. 알맞은 반응이기도 하다. 가끔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아이가 있지만 소수다. ‘책을 읽었는데 그냥 재미있더라!’는 말은 아이들 수준에 딱 맞는 표현이다. 실망하거나, 따져 물어도 소용없다. 아이들이 책 읽는 기준이 재미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 독서 수업을 하러 가서 무얼 느꼈는지 물으면 99% ‘재미를 말한다. 책 내용을 알아보는 게임을 하면 책이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책에 나온 문장으로 토론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질문하고 대답하며,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지 찾으면 책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는 하지 않았던 생각이 떠오른다. 헤어질 때는 이렇게 쓴다.

 

책을 처음 읽을 때 글밥도 적고, 글씨 크기도 커서 저학년이나 보는 책을 왜 대화 주제로 선택했을까?’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도 무슨 이야기를 책에서 하고 싶은지 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번 시간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와 토론하면서 책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여러 가지인 것을 알며 이해하고 말하니 책의 내용이 이해가 잘 되었다. ~ 이 책이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날 수 있을 만한 책이라는 걸 선생님이 알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글을 적으라고 하신 것 같다.”

대구에서 5-6학년 10명과 망나니 공주처럼으로 독서 수업을 하고 6학년 아이가 쓴 후기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책을 좋아하는 교사가 아니라면 책을 읽어도 가치를 모를 때가 많다. 책벌레들의 책 없는 방학독서캠프에 참가한 교사의 후기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초등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별로 가치 없는 소설책인 줄 알았다. ~ 독서퀴즈, 독서 토론을 시작으로 내가 찾지 못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 조별 모임에서 네 자매의 미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봤는데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여백이 많은 책, 여백이 적은 책

선생님들이 독서 수업하기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 한다. 그러나 독서 수업에 좋은 책목록을 만들기 어렵다. 사람마다 책을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또한 독서 수업을 처음 하는 분, 몇 번 한 분, 자주 한 분에게 맞는 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경험이 적으면 여백이 적은 책을 골라야 한다.

꼴뚜기는 여섯 개의 단편이 실린 동화책이다. <꼴뚜기>는 왕따 문제를 다루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6학년 아이들이 사귀는 이야기다. <축구공을 지켜라>는 고학년이 저학년 공을 빼앗아 차는 이야기다. 일정한 주제를 다루는 내용이라 명확하다. 한마디로 여백이 적다. 망나니 공주처럼은 여백이 많다. 꼴뚜기보다 짧지만 이런 이야기다라고 정리하기 어렵다. 사랑 이야기지만 자아를 찾는 이야기다. 품위를 다루지만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옛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을 토론하고, 공부에 지친 현실을 토론할 수도 있다.

여백이 적은 책은 토론하기 쉽다. 주제가 명확하다. 글을 쓰기도 쉽다. 무얼 써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꼴뚜기>를 읽으면 왕따를 토론하고 왕따에 대해 글을 쓰는 아이가 많다. 어떤 아이는 왕따 생각하라고 선생님이 꼴뚜기읽으라 하셨네!’ 한다. 이런 책은 독서감상문을 쓰기 쉽다. 다만 아이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쓴다. 대부분 왕따를 주제로 읽고 왕따를 주제로 글을 쓴다. 그래서 독서 수업 경험이 적은 분에게 추천한다.

여백이 많은 책은 주제를 잡기 어렵다. 토론하기 어렵다. 글을 쓰기도 어렵다. 도대체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도 있다. 앞에서 후기를 쓴 아이처럼 저학년이나 보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백이 많은 책을 더 좋아한다. 토론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이 자기 색깔을 드러내어 글을 쓰는데 좋기 때문이다. 여백이 많을수록 자기 생각과 경험을 채워 넣어야 한다.

 

책을 느끼는 과정을 겪어야한다.

아이들은 분석하며 읽지 않는다. 공감하며 읽는 아이도 적다.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읽는 아이도 적다. 삶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실제와 연결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정답 찾는 활동, 과정 없이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이렇게 배우면 교과서 지문 읽듯 책을 읽는다. 평소 태도가 책 읽을 때도 영향을 준다. 부모나 교사에게 읽어라!”, “읽었니?”만 들은 아이는 그냥~! 재미로~! 읽는다. 느끼는 게 별로 없으니 독서감상문에 쓸 게 없다고 한다.

독서 수업은 아이가 내용을 아는지 확인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것도 힘들다. 아이가 느끼도록 이것저것 하는 거라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활동하면서 느낀다. 새벽에 일어나 축구경기를 보는 아이는 축구를 하면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생활 습관을 바꾼다. 그러므로 아이가 책을 읽고 느낌을 표현하게 하려면 과정을 겪게 해주어야 한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그리거나 쓰기 전에, 무언가를 느끼도록 활동해야 한다.

여백이 적은 책은 무얼 느끼고 알아야 하는지 정해진 책이다. 주제 파악이 쉽고, 내용을 쉽게 이해한다. 그래서 독서감상문 쓰기도 쉽다. 여백이 많은 책은 느끼고 이야기할 내용이 많다.

2020년 새 학기를 시작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해야 한다. 독서 관련 내용이 교육과정 곳곳에 들어있다. 학생들에게 의견을 말해라” “느낀 점을 써라하기 전에 과정을 겪게 해주시라 권한다. 과정을 겪는 독서 수업을 몇 번 하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 읽은 느낌과 생각을 말할 것이다. 독서 감상문도 달라질 거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