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돌려드립니다 6. 가인들과 아벨들
⁕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창 4:8)
⁕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자, 가세. 들로 나가세." (삼하 20:11)
⁕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눅 15:15)
아들은 힘을 겨룬다. (장난감이라도) 총칼을 들고서, 자신은 살아남고 상대가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만족한다.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싸웠다. (창 25:22) 태어난 뒤에도 서로 형이 되겠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유다의 아들 베레스와 세라는 먼저 태어나려고 다투었다. (창 38:28~29) 가인과 아벨이 시작한 싸움이 지금도 이어진다. 더 좋은 것 가지려고, 더 많이 먹으려고, 먼저 하려고 끊임없이 싸운다. 형은 동생을 누르고, 동생은 형에게 덤빈다.
동생을 들판에 데려가 죽이는 형
가인이 태어났을 때 하와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아벨이 태어났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인이 꽤 속 썩인 모양이다. 창세기 4장 2절은 ‘아벨은 양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고 썼다. 형 가인보다 동생 아벨을 먼저 썼으니, 성경을 기록한 사람(과 독자들도) 가인보다 아벨을 좋게 평가했나 보다. 가인은 이런 평가를 싫어했다.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인데, 허무하다는 이름을 가진 동생이 자기를 앞서는 걸 참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고 자신에게는 반응하지 않자 가인이 ‘욱!’ 했다. 얼굴색이 변할 정도로 화가 났다. (4:5) 가인은 하나님께서 동생을 좋게 평가하자 자신이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형인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하시자 더 화났다. 동생을 좋게 평가한 것도 화나는데 화가 난 마음을 몰라주니 분노가 치솟았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가인이 여호와의 판단을 평가한 셈이다.
‘아니, 몰라서 묻는 겁니까? 저 동생 놈이 나보다 얼마나 잘났습니까? 내가 동생보다 부족한 게 뭡니까? 내가 곡식을 주지 않으면 살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양이나 치는 목동 주제에 뭘 잘했단 말입니까?’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형의 위치, 형이 누려야 할 것)이 어긋나자 동생을 죽이고 싶어졌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는 게 뭐가 있어? 왜 나를 이렇게~’
하나님은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하며 “네 죄나 잘 다스려라.” 하셨다. 이 말을 듣고 가인은 폭발했다.
“동생아, 들로 나가자.” 하며 들로 불러내어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동생을 죽인 결과, 땅에서 농사짓고 수확하던 사람이 땅에서 피해 다녀야 했다. (4: 12) 즉, 정착민 가인이 유목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역사에서 정착민은 늘 유목민을 무식한 무리, 약탈하는 나쁜 놈들로 취급했다. 가인은 “아! 내가 오랑캐 같은 유목민이 되다니~!” 하며 탄식했을 것이다. 가축을 치며 떠돌다가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과 함께, ‘나를 죽이려는 놈은 아닐까?’ 생각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가인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놋’ 땅에 정착했다.
동생을 들판에 데려가 살리는 형
여호와께서 다윗을 선택했고,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자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재현되었다. 가인이 아벨을 대하듯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 사울에겐 동조자도 있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이 사울에게 알렸다. 다윗도 아벨처럼 들판에서 죽을 처지였다. 그런데 이곳에 은혜의 사람이 있었다. 가인은 아벨을 들로 데려가 죽였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살리려고 들로 나간다. 같은 모습인데 의도가 달라졌다. 가인은 죽이고 요나단은 살린다.
사무엘상 12~23절까지 요나단이 다윗을 살리려고 짠 계획이 길게 이어진다.
v12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증인이다.
v12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 알려주는 시기 (내일이나 모레)
v13 여호와께서 자네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v14 나도 주의 인자하심을 누리기 원하네
v15 다윗의 원수가 없어지는 날에, 나를 생각해주게.
v16 여호와께서 자네의 대적을 치실지어다.
v17~22 아버지 뜻을 확인하고 알려주는 방법 (활쏘기)
v23 주께서 길이길이 증인이 되신다.
핵심 내용은 v14 내게 인자를 베풀어달라. v15 네 인자를 내 집에 영원히 끊지 말라는 부탁이다. 다윗이 왕이 된다는 말을 듣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에게 사울의 가문을 부탁했다. 사울은 다윗을 쫓아다니느라 시간과 힘을 버렸고, 요나단은 사울을 살리려고 아버지에게 맞섰다. 사울은 가족을 위해 여호와의 뜻에 저항했고, 요나단은 가족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가인의 행위를 따르는 게 쉽다.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 뜻을 따랐다. 요나단의 순종이 다윗에게는 은혜였다.
들판에서 유리하다가 돌아온 동생
맏아들은 늘 칭찬받았다. 아버지를 섬기는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아버지 말씀을 어기지 않았다. (눅 15장 29절) 자기를 위해 아버지가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일했다. 동생이 빈둥대며 사고 칠 때마다 형이 수습했다. 형은 동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타이르고 혼내도 동생은 그때뿐이었다. 형이 묵묵히 일할 때 동생은 아버지를 위협해서 재산을 한몫 챙겨 떠났다.
(상상) 동생이 집을 떠나고 맞이한 첫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들었다. 회당장이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읽었다.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말이 꼭, 형의 삶을 받으셨다는 내용으로 들렸다. ‘난 가인 같은 형은 아니야. 난 동생과 비교하지 않아. 비교할 수준이 되어야 말이지. 여호와께서 내 제사는 받아도 아버지 재산 챙겨서 집 나간 놈의 제사는 받지 않을 거야. 틀림없이!’
몇 년 뒤에 동생이 거지꼴로 돌아왔다. ‘꼴 좋다! 아버지 재산 챙겨서 나갔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살아야지, 왜 돌아온 거야?’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아버지가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시자 더 화가 났다. 형은 과거에 매여 현재를 놓쳤고, 아버지는 사랑 때문에 과거를 용서했다.
“아니, 몰라서 묻는 겁니까? 저 동생 놈이 나보다 얼마나 잘났습니까? 내가 동생보다 부족한 게 뭡니까? 재산 다 털어먹은 놈을 위해 잔치라니요? 나를 위해서는 무얼 해줬어요?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거랍니까!”
형은 동생을 죽이고 싶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건 말도 안 되지만, 자신이 가인 같은 동생을 죽이면 사람들도 인정할 거라 확신했다. 첫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 재산을 달라했으니 아버지 죽으라는 말과 같다. 둘째, 이방인에게 가서 돈 다 써버린 놈이니 하나님 자녀가 아니다. 셋째, 돼지(부정하다 부정하다!) 치면서 돼지가 먹는 걸 먹었다던데 말도 안 된다. 부정한 짐승에 손을 댄 정도가 아니라~ 어휴, 말하기도 싫다.
힘이 아니라 은혜로
성경에는 동생이 잘되는 이야기가 많다. 형에게는 아버지 이름을 받고, 유산을 두 배 상속받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권리를 당연하게 내세우면 은혜가 사라진다. 성경은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창 25:23) 하셨다. 힘센 형 에서가 아니라 약한 야곱, 막내 다윗, 가난하고 연약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된다. 요나단은 들판을 살리는 곳으로 바꾼다. 탕자라도 은혜에 감사하고,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면 아버지 품에 안긴다. 가인의 마음은 들판뿐만 아니라 집도 살인 장소로 만든다. 요나단의 마음으로 동생과 함께 인자하심을 누리자(삼상 20:14~15).